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치약
“야, 호야 너 집에 가서 이르면 안 돼. 이르기만 하면 죽을 줄 알아.”
병우가 세수하는 동안 치약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호야에게 겁을 줍니다. 호야는 그저 고개만 끄덕입니다. 세수가 끝나자, 병우는 남은 치약을 도랑 옆 담장 틈에 숨겼습니다. 호야는 그저 모른 척하고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만 대강 세수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렇습니다. 아침마다 세수라고 하지만 물만 찍어 눈코 주위만 씻는 둥 마는 둥 합니다. 늘 목에는 땟국이 흐릅니다. 병우는 항상 얼굴과 목이며 팔다리가 깨끗하고 깔끔합니다. 비록 남의집살이 하며 밥을 얻어먹기는 해도 한껏 멋을 부립니다. 호야보다는 나이가 다섯 살이나 위입니다. 힘은 세지 않지만 싸움에는 선수입니다.
우리 동네에 처음 왔을 때 아이들이 업신여기다가 한 번씩 돌아가며 혼이 났습니다. 싸움 대장인 병우가 처음부터 텃세를 부리는 아이들의 기를 꺾을 생각을 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이들이 병우의 기를 꺾고 골탕을 먹이려고 준비했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동네 또래의 형들은 우선 눈싸움에서부터 지고 말았습니다. 동네에서 두 번째로 싸움을 잘하는 형이 시비를 걸어 눈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지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서로 노려보다가 동네 형은 병우의 째지고 날카로운 눈빛에 그만 눈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개울가에서 치고받고 했는데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어찌나 날쌘지 한 대 때리고 요리조리 잘도 피합니다. 약 올리기 선수입니다. 동네 형들은 달려들다가 제힘에 지쳐서 나중에는 실컷 얻어맞았습니다. 힘도 세고 싸움도 제일 잘하는 석대가 혼낼 줄 양으로 병우를 불러 말씨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기싸움이 대단했습니다. 며칠 동안 말싸움을 하던 둘은 드디어 주먹다짐했는데 역시 막상막하입니다. 오늘 싸움이 끝나면 내일은 병우가 찾아와 싸움을 걸고 또 모래는 석대가 찾아가 싸움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일주일도 넘게 옥신각신했습니다. 결국 석대가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싸움 실력은 서로 비슷했지만, 병우는 독기가 있습니다. 장날 장터에 다녀온 후입니다. 석대는 병우의 지난 일에 대하여 어떻게 알았는지 갑자기 싸움을 멈추었습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병우는 한 번 싸움을 벌였다 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습니다. 석대가 기권했어도 계속 싸움을 걸어 결국에는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자식 진작 그럴 것이지, 내가 누구라고 까불고 텃세를 부려.”
그 뒤로 석대와 병우는 둘도 없는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씨름하거나 투덕대며 싸워도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금방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기수 아저씨는 어느 날 이런 병우를 불러 말했습니다.
“병우야, 너 권투를 배워서 권투 선수가 돼 볼 생각이 없니? 있다면 내가 소개해 줄게.”
“아뇨, 그럴 생각은 없어요.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살 때도 몇몇 사람들이 아저씨와 같은 말을 했지만 거절했어요. 왜냐하면 남에게 얻어맞고 살기는 싫거든요.”
병우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대꾸를 잘하고 대들기도 하지만 기수 아저씨한테만은 절대로 말대꾸하지 않습니다. 대들지도 않고 매우 어려워합니다. 언젠가 병우가 윗동네 아이와 싸웠습니다. 타일렀는데 대들다가 아주 혼이 났기 때문입니다. 힘으로야 병우가 훨씬 세지만 하나하나 따져 가며 조리 있게 타일렀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을 대하듯이 예의를 지켜서 행동하고 말합니다. 가끔 동네에서 말썽을 피워 아저씨에게 끌려가 혼이 나고 매도 맞았지만 욕하거나 싫어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볼일이 있어 서울에 가신 후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서로 농담도 잘하고 욕도 잘하던 병우와 석대 사이에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석대는 병우가 사용하는 치약을 찾아내어 우리 집에 돌려주었습니다.
“호야 너 치약 어쨌니?”
“무슨 치약?”
“저번에 너희 집에 있는 치약 몰래 가져다 돌담 밑에 감춰 둔 것 말이야.”
“모르겠는데.”
“만약 거짓말이면 죽을 줄 알아.”
호야에게 겁을 잔뜩 주었는데 일이 터졌습니다.
“인마, 남들은 비누도 없어서 그냥 세수하는 판에 이빨 닦는 치약으로 세수하면 어떻게 해. 치약 이 얼마나 귀한데 말이야.”
“이 자식, 범인은 너구나. 치약 내놔.”
“치약이 네 것이냐? 주인 찾아 줬다.”
“이게 건방지게 나한테 도전을 해?”
이렇게 된 싸움은 며칠이 계속되었습니다. 서로 코피가 나고 상처가 나도 지지 않고 싸웠습니다. 석대는 각오가 대단했습니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지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어른들이 말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동네에서 병우를 쫓아내자 어디서 밥을 얻어먹고 지내는지는 몰라도 매일 석대를 불러내어 싸웠습니다.
결국 기수 아저씨가 돌아와서 일은 해결이 되었습니다. 아저씨가 돌아오자, 싸움은 곧 멈췄습니다. 그 사납던 병우는 아저씨한테 매를 맞고 동네 어른들에게 빌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처럼 하얀 이빨과 멋진 얼굴이 되고 싶어서 그랬어요.”
다음날 병우는 새 치약을 손에 쥐고 일찍 아저씨를 따라 동네를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