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12. 달력의 무게 20230613

by 지금은

‘달력의 무게는 낮에 무거울까 아니면 밤에 더 무거울까.


달력의 무게는 봄에 무거울까 아니면 여름에 더 무거울까.’


문득 달력의 무게를 생각해 낸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철학적인 물음 갖기도 하고 철없는 아이의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생각했으니 좀 더 끌고 가야겠습니다. 엉뚱한 생각이라고 하고 주저리주저리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해야 할까 봅니다.


사실 달력의 무게를 말한다는 게 뭐 가당치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름이 확연합니다. 크기도 다릅니다. 모양도 다릅니다. 달력의 변천사도 있습니다. 사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내가 본 견지에서는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 달력이 귀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돌리는 달력은 일 년을 아우르는 보물단지입니다. 집에서 잘 보이는 방안의 벽면에 붙여둡니다. 반지의 반만 한 종이에 열두 달 365일과 제공자의 사진이 들어있습니다. 날짜를 헤아리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해가 바뀔 때까지 그 사람의 얼굴을 봐주어야 합니다. 해가 지나도 달력은 요긴합니다. 벽지가 되기도 하고 문종이가 되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을 때입니다. 대단한 달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력입니다. 벽걸이입니다. 합치면 367장이나 됩니다. 무겁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종이를 한 장 뜯어냅니다. 오늘은 12일이니 11일까지의 장이 사라졌습니다. 게으른 집안의 달력은 며칠이나 그날이 그날입니다. 오늘이 12일인데 달력이 가리키는 날은 9일입니다. 지난 일자의 종이는 뒷간의 화장지로 제격입니다. 제격보다 고급입니다.


달력은 변화를 거듭하며 탁상용이 생겨났습니다. 시계처럼 날짜를 움직이는 것도 있습니다. 어느새 달력이 천지입니다. 그림 또한 다양하고 화려해졌습니다. 요즘은 종이 달력이 줄어드는 대신에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종이 달력을 선호합니다. 날짜마다 내가 기억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표시할 수 있고 수시로 확인하게 됩니다. 물론 스마트폰에 그 기능이 있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보니 아직은 벽에 있는 달력이 나를 잘 도와줍니다.


아직 앞의 물음에 동문서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달력의 무게가 낮에 무거울까 아니면 밤에 더 무거울까? 밤보다 낮이 밝으니 가볍겠습니다. 아니할 일이 많으니 더 무거울 것 같습니다. 계절로 보면 여름과 겨울이 더 무거울 것 같습니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니 아무래도 더 무겁다고 봐야겠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봄이나 가을에는 나들이가 더 많으니 더 무거울 수밖에. 그러지 말아요, 겨울은 나뭇잎이 다 떨어졌으니 가볍지요.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추우니 두꺼운 이불을 덮고 두꺼운 옷을 입지 않나요? 잠시 꼬마의 세상에 다녀온 것은 아닌지 동화의 세계에 빠졌음이 분명합니다.


평생학습관 글쓰기 모임에서 글쓰기를 배웁니다. 시작한 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둘 나이가 되어 심심함을 피해 보려고 한 것이 마음에 들어 이제껏 연필을 들고 있어 필기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찰떡궁합이라고 할까요? 때로는 주위에 눈을 돌리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몰입니다. 온종일, 때로는 몇 주일 몇 달 동안을 오로지 글 쓰는 것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내 글이 잘 된 글인지 아닌지 평가할 새도 없이 원고량은 늘어갔습니다.


어쩌지요. 싸이는 원고에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부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부자가 되고 보니 관리가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마름을 두었는데 지금은 전문가에게 관리를 맡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산은 그렇다 치고 글에 관한 것은 어쩌겠습니까.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사에게 그 역할을 청했습니다. 강사라고 똑같은 강사는 아닙니다. 실력이나 가르치는 방법의 차이가 있습니다. 몇 번의 수강 변경 끝에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장단점을 지적해 줍니다. 스스로 노력을 많이 했다고 자부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글쓰기의 솜씨가 좋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모든 글을 그에게 맡길 수 없고, 그 또한 관점이 다를 수 있으니 나 스스로 터득해 나가야만 합니다. 모든 글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고 난 후에 아직도 내 글에 대해 불편한 믿음에 머무는 게 문제입니다.


내 달력에는 여러 가지 일정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소사를 비롯하여 남과의 만남, 내가 참가해야 할 일들입니다. 어느 경우에는 머릿속이 혼동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빈 곳도 있지만 어느 날은 몇 가지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날짜의 여백이 계획들로 꽉 차 있습니다. 아직 매듭을 짓지 못한 것들도 있습니다. 사진 에세이의 구상, 그림책 만들기, 그동안 써 놓은 시의 정리, 연필 스케치, 미술가와 작품의 연계성, 작곡가와 그의 작품들…….


오늘은 달력이 무겁군요. 내 생각을 받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달력의 무게는 내 마음의 무게와 같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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