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21. 비는 왜 맞니?

by 지금은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늘이 온통 먹구름으로 덮였습니다.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내가 교실 청소를 하는 동안 친구들은 앞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뛰어갈까?’

영진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무 때나 뛰어다니면 좋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큰 사람은 큰길로 다니고 천천히 중심을 잡고 의젓하게 다녀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범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뛰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자칫하다가 옷과 책이 온통 물에 젖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집에 갈 때까지만 참아 주면 좋겠는데.’

하늘을 올려보니 오래 참아 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집에 도착하려면 빨리 가도 한 시간 반은 가야 합니다. 뛰어가더라도 비를 만나면 낭패입니다. 피할 곳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개울 건너 상엿집까지만 간다면 비를 피할지도 모릅니다. 부지런히 걸어서 산모퉁이를 돌았습니다. 이제는 학교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 모퉁이를 돌았습니다. 양지마을이 보이지 않습니다. 안마을이 보입니다. 언덕을 넘었습니다. 이제는 안마을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개를 넘었습니다. 곰 바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도랑을 건넜습니다.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집니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집니다. 지나가는 비라면 좋겠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소나기를 몰고 올 것 같습니다. 다시 하늘을 보니 산봉우리 위로 비가 안개처럼 몰려옵니다.

‘후드득.’

빗방울이 머리 위로 다가와 호야 뒤로 막 달려갑니다.

‘안 되겠다 달려가야지.’

호야는 책보자기를 풀어서 앞가슴에 안고 달립니다. 달려가면 곧 상엿집에 도착합니다. 조금만 참아 주면, 비를 피할 수 있습니다. 상엿집 앞까지 달려갔을 때는 숨이 차서 헐떡거렸습니다. 벌써 옷이 흠뻑 젖었습니다. 머리에서 빗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상엿집 추녀 밑에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습니다. 숨을 고르고 가슴에 잡고 있던 책보자기를 살펴보니 반은 젖었습니다.

‘에이 책은 젖지 말아야 하는데.’

이제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번개가 번쩍하고 주위를 밝히고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컴컴한 가운데 가끔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머리를 울립니다. 번쩍이는 번개는 호야를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상엿집에 머문다는 것이 무섭기는 해도 호야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이곳뿐입니다.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호야는 두 눈을 꼭 감고 벽에 기대었습니다. 등 뒤에 책보자기를 찔러 넣었습니다. 빗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립니다. 빗방울이 사정없이 추녀 밑으로 흩날리며 호야의 얼굴을 간질입니다. 온몸이 젖어서 이빨이 떨립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호야는 드디어 얼굴을 무릎 사이에 감추고 두 팔을 벌려 깍지를 꼈습니다. 얼굴을 묻고 있으니, 천둥소리도 번개의 빛도 다소 희미해집니다. 이렇게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나 봅니다. 바윗덩어리가 구르는 소리에 그만 소스라쳐 눈을 떴습니다. 꿈입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비가 가늘어지면서 멈출 기미가 보입니다. 앞산 봉우리에 햇빛이 반짝 빛났습니다. 지나가는 비일까 아닐까? 어쨌든 따질 것은 못 됩니다. 이제는 어둡기 전에 집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늘게 내리던 비도 곧 멈출 듯 작은 시곗바늘처럼 느려집니다. 이제는 가야 합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해가 넘어갑니다. 상엿집 앞을 지날 때마다 늘 섬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더욱 무섭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다행입니다. 눈앞으로 갑자기 다가서는 천둥 번개가 더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숨을 힘껏 들이마시고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부지런히 달려간다면 반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산모퉁이를 돌고 또 돌고 이제 다섯 모퉁이만 돌면 됩니다. 이제 네 모퉁이만 돌면 호야네 집입니다. 빗방울이 언제 따라왔는지 다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뛰어 봐도 뛰지 않아도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옷은 물론 책까지도 젖었습니다. 그래도 이왕 달린 것이니 쉬지 않고 집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빨리 가서 책과 공책을 방에 펼쳐 놓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떡이 될지 모릅니다. 책장이 서로 붙지 않게 해야 합니다. 호야는 달렸습니다. 세 모퉁이 남았습니다. 이제 두 모퉁이 남았습니다. 비는 오락가락 내리고 있습니다. 숨을 할딱이며 달립니다. 힘이 빠져 걸음이 점점 느려집니다. 숨은 목까지 차오릅니다.

‘후’하고 숨을 몰아쉬는데 갑자기 밭둑 위에서 동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얘야, 맞을 비는 안 맞고 쓸데없는 비를 맞아서 온몸이 젖었구나.

“예?”

“쓸데없는 비는 왜 맞느냐? 이거지. 맞을 비나 맞을 것이지. 걸어가거라.”

이웃집 할아버지가 혀를 차셨습니다.

‘비도 맞을 비가 있고 맞지 않을 비가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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