별
눈이 내립니다. 눈이 쉴 줄을 모르고 계속 내립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며 댓돌 위의 눈을 마당으로 쓸어내리고 마당의 눈을 쓸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눈을 쓸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올 무렵 다시 눈을 쓸었습니다. 외양간 앞과 뒷간으로 가는 길과 사립문을 지나 돌담길을 지나 샘으로 이르는 길은 벌써 몇 번을 쓸었는지 모릅니다. 벌써 며칠째가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돌담 밑에 모아 둔 눈은 마치 피라미드처럼 돌담보다 더 높이 올라가 버렸습니다. 집안에만 있는 것이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참다못해 고무신에 새끼줄을 감고 마을 앞 텃논 앞까지 눈을 헤치며 걸었습니다. 눈이 무릎까지 빠집니다. 돌아올 때는 눈이 무릎 위를 지나 허벅지까지 빠지는 곳도 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앞산을 쳐다보시며 혀를 내두르셨습니다.
“내 생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것은 처음인걸. 내년에는 제발 풍년이 들었으면 좋겠구먼.”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더니 큰 소나무에 눈이 얹혀서 가지가 땅에 닿을 정도로 늘어졌고, 옆의 나무는 눈의 무게를 못 이기고 부러져 소나무 둥치를 기대고 있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고구마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비록 오늘뿐만은 아니지만 돼지우리에 갇혀 있는 노루를 보면서 나는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눈이 계속 내려 온 천지를 뒤덮었습니다. 산짐승이 먹을 것을 찾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까지 내려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날이 어두워지자, 동네 어른들이 우리 집 사랑방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습니다.
“횡재 만났네 그려.”
“그러게 말이지, 이렇게 눈이 많이 올 줄을 알았으면 돼지를 키우지 말고, 빈 우리로 놔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제 발로 우리 집에 찾아온 노루를 보고하는 말입니다. 우리에는 노루가 먹을 것이 많이 있습니다. 꼭 먹으라고 시래기를 매달아 놓고 볏짚을 쌓아 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루가 먹이를 용케도 발견하고 찾아왔습니다.
삼촌이 볼일을 보고 있다가 재빨리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어쩔 줄을 모르고 길길이 날뛰며 벽에 머리를 박아, 나와 식구들은 가까이 가서 구경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러다 죽으면 안 되는데.”
삼촌은 영마름을 가지고 가서 조심조심 돼지우리를 감싸 버렸습니다. 밖이 내다보이지 않으면 노루가 좀 안심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만득이네는 산토끼가 집 안으로 들어와서 잡아먹었다는데 노루를 잡으면 동네잔치 되겠지?”
상구 아버지가 아버지 들으라고 넌지시 말을 내비쳤습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고기 맛을 본지도 오래고 겨울이라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잘 됐지.”
“그렇게 하면 좋겠지요.”
아버지가 아무 말씀이 없으시자 상구 아버지가 재차 물었습니다.
“속이 출출한데 잡아먹는 게 어떻겠어요.”
“글쎄.”
“글쎄는 무슨 글쎄요, 잡아먹으라고 제 발로 들어온 것인데.”
“생각해 보고.”
“생각은 무슨 생각. 내일 당장 잡자고요.”
“그럼 할 수 없지 뭐. 동생한테도 물어봐야 하는데.”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반승낙하고 말았습니다. 옆에 있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불쌍한 것을 잡아먹다니!’
나는 눈치를 살피다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도 눈은 내리고 있었지만 잦아들자 희미한 달빛 속에 별들이 가물거리고 있었습니다. 앞산 소나무 위로 제법 밝게 빛나는 별이 나를 보고 껌뻑입니다. 노루의 놀란 눈처럼.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을 찾아보다가 슬그머니 돼지우리 쪽을 쳐다보았습니다. 조용했습니다. 이제는 놀란 가슴이 진정되어 잠을 자는 것이 아닐까? 발걸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돼지우리로 향했습니다. 나무를 등지고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는 친구를 놀라게 해 주려는 듯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옮겼습니다. 바닥에 쌓인 눈이 목화송이같이 부드러워서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노루가 놀라서 날뛸까 봐 매우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숨을 죽이고 틈 사이로 들여다보았더니 노루는 아직도 멍하니 서서 엉덩이를 문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잡힌 것을 슬퍼하고 있거나 식구들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마을로 내려왔을까?’
갑자기 노루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내일은 노루가 사람들에게 잡아먹힐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더욱 불쌍하기만 합니다.
‘문을 열어 주고 도망가게 해줄까?’
생각이 불현듯 이마를 스쳐 갔지만 망설이다가 끝내 문을 열어주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삼촌에게 혼이 날지도 모르고 더구나 노루가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먹을 것이 없습니다. 갑자기 노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엉덩이를 빼고 살금살금 뒷걸음질로 물러나 사립문을 나서 구기자 덩굴 밑의 돌담에 기대어 섰습니다.
‘죽으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머릿속에서 노루의 불쌍한 모습이 떠나지 않습니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눈발은 점점 작아지고 멈춰 갑니다. 아까보다는 달빛이 밝아졌습니다. 희미하게 보이는 별들이 따라 무리를 지어 나타났습니다.
나는 헤아리는 대신 별들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제발 우리 집에 있는 노루가 죽지 않게 해주십시오. 무사히 산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별 하나를 보고 기도 하고 또 하나를 보고 기도 하고, 또 하나를 보고 기도 하고.
얼마 동안인가 계속하다 보니 저절로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마치 친구들과 술래잡기할 때 중얼거리던 말처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어느새 달이 호두나무 위를 지나고 동호네 울타리를 따라가더니 이제는 우리 집 뒤꼍에 있는 밤나무 위에 걸려 있습니다. 별들도 북극성을 중심으로 서서히 자리를 이동하고 있습니다. 시계는 없지만 밤 열두 시나 한시가 훨씬 지났는지 모릅니다.
“어흠 어흠.”
동네 어른들이 사랑방에서 일을 마친 후 돌아가려고 신을 챙기는 모습이 보입니다. 짐작할 때 닭 울 시간이 다가옵니다. 나는 사람들 모르게 슬그머니 뒷간에 가는 척하다가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누웠습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몸을 뒤척이고 헛기침만 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물었습니다.
“어디 갔다 오니?”
“사랑방에 있다가 지금 건너왔어요.”
“너무 늦었구나, 자렴.”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었는데 벌써 햇살이 문풍지를 뚫고 내 얼굴까지 왔습니다. 나는 놀라서 화닥닥 문을 열고 맨발로 댓돌 위에 내려섰습니다.
“아니, 왜 그러니? 꿈꿨나 보구나.”
엄마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다가 얼굴을 내미셨습니다.
“노루는?”
“그냥 있지 뭐, 놀랄까 봐 가까이 가 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그냥 있겠지?”
“잘 있단다.”
삼촌이 쇠죽을 퍼 주다 뒤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돼지우리로 다가가다가 되돌아왔습니다.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노루가 놀라서 날뛸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대신 삼촌에게 다가갔습니다.
“삼촌, 노루 잡아먹자고 했는데.”
“누가?”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한테.”
“아버지는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삼촌이 승낙할지 모른다고 하시면서 반승낙은 했는데.”
“그럼 잡아야지.”
“왜?”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말이야.”
“안 돼.”
“왜?”
“불쌍하니까.”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엄마가 아침을 먹으라고 하셨지만, 노루가 죽을지 모른다는 마음을 먹기 싫었습니다. 수심에 찬 얼굴을 보신 엄마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셨지만,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말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햇살이 퍼지는 안방 문 앞 댓돌 위에 앉아 턱을 고이고 사립문 쪽만을 계속 쳐다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와 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런 나의 기도는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점심때가 지나고 따스한 햇살이 부지런히 추녀 밑의 고드름을 녹이고 있을 때 동네 어른들이 몰려와 사랑방 부엌이 시끄러워졌습니다.
“아버지 어디 있나? 노루 잡아야 하는데.”
“잘 드는 칼을 준비해 왔지.”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집으로 찾아온 불쌍한 짐승을 잡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안 돼요 안 돼.”
나는 소리를 지르며 뜰 위에서 뛰어내려 돼지우리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자 집안 식구들이 놀라 뛰쳐나왔습니다.
“왜 그래?”
“아저씨들이 불쌍한 노루를 잡는다고 해서.”
고모가 내 말을 듣고 나섰습니다.
“불쌍한 노루를 잡는다고 말이나 돼요? 더구나 먹을 것이 없어서 집으로 찾아온 짐승인데, 잡아먹는다면 잔인한 짓 아닌가요.”
“오빠와 잡기로 약속했는데.”
“그래그래, 잡기로 했어. 물어봐.”
옆에 계시던 아버지는 지게를 지더니 슬그머니 사립문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나를 밀치고 돼지우리로 향했습니다. 나와 고모는 어른들이 가지 못하도록 돼지우리로 통하는 좁은 입구를 가로막아 섰습니다.
이때 이웃집에 가셨던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왜들 그래, 무슨 일이 있어?”
“노루 잡으려고요.”
“무슨 노루?”
“돼지우리에 있는 것.”
“누가 잡으라고 했는데?”
“형님이요.”
“무슨 소리, 아침에 물어보기에 잡지 말라고 했는데.”
“왜요?”
“제 발로 집에 들어온 짐승은 잡는 것이 아니라고 옛날부터 어른들이 말씀하셨지. 오죽하면 집으로 찾아왔겠어? 천벌을 받는다고, 천벌을 받아요. 짐승을 꼭 잡고 싶으면 산으로 가서 사냥을 해야지.”
나는 두근거리던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할머니가 좋다고 하셨다면 노루는······. 이제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노루와 친해지면 매일 같이 먹이도 주고 함께 놀 수 있다는 생각하니 기뻤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이 끝나자, 어른들은 풀이 죽었습니다. 몇 명은 슬그머니 돌아가고 앞집 아저씨와 몇 분만 남았습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아저씨들은 노루를 잡고 싶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정말 안 될까요?”
“이 사람들이 왜 이래, 천벌을 받는다고 했잖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옛날이야기도 모르는 모양이군.”
아저씨들은 할머니의 완고한 말씀에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고모도 기뻐했습니다.
“할머니 내가 매일 노루 밥을 줄게요.”
할머니는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동네 어른들이 다시 사랑방으로 몰려왔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에 생각을 바꾸었는지 다음날부터 사냥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삼촌도 사냥에 함께 가셨습니다. 토끼 고기를 먹어 보고 꿩고기도 먹어 보고 노루 고기도 먹어 보았습니다. 노루 고기가 맛이 있었지만, 우리 집 노루를 잡고 싶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할머니.”
“왜?”
“노루, 우리 집에서 키울 거지요?”
“어째서?”
“우리 집에서 키우면 내가 돌봐 줄 것이니까 안전하고 편할 테니까요.”
“글쎄다. 노루가 네 마음을 알아주려는지.”
할머니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노루와 친해지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내 마음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살그머니 들여다보면 어느새 눈치를 채고는 날뛰기 시작합니다. 처음이라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날이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며칠이 지나자 나는 야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할머니, 노루는 바보인가 봐요. 내 마음도 모르고.”
“그래서 짐승이지, 네 마음을 어떻게 알겠니? 말도 통하지 않는데.”
열흘 정도가 지나자, 산에 쌓였던 눈이 어느 정도 녹았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사냥을 그만두기로 했나 봅니다. 며칠은 재미있었지만, 이제는 하루 종일 산을 헤매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답니다. 할머니가 오늘은 사랑방에 쌓아 둔 고구마를 여러 개 내놓으며 노루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고구마를 줘요?”
“이제는 돌려보내야지. 눈도 녹고 집에서는 키울 수 없는 동물이니까.”
“그래도 키웠으면 좋겠는데.”
“그냥 붙잡아 두면 죽는다.”
“왜요?”
“산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짐승이라 좁은 돼지우리에서는 운동도 못하고 또 가족도 보고 싶어 하니까.”
밤이 깊어지고 사랑방에 모여 있던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고자 삼촌은 나를 살그머니 불렀습니다.
“노루를 놓아주자.”
말없이 돼지우리로 향했습니다.
“문 열어.”
헤어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놓아주면 안 될까?”
“안 돼.”
“왜?”
“낮에 놓아주면 동네 사람들에게 잡힐지도 모르니까.”
나는 살그머니 다가가 돼지우리 문을 열었습니다. 삼촌이 문의 반대편에 있다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빨리 가.”
그러자 노루는 놀라서 담을 뛰어넘어 뒷산으로 달아났습니다.
‘잘 가.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
나는 손을 들고 흔들었습니다.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녀석도 약하기는. 가서 잘 살면 되지. 기도나 하자.”
삼촌은 나를 남겨 둔 채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삼촌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말씀도 맞는 것 같습니다. 나는 돼지우리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았습니다.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처럼 사람들에게 잡히지 말고,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