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29. 바람개비

by 지금은

언덕길을 따라 마구 달려갑니다. 바람이 귀를 스치고 뒤로 지나갑니다. 길도 호야를 남겨 두고 뒤로 달려갑니다. 산도 호야를 남겨 두고 뒤로 달려갑니다. 제자리에 서 있는 바람개비만 신나게 돌아갑니다. 드디어 바람개비가 속삭였습니다.

“야, 호야야. 어지러워.”

호야의 귀에는 바람개비의 속삭임이 들리지 않습니다. 멀리 보이는 언덕 아래 개울까지 달려야 합니다.

‘왜냐고요?’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곳까지 달려가야 하니까요. 개울에 다다르면 징검다리가 호야를 반갑게 맞아 줍니다.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돌다리는 호야를 아주 좋아합니다. 아침에 가도, 저녁때 가도, 점심때 가도 한 여름밤 등목을 하러 가도 돌다리는 기다립니다. 흘러가는 시냇물이 노래하며 호야를 반깁니다. 호야는 달립니다. 가을이 되면 눈발이 흩날리는 초겨울까지 집 언덕에서 개울까지 매일매일 달립니다. 어느 때는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달린답니다.

“애, 호야야 넘어질라.”

언덕을 오르다 비켜서서 말씀하시는 슬기 할머니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헉헉 달려 올라가 다시 달려 내려갈 때는 산바람처럼 시원합니다. 송송 맺히는 이마의 땀방울이 호야의 얼굴을 간질입니다.

작년에는 비탈길을 달리다 두 번이나 넘어졌습니다.

“에구 이를 어쩌지? 무릎이 깨졌군.”

혀를 차면서 울고 있는 호야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흘러가는 시냇물을 한 움큼 쥐어 피와 흙이 뒤범벅이 된 무릎을 닦아주시던 슬기 할머니, 아마도 작년 생각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뭐라고 계속 말씀하시지만, 호야는 바람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서 듣지를 못했습니다. 바람개비는 할머니가 호야 걱정을 하고 계시리라고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돌돌 돌 돌돌 돌.

돌돌 돌 돌돌 돌

호야를 따라 달려가던 바람개비는 너무 빨라서 현기증이 났습니다.

“호야야 제발 천천히 제발 천천히.”

드디어 바람개비는 울상이 되었습니다. ‘윙윙’ 참고 참아도 목구멍으로 신음이 새어 나옵니다. 호야는 달려야 합니다. 더 빨리 달려야 합니다. 올해는 상수를 이겨야 합니다. 꼭 이겨야 합니다. 작년에 상수와 시합했습니다. 매일매일 지기만 했습니다. 올해는 꼭 이겨야 합니다. 그저께 상수가 시합하자고 말했습니다. 올해는 으스대는 상수 자식을 봐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열 번도 더 달렸습니다. 상수가 오면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기다려도 상수는 보이지 않습니다.

“내일은 시합하자고 해야지.”

달려서 징검다리를 만났습니다. 징검다리는 힘이 아주 셉니다. 호야가 하루 종일 딛고 있어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호야가 무거워 힘들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가볍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시냇물은 말합니다.

“징검다리는 힘이 세니까.”

호야가 징검다리 위에 섰습니다. 물이 내려오는 곳을 바라보며 가슴을 풀어헤쳤습니다. 바람이 다가오며 말했습니다.

“시원하지?”

“응.”

“바람개비가 잘 돌아가게 도와줄게.”

바람은 쏜살같이 달려와 힘차게 바람개비를 도와줍니다. 어지러워서 쩔쩔매던 바람개비도 제자리에서 숨을 고릅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자, 정신이 맑아집니다.

‘스르륵 스르르 살살 살’

잘도 돌아갑니다. 호야의 땀도 점차 식어 갑니다. 저녁 햇살이 호야의 주위를 맴돌다 저 아래 검정소를 보고 갔다 왔다 합니다. 어느새 앞산의 그림자가 시냇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야, 호야야. 상수네 이사 갔다.”

작은아버지는 호야가 상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상수가요?”

“응.”

“상수가 말 안 했는데요.”

“이삿짐 날라주고 오는 길이다.”

‘나쁜 놈, 시합하기로 약속해 놓고.’

호야는 바람개비를 던져 버린 채 상수네로 달려갑니다. 바람이 등을 떠밀어 갑니다.

‘작은아버지 말씀이 거짓말이겠지?’

상수네 사립문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상수야, 상수야.”

호야가 다시 징검다리로 달려와 눈물을 찔끔거리며 숨을 고르다 시냇물을 한 움큼 움켜쥐고 눈 주위를 닦았습니다.

‘상수 자식, 시합 약속 해놓고서.’

버들가지에 걸린 바람개비는 여전히 잘도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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