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반짝반짝, 반짝반짝’ 윗집 서당 할아버지의 부싯돌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별이 뜬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는 이 시간이면 기침 소리와 함께 부싯돌을 두들기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쇠꼴을 집채만큼 등에 지고 다 열리지 않은 사립문을 지게 작대기로 미셨습니다. 지게에 얹힌 꼴 더미가 너무 커서 사립문을 통과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겨우겨우 옆걸음으로 사립문을 통과하시며 마당 한구석에서 공이질을 하고 있는 엄마와 형을 힐끔 보셨습니다.
“아직 덜 됐나 보지?”
“거의 다 됐어요.”
엄마와 형의 손이 더욱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꼴지게로 외양간의 문을 콱 막아 버리고는 다가가셨습니다.
“조금만 하지, 힘들겠어요.”
“당신이 감자떡을 좋아하기에.”
어머니가 절굿공이를 놓았습니다. 아버지는 함지박을 들었습니다. 형은 마당 한가운데에 큰 두레상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사립문을 향해 달렸습니다.
아버지가 형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어디 가니?”
“앞집 아저씨 부르러 가요.”
형은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해마다 감자떡을 하는 날은 앞집 아저씨를 부르는 일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녀석도, 급하기는.”
감자떡 속에는 별처럼 간간이 강낭콩이 섞여 있었습니다. 어느새 반딧불이 호박꽃 사이를 날면서 꽃 초롱을 만듭니다. 두레반 위에는 마요네즈 덩이처럼 아무렇게나 뭉쳐진 감자떡 덩이가 푸짐하게 올라오고 집안 식구들이 각자 그릇을 들었습니다.
“빨리 먹지 않고.”
“그래도 예의 밝아서 어른들이 드신 후에 먹으려고 하나 봐요.”
엄마는 내 마음을 아는지 평상시처럼 말씀하십니다. 나는 겨우 주먹 크기의 반만큼만 먹고 이내 수저를 놓았습니다. 올해도 맛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은 다 맛이 있다고 하는데 내 입맛만 특별히 다른지 모릅니다.
“왜 그래, 맛이 없니?”
“하루 종일 감자 나르고 배가 고플 텐데.”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슬그머니 일어나 뒤꼍 감나무 밑으로 가서 누웠습니다. 평상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감나무잎들이 별들을 감추어 버리고 간간이 틈 사이로 반짝이는 별빛 몇 개가 쏟아져 내립니다. 나는 곧잘 배고픔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쉽게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특히 별을 보는 순간에 배고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들을 헤아리다 보면 금방 잊습니다. 별은 아마도 나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 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모깃불이 스러져 갈 무렵 엄마가 불렀습니다.
“감자떡 더 먹어야지, 배고플 텐데.”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밤이 지나면 쉴 텐데.”
다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엄마는 호박잎에 나머지 감자떡을 정성껏 쌌습니다.
“많이 먹으면 좋으련만.”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뒤뜰 장독대로 가셨습니다. 우리 형제 중에 엄마는 항상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나 봅니다. 많이 먹으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배고프다는 말도 하지 않는 나를, 그저 배가 고프면 가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부엌으로 가서는 무쇠솥을 소리 나지 않게 한 번 열어 보는 것으로 끝을 내곤 합니다. 뒤꼍으로 가서 닭장을 한 번 돌아보고, 다시 한 바퀴 돌아 장독대 뒤 울타리 밑에 핀 난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돌담을 넘어 뒷동산으로 사라집니다. 아마도 몇 차례인가 뒷모습을 눈여겨보셨을지 모릅니다.
오늘은 쏟아져 내리던 별들도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반딧불이도 서서히 물러나 울타리를 넘고 밭을 지나 넓은 논으로 향했습니다. 검은 구름이 뒷동산을 가리며 몰려왔습니다.
“얘들아, 멍석을 말아야겠다.”
형이 부지런히 멍석을 말아 헛간으로 끌어당겼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형을 도울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구름이 앞마당을 덮어 버리기 전에 마지막 남는 별들을 헤아려야 합니다. 외양간 큰 소의 되새김질과 함께 꼬리를 휘두르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아마 큰 소도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별들의 숫자를 헤아리기에 바쁜지 모릅니다.
구름이 어느새 지붕을 넘어 앞마당 돌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윗집 서당 할아버지의 부싯돌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문틈으로 별빛처럼 불빛이 반짝했습니다. 감자떡은 호박잎 속에서 내일을 향해 쉬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