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가늘던 눈발도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밝고 곱던 햇살도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온통 눈밭으로 변해 버린 산골짜기에 다시 새하얀 눈이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놀아야 재미가 있을까?’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연을 날리는 것이 제일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딱지 지치기도 좋지 않고 썰매를 타는 것도 눈이 많아 신통치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책보자기를 방안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습니다. 양철 필통이 보자기에서 빠져나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뒹굴었습니다.
“왜 그래,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니?”
“······.”
“밥 먹어야지.”
고모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낫을 들고 뒤꼍으로 돌았습니다. 대나무를 자르고 할머니가 가을에 문 바르고 남은 창호지를 몰래 감추어 둔 골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고모가 쫓아 들어왔습니다.
“뭐 하려고.”
고모는 내가 뭘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지만 말려 볼 생각으로 묻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
까치발을 떴습니다. 그러자 고모는 내 고집을 알고는 선반 위에 있는 창호지를 꺼내어 자르고 남은 종이를 골라서 내밀었습니다.
“고모, 할머니한테 말하면 안 돼.”
“말 안 해도 아실 텐데 뭘.”
고모는 빙그레 웃고는 나가 버렸습니다. 밖에서는 아직도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도 싸락눈으로 바뀌어 버린 모양입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 감추어 둔 연을 들고 할머니 몰래 밖으로 나왔습니다. 눈도 그쳤고 아직 달은 없지만 밖은 눈빛에 환하게 보였습니다. 건넛마을 안골도 보이고 논바닥을 건너 저 멀리 학교 앞 가겟집의 등불도 보입니다. 바람이 불고 있지만 학교에서 돌아올 때처럼 세찬 바람은 아닙니다.
오늘은 별보다도 더 높이 연을 날려 보기로 했습니다. 답답한 속마음이 풀어질 것 같습니다. 별들이 꼬리에 내려앉는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매일 날리던 방패연을 그만두고 오늘은 꼬리연을 날리기로 했습니다. 남는 창호지를 버리기도 아깝고 그냥 두었다가는 할머니께 들킬지도 모릅니다. 마을 앞 텃논 배미 둑에 섰습니다. 이곳은 내가 연을 날릴 때마다 서는 곳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형도 그랬고, 삼촌도 그랬습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도 이곳에서 연을 날리셨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연실을 풀었습니다. 그냥 계속 풀기만 했습니다. 꼬리연이라 개똥을 주워 먹지도 않고 바람을 타자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면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없으니, 누가 더 높이 연을 날리나 시합할 필요도 없고 연실을 끊어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연이 별 가까이 다가갔을 때 실의 끝부분만 얼레를 지켰습니다. 연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연의 마음을 잘 압니다. 분명히 더 오르고 싶어서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직도 별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할 때마다 연은 머리만 흔들 뿐 더 높이는 올라가지 못합니다. 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얼레를 떠나 별과 친해지고 싶겠지요. 그러나 얼레에서 연을 떼어놓기는 싫었습니다. 나 혼자만을 남겨 두고 떠나는 것 같아서 꼭 잡았습니다. 별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면 다른 방법으로 소원을 들어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얼레를 돌멩이로 눌러 놓은 채 집으로 달렸습니다. 집에 가서 명주실 타래를 한 뭉치 더 가져와야 합니다. 사랑방을 지나 골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가 화롯불을 뒤적이다가 물으셨습니다.
“밤에 골방에는 왜 들어가니?”
“······.”
“고구마가 다 구워진 것 같은데 고구마나 먹어라.”
“·······.”
내가 명주실을 한 타래를 들고 나오자, 할머니는 고구마에서 재를 떠셨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너 좋아하는 고구마나 먹고 하지. 숙제가 많은가 보구나.”
“아뇨.”
그러자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명주실은 뭐 하려고.”
역시 할머니도 고모처럼 아시면서 물어보시는 게 틀림없습니다. 다 알고 계시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연 날리려고요.”
“이 밤중에?”
“예.”
“아서라 감기 들라.”
할머니는 명주실을 빼앗으려고 일어서셨습니다. 나는 명주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손을 뒤로 감추었습니다. 할머니는 명주실을 무척이나 아끼십니다. 겨울만 되면 연을 만들 때마다 가져가지 못하도록 간섭하십니다. 나는 할머니 마음을 이해합니다. 늦은 봄부터 시작되는 누에치기는 고치를 지을 때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을 들였습니다. 그 고치로 실을 뽑았습니다. 그것으로 명주를 짜느라 엄마와 겨우내 밤을 새웠습니다. 실은 명주만큼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혼이 난다고 해도 빼앗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할머니 한 번만.”
“안 돼.”
“한번만.”
“이 녀석 항상 한 번 만이냐?”
오늘은 할머니께서 결코 양보하실 눈치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 역시 빼앗기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한참이나 할머니와 줄다리기했습니다.
“이 녀석이 할미 말을 우습게 여기고 있어?”
드디어 언성을 높이셨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안방에서 건너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아니, 이 녀석이. 할미 말을 우습게 여기고 말을 듣지 않는구나.”
할머니는 엄마에게 응원을 청했습니다.
“빨리 할머니께 못 드려? 명주실 만드는데 얼마나 공이 든 것인데 할머니 허락도 없이 번번이 가져가.”
엄마의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갔습니다.
“엄마는 괜히.”
나는 재빨리 몸을 피해 옆문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곧 연이 있는 곳을 향해 숨차게 달렸습니다. 얼레가 있는 곳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별들이 아까보다 더 초롱초롱 빛이 납니다. 별빛 사이로 가끔 굵은 눈이 내리기는 해도 하늘은 더 맑고 조용합니다. 얼레를 집기 위해 엎드렸습니다.
‘아니?’
얼레는 없고 돌멩이만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연은 전과같이 꼬리를 흔들며 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얼레는 없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얼레가 어디로 숨어 버린 걸까? 연실도 보이지 않습니다. 연이 제자리에 있는 것을 보면 어디엔가 얼레가 숨어 있습니다. 혹시 실이라도 끊어졌다면 몰라도, 그렇지만 실이 끊어졌다면 연은 날아가서 보이지를 않겠지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위를 살폈습니다.
“누구지? 누가 왔냐?”
둑 밑 짚가리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목소리가 이상합니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선생님 목소리 같은데.’
잠시 후 또 같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분명히 선생님 목소리입니다.
“전데요.”
그러자 선생님이 짚가리 옆으로 고개를 내미셨습니다.
“선생님.”
“그래, 네 연이냐?”
“예.”
“연을 날리다 가지고 가는 것을 잊었나 보구나.”
“아뇨, 조금 전까지 날리다가 실이 모자라서 다시 가지고 왔어요.”
“연이 아주 높이 떴는데 뭘 그래.”
“별 있는 곳까지 날리고 싶어서요.”
선생님은 실타래를 빼앗아 얼레에 감고는 다시 실을 연결하였습니다. 연은 고개를 흔들다 신이 나는지 더욱 높이 멀리 날기 시작했습니다. 연은 개울을 건너고 학교 지붕을 넘어 저 건너 서리실까지 간 듯합니다. 연 실은 아직도 계속 풀려 나갑니다. 연이 가물가물 자꾸만 작아지더니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합니다.
별만큼이나 높아진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별들이 꼬리에 붙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꼬리가 보이지 않은 것은 이미 오래고 머리도 보일 듯 말 듯하기 때문입니다.
“별이 그렇게도 좋으니?”
“예.”
“왜 좋아하지?”
“보고만 있어도 그냥 좋아요.”
“나도 그랬는데.”
“지금은요?”
“지금도 그렇지. 종종 학교 마당에 앉아 별을 헤아리곤 하니까.”
“밤에 연을 날려 본 일이 있으세요?”
“오늘이 처음이다. 그런데 괜찮은 것 같구나. 옛날 생각도 할 수 있고 오랜만에 부모님 생 각도 할 수 있으니 말이야.”
선생님은 아직 집으로 가실 마음이 없나 봅니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물었습니다.
“선생님 안 가세요.”
“가고 싶니?”
“아뇨.”
“나도 그래. 만득이네 들렸다가 저녁을 먹고 놀다가는 길인데, 연을 발견했지 뭐니, 옛날 생각이 나고 밤에 연이 하늘을 날고 있는 게 신기해서 집에 가다 멈춰 섰지.”
우리는 연실을 감았다 풀었다 하는 동안 밤하늘의 별들과 밤을 새울지도 모릅니다. 연이 보이지 않으면 나보다 별들과 친할 것 같아 실을 감고, 보이면 별들을 따고 싶어 연실을 풀어봅니다.
가끔 옆에 있는 산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들립니다. 눈을 이기지 못한 나무들이 가지를 늘어뜨려 눈을 떨어버리는 소리, 또 우지직하고 나무가 꺾어지거나 쓰러지는 소리, 새들이 놀라 날아오르는 소리······. 밤은 조용히 흘러갑니다. 연을 가슴에 품은 채 별을 머리 위에 인 채로 새벽을 맞이할까 봅니다.
선생님의 재미있었던 어린 시절, 옛날이야기들이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집니다. 꼬리연의 실처럼 긴 추억의 꼬리를 물었습니다.
나는 어느새 선생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습니다. 삼촌 같은 선생님의 어깨가 눈보다도 더 푸근하게 껴집니다.
연은 햇살을 받으며 별을 하나 따서 내려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