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동생이 모처럼 늦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았습니다.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쑥 냄새를 맡더니 담장 밑에서 옥수수수염을 따왔습니다. 자기 턱에 붙일 속셈인 듯합니다. 오늘은 형인 나보다도 엄마 아버지보다도 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는 심심하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얼마 동안 찰거머리처럼 엄마를 따라다니거나 아버지 옆에서 알짱거려 가끔 핀잔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부모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눈치로 짐작하나 봅니다. 그렇다고 누구와 함께 놀만한 상대가 있지도 않습니다. 또래 아이라곤 맨 윗집에 사는 여자아이 하나뿐입니다.
오늘은 동생이 어른이 되는 것을 허락해 주기로 했습니다. 꾸들꾸들 말라가는 옥수수수염을 칡넝쿨 껍질을 벗겨 노끈을 꼬아 가며 사이사이에 정성껏 꼬였습니다. 코밑에 매달자 그럴듯한 수염을 단 꼬마 난쟁이 어른이 되었습니다. 한껏 멋을 낸다고 아버지의 밀짚모자를 쓰자 동화 속에 나오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중 한 사람이 된 듯 착각에 빠졌습니다.
“형아, 나 어른 같아?”
“어른 같기는, 정말로 어른이 됩셨는데요.”
“그렇지?”
“예.”
동생은 일어나 점잖게 뒷짐을 찌고 배를 내민 채 멍석 둘레를 몇 바퀴 돌았습니다.
“아, 우리 작은 꼬마 할아버지, 멋있어요.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거들랑 연극할 때 꼬마 난쟁이 대장을 해도 되겠어요.”
엄마와 아버지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깔깔대고 웃다가 더 이상 졸음을 참지 못하고 이내 곯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따라 온통 하늘에 소금 천지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마치 이 세상의 별들을 모두 다 품어 안으려는 모양입니다. 동생과 나는 오랜만에 별을 함께 세어 보기로 했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할까?”
“내가 먼저.”
“아니지요, 어린것이 먼저 해야지요.”
“무슨 어른이 먼저 해야지. 냉수도 어른 먼저인데.”
동생은 어른이 된 것을 몹시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럼, 별 하나 나 하나······. 로 정하기로 하시지요.”
“그럼 지는 사람이 먼저 하는 거야.”
“왜요?”
“진 것도 억울한데 늦게 해서야 되겠는가. 그 대신 순서를 정하는 것은 양보하지.”
“예.”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나는 일부러 빨리빨리 세기로 했습니다. 보나 마나 내가 이길게, 빤하니까요.
“아니, 그렇게 빨리.”
동생은 갑자기 눈이 커졌습니다. 시합할 때마다 내가 일부러 져 주었는데 아직도 눈치를 채지 못했나 봅니다. 동생은 앞선 생각을 잊은 듯 빨리해 보려고 하지만, 마음이 급해지자 자꾸만 더듬고 있습니다.
“어른 먼저 하셔야지요.”
“아참 그렇지.”
말하기 전까지만 해도 졌다는 생각에 수염이 떨리고 있었는데, 그래서 늙으면 아이 된다는 말을 억지로 갖다 붙여도 될 일은 아닙니다. 어쨌든 동생은 어른으로서의 체면을 지켜주기로 했습니다. 먼저 시작하게 됐다는 것에 퍽이나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입니다.
“하나, 둘, 셋,······아흔아홉, 백.”
산봉우리에 걸린 별을 시작으로 은하수 물속을 따라 건넛마을 동구 밖 둥구나무가 맞닿은 곳까지 세어 가기로 했는데, 너무나 많은 것을 세려고 했나 봅니다. 세다 보면 숫자를 까먹고 헤아리다 보면 어느새 빠뜨리고 지나간 별들이 있어서 또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빠진 별들은 분명히 서운할 것이라고 동생 어른이 점잖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생의 그 꼼꼼한 셈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몇 번을 다시 해봐도 헤아리는 것은 늘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결국 견우직녀 사이에 있는 별 다리에 서서 고개를 왼쪽으로만 돌려야 했으니까요. 동생은 이제 지루하고 답답한지 어른이 되는 것은 나중에 해야겠다고 수염을 뽑아 담장 위에 던져 놓았습니다.
“형, 오디 봤어?”
“무슨 오디?”
“내가 아는 비밀인데 오디가 잘 익었더라.”
“응.”
“그런데 내가 오디를 맡아 놓는 것을 상식이 형이 보았거든. 내일 아침이면 다 따먹을지도 모르는데.”
반달은 전번과 같이 오동나무 잎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초가집 용마루에 앉았습니다.
“형아.”
“예 어르신.”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형아.”
동생을 데리고 일어섰습니다. 맡아 놓았다고 하는 곳은 묻지 않아도 뻔합니다. 사립문 앞 조밭 가운데 공주님의 치마를 흉내 내 가지를 마음껏 사방으로 펼치고 자랑스럽게 서 있는 뽕나무, 누구에게도 오디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치마폭에 숨기고 있는 모습을 진작부터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할아버지가 가리켜 주시지 않으셨어도 아버지가 아셨고, 아버지가 가리켜 주시지 않았어도 삼촌이 알았고, 그 다음엔 형이 알았고 또 내가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이 나무는 벌써 세 번 이상이나 둥치를 바꾸었다 하니 우리 밭의 산증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밭은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우리들이 조 포기를 헤쳐 나가는 사이 이들은 조금이라도 떨어지기가 싫은가 봅니다. 떨어진 몸을 부둥켜안으려고 잎을 비비고 줄기를 비비고 나중에는 머리를 비빕니다. ‘스슥스슥’ 소리가 조용한 밤공기를 뒤흔들었습니다. 별들이 우리들을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바다를 헤엄쳐 가는 물개나 고래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조밭 사이로 얼굴만 내민 채 조심조심 다가가는 것이 아마도 그들의 수영쯤으로 짐작될 거라 여겨집니다.
굵은 가지를 골라 동생을 올려놓았습니다. 수많은 별과 그리고 달이 있는 밤은 이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동생이 염려되어 도와주는 것이 있다면 반딧불이 주위를 맴돌면서 뽕잎 사이를 드나드는 것으로······.
새총처럼 갈라진 뽕나무 둥치에 등과 발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견우와 직녀가 어제보다 좀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칠월 칠석이 다가오기엔 아직도 보름달이 두 번은 더 지나가야 하지만 그들이 재촉하지 않는 것은 아직 만나서 해야 할 준비가 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지요
오늘밤은 훼방꾼은 있었습니다. 벌써 별똥별이 견우와 직녀 사이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두 개나 엇갈려 지나가 버렸으니까요.
“헝아, 그만 가자.”
동생의 눈까풀이 아래로 감기고 있었습니다.
“업혀.”
조 무리가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견우의 별은 직녀고 직녀의 별은 견우인데, 나의 별은……. 개똥벌레들은 쉬지 않고 조밭 위를 한가로이 날고 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별빛과 함께 초가지붕 등마루를 타는 달빛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