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26. 청산리 벽계수야

by 지금은

“한 시간만 앉아 보자.”

“싫어.”

“대개 쟤네.”

“재는 게 아니라 우리 엄마가 안 된다고 그랬어.”

“엄마 몰래 한 시간만 앉아서 보면 될 거 아냐.”

“그래도.”

호야가 효주에게 간청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식 딱지를 백 장도 더 접어주었는데……’

호야는 효주와는 같이 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이 부자면 얼마나 부자라고 그럴까 하고 생각하니 몹시 기분이 상합니다.

일 학년에 입학했습니다. 교실에 들어가 보니 흙바닥에 책상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찰흙을 다져서 만든 교실이라 바닥이 매끄럽기는 해도 긁히거나 파인 곳이 몇 군데 보입니다. 아이들의 장난 때문입니다. 흙이 가끔 묻어납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책상에 앉고 싶은 사람은 책상값을 가져온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게 된 친구는 효주 한 사람입니다. 모두 흙바닥에 엎드려 글씨를 쓰는 것이 안쓰러웠나 봅니다. 선생님이 가마니 한 장씩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가마니를 가지고 오자 바닥에 줄을 맞추어 깔았습니다. 흙이 묻어나지 않고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서 좋기는 하지만 불편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칠판에 기역, 니은, 디귿 등을 써 주시면 우리는 한 자 한 자 써갑니다. 한참을 지나면 팔꿈치와 무릎 그리고, 다리에 가마니 자국이 선명하게 찍히고 벌건 무늬가 생깁니다.

효주는 시조창을 잘합니다. 할아버지한테 배웠다고 합니다. 어쩌다 다른 학년 선생님이 보결 수업을 하실 때면 우선 효주의 시조창을 들은 다음에야 우리들을 가르치십니다. 선생님들은 효주를 특별히 귀여워하고 칭찬을 자주 합니다. 요즈음 말로 해서 그 녀석의 팬입니다. 물론 효주는 잘생겼습니다. 상고머리를 하고 옷도 멋집니다. 항상 새 옷입니다. 효주를 싫어하고 업신여기는 친구는 하나도 없습니다. 키는 커도 약하게 생겼습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저 공부만 하고 얌전히 있다가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집에 갑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선생님은 키 큰 효주를 항상 맨 앞줄 칠판 앞에 앉힙니다. 키대로 라면 분명히 맨 뒷줄에 가서 앉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칠판 글씨가 안 보일 때가 많습니다.

친구들이 가끔 말합니다.

“선생님, 칠판 글씨가 안 보여요.”

“안보이기는 눈이 나쁜가 보구나.”

“그게 아니고요, 효주가 칠판 앞에 앉아 있어서 그래요.”

“그럼 일어나서 보면 되지.”

효주 뒤에 엎드려 쓰던 상선이가 일어나서 글씨를 보고 엎드렸습니다. 상선이 뒤에 엎드려 있던 민구가 일어났다 앉았습니다. 상선이 뒤에 엎드려 있던 인징이가 일어났다 앉았습니다. 뒤에 앉은 철용이가 일어났다 앉았습니다. 엎드렸다 일어났다 엎드렸다 일어났다. 모두 엎드렸다 일어났다 엎드렸다 일어났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효주가 다 쓴 다음에 쓰렴.”

아이들의 한쪽 눈이 선생님에게로, 한쪽 눈은 효주에게로 갔습니다.

“효주야, 다 썼니? 다 썼으면 이리 와서 시조를 읊으렴.”

선생님은 의자에 앉아서 지그시 눈을 감았습니다.

“청산리 벽계수야…….”

‘청산리 벽계수야…….’

아이들이 모두 엎드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먼저 쓴 사람이 먼저 집에 가는 거야.”

떠들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없어졌습니다. 빨리 써야 먼저 집에 갑니다. 아이들의 손놀림이 빨라지고 연신 연필심이 입으로 갔다 공책으로 갔다 합니다. 청산리 벽계수는 오늘도 제일 먼저 집에 갑니다. 집이 제일 가까운데도 말입니다. 집이 가까운 사람은 일찍 가나 봅니다. 호야는 생각했습니다.

‘학교로 이사를 오자고 해야지.’

그렇지만 호야는 별 보고 집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매일 샛별을 보고 학교에 오듯이 말입니다.

호야 공책의 네모 칸에 구멍이 뻥 뚫렸습니다. 침을 덜 묻혀서 그럴까요. 송래의 네모 칸이 뻥 뚫렸습니다. 침을 너무 많이 묻혀서 그런지 모릅니다. 호야가 송래의 공책을 보았습니다. 송래가 호야의 공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희’ 하고 웃었습니다. 호야가 급하게 글씨를 썼습니다. 네모 칸이 찍 갈라졌습니다. 송래가 재빨리 입으로 연필을 가져갔습니다. 네모 칸이 찍 갈라졌습니다. ‘희’ 웃고 동시에 지우개가 네모 칸으로 갔습니다. 찍 공책 장이 구겨지면 찢어졌습니다. ‘에이.’ 할 수 없이 공책을 넘겨 처음부터 글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공책 장은 자꾸만 찢어집니다. 연필은 자꾸만 부러집니다.

선생님이 눈을 뜨고 일어나셨습니다.

“송래, 너 꿀밤이다.”

“호야, 너 알밤이다.”

“이 녀석들 뭘 중얼거리고 있어. 부지런히 안 쓰면 알밤 꿀밤 모두 준다.”

손놀림이 바빠집니다.

“아무리 바빠도 네모 칸은 메우고 가야지, 벌써 가려고 한쪽은 뛰어넘었구나.”

선생님은 호야의 연필을 들어 빈자리의 다섯 칸을 메우십니다. 그렇지만 두 칸은 뻥 뚫렸습니다. 또 선생님은 송래의 연필을 들어 빈자리 네 칸을 메우십니다. 그렇지만 두 칸이 뻥 뚫렸습니다.

“선생님 두 칸이 구멍 났어요.”

“이 녀석들 그것도 모르냐? 눈이 두 개니 그렇지. 한 눈으로 보는 것보다야 두 눈으로 보는 게 났겠지.”

호야가 공책을 들어 밖을 쳐다보았습니다.

“선생님 진짜네요. 밖이 잘 보여요.”

“이 녀석, 선생님이 거짓말하는 것 봤냐?”

“아뇨.”

“집에 갈 때 두 눈을 잘 뜨고 가야 한다.”

“예.”

송래와 호야는 공책의 네모 칸을 더 크게 뚫었습니다.

“잘 보이지.”

“응.”

“그래서 할아버지가 안경을 쓰셨구나.”

‘내일은 수수깡 안경을 쓰고 학교에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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