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글이 써지지 않을 때 20230320
‘봄이 왔는데 마음은 삭막해진 거야.’
만물이 움트고 꽃을 피우는데 나는 글감을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저 책 이 책, 저 신문, 이 신문 들춰봅니다. 마음만 급해집니다. 오솔길을 따라 걸어봅니다. 비둘기 떼를 만나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까마귀를 곁을 스쳐 지나가며 그들의 동태를 살펴봅니다. 까마귀를 몰아내던 까치들도 오늘은 멀찌감치 자리를 잡고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까마귀를 에워싸고 겁을 주는 까치들의 모습이 사나워 보입니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몸을 스치듯 위협 비행을 합니다. 곧 쪼아댈 기세입니다. 평소와는 달리 그 모습이 달라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냈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 까마귀는 자리를 떴습니다. 까치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달아납니다. 숫자로 보아 도저히 승산이 없음을 알아차렸는지 모릅니다. 화면에는 까마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까치의 헝클어진 모습만 남았습니다. 정돈되지 않은 사진입니다.
‘흐트러진 내 마음과 같습니다.’
나는 이런 광경을 몇 차례 보았지만, 까마귀가 까치를 이기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늘 까치의 기세에 눌려 까마귀가 자리를 피하곤 합니다. 옛날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까치가 영물이라고 합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올 거라고 했습니다. 까마귀도 영물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죽을라치면 영락없이 까마귀가 운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말이 맞는지는 몰라도 동네에 초상이라도 나면 영락없이 까마귀들이 하늘을 날며 까옥까옥 울어댔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까마귀를 흉조라고 여겼습니다.
이솝우화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허영심 많은 작은 까마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공작새가 떨어뜨리고 간 깃털을 주웠습니다. 까마귀는 그 깃털을 자기 털에다 꽂았습니다. 자기가 봐도 멋있어 보였습니다. 우쭐한 마음에 친구들을 얕잡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자신만만하게 공작새 무리에게 찾아갔습니다. 공작새들은 이 침입자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쪼면서 마구 쫓아냈습니다. 할 수 없이 까마귀는 예전 친구들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으스댔던 행동 때문에 자기 무리에서도 역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 우화는 자기 본연의 위치를 지키지 않다가는 해를 입게 된다는 가르침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작교 이야기입니다.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읽었다면 둘을 만나게 해 준 숨은 조력자가 있음을 알 것입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 준 동물이 바로 까마귀와 까치입니다.
이들은 칠월 칠석날 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 만날 수 있도록 서로의 몸을 잇대어 다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까마귀 ‘오’와 까치 ‘작(鵲)’자를 합쳐 이 다리의 이름을 오작교라고 부릅니다. 둘의 사랑을 이어준다는 점에서 오늘까지도 사랑을 놓아주는 사람이나 행위를 오작교라고 부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날은 지상에서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 없으며 칠석이 지나고 나면 까치의 머리가 벗어지는데 이것은 견우와 직녀의 발에 새들의 머리가 밟혀 벗겨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이날이 되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그날을 기다렸지만, 늘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나를 실망이라도 시키려는 듯 저녁이 되면 하늘에 구름이 드리우거나 비가 내렸습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히 볼 수가 없지.”
견우와 직녀가 기쁨의 눈물과 헤어짐의 눈물을 흘리니 하늘이 흐려 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다가와 있었습니다.
‘오늘 밤에는 꼭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들뜬 마음으로 하루 종일 지냈지만 정작 밤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도회지에 와서는 견우와 직녀별은 고사하고 별 자체를 볼 수 없습니다. 대기의 오염과 밝은 불빛으로 인해 맑은 날에도 별 보기가 복권 당첨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오늘은 무작정 까치와 까마귀를 쫓아 공원을 헤매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