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새끼발가락
학교에서부터 발가락이 불편했습니다. 참으며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도 걷기가 힘듭니다. 왼쪽 고무신에 발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신발 한 짝은 들고 왔습니다. 신어 보려고 하니 남의 신발 같습니다. 발과 신발을 마주하고 봐도 그렇습니다. 책보자기를 방에 내려놓았습니다. 집안을 살펴봤지만, 식구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밭고랑을 따라 도랑으로 갔습니다. 도랑 가에는 머위들이 있습니다. 비좁게 자리다툼이라도 하듯이 촘촘히 들어찼습니다. 호야는 머위의 잎을 여러 장 잘라 돌 위에 놓고 짓이겼습니다. 발가락과 발등 위에 수북하게 얹었습니다. 도랑의 벽을 침대 삼아 팔베개하고 뒤로 벌렁 드러누웠습니다.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이 몇 점 한가롭게 떠 있습니다. 새들이 가끔 머리 위를 지나갑니다. 비행기 한 대가 구름보다 더 높이 떠서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발가락이 삐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집안 식구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새끼발가락 삔 것 정도를 가지고 뭘 그러느냐. 다리가 없는 사람도 있는데.”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 식구 중에는 발가락, 다리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편한 말을 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입을 꼭 다물고 있는 편이 낫습니다. 다시 말했다가는 핀잔을 듣기가 쉽습니다.
학교에 갔습니다. 신발을 신발장에 넣었습니다. 교실을 들어서려는데 서린이가 교실에 있다가 어느새 나왔습니다. 내 아픈 발가락을 발로 톡 건드렸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는 발가락을 움켜쥐었습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야야.”
“야 인마, 그까짓 것 가지고 뭘 그래.”
올려다보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힘만 세다면 일어나서 세게 패 주고 싶었습니다. 참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마, 아픈 발가락을 건드리면 어떻게 해. 네가 어제 장난으로 내 발가락을 차고 도망가서 삐었는데."
서린이 자식은 아무럴지 알게 말했습니다.
“네 발가락은 형편없구나.”
비웃기라도 하는 얼굴로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이 녀석은 우리 반과 아래 학년 아이들에게 여러 번 그 짓을 했습니다. 나쁜 놈입니다. 언젠가는 벌을 받을 날이 있을 겁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간장을 발가락에 자꾸 발랐습니다. 친구들이 이것저것 말하는데 어느 것이 삔 곳에 좋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제 일만 해도 짝이 말해서 머윗잎을 발랐지만, 효과가 없습니다. 간장을 발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침을 맞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지만,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 삼촌 결혼식 때입니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났습니다. 큰집 할아버지께서 허리춤에서 침을 꺼내어 손가락과 이마 발가락 등을 찌르는데 너무나 아팠습니다. 침이 무섭다고 했더니 빨리 나으려면 그 수밖에 없다 합니다. 친한 종호가 말했지만 듣기도 싫었습니다.
내 발가락이 거의 다 나아갈 무렵 서린이 자식이 한 발을 들고 양쪽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학교에 왔습니다. 까불다가 발목을 삐었답니다. 동네에서 친구의 새끼발가락을 찼는데 눈치챈 친구가 발을 피하자, 옆에 있는 돌멩이를 찼다나요.
‘녀석 쌤통이다. 놀려 줘야지.’
체육 시간이 되자 호야와 서린이만 교실에 남고 모두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힘으로는 안 되니 불편할 때 놀려 주는 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몹시 아프니?”
“응, 무척 아프다. 불편하기도 하고.”
“자식 아프기는, 인마 다리에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까짓 발목 삔 것을 가지고 뭘 그래. 내가 반대편도 차 줄게.”
내 발이 반대편 발 쪽으로 옮겨가자, 어린이 자식은 어쩔 줄 모릅니다.
“너 사람 죽이려고 해?”
“아니, 왼쪽이 불편하니까 오른편을 차주면 왼편이 덜 불편할 것 같아서.”
“너 그러기야?”
“아니, 너를 좀 덜 불편하게 해주려고 하는 것뿐인데.”
오른발을 보며 주위를 돌았습니다. 그러자 서린이도 제자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서린이가 호야의 눈을 보니 정말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한참을 맴돌더니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혔습니다.
“자식, 체육 공부는 나 때문에 제대로 했다. 그건 그렇고 아이들이 들어오기 전에 오른발을 차야 하는데 앞으로 내미는 게 좋을 거야. 친구들의 불편했던 점을 모두 몰아 한 번에 불편해 보는 거야.”
서린이의 두 손을 모았습니다.
“다시는 안 할게.”
“소용없어. 발목이 다 나으면 나부터 복수한다고 덤빌 텐데, 그러면 힘없는 나는 또 발가락이 삘게 아니야.”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맹세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습니다.
“서린이가 왜 너한테 빌고 있니?”
“비는 게 아니고, 우리 소원 놀이 하는 거야, 하느님께 한 가지씩 소원을 말하는 거 말이야.”
서린이를 쳐다보면 빙긋 웃었습니다. 창피한지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나도 하자”
성미 급한 성환이가 말했습니다.
“서린이가 친구들을 괴롭히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주십시오.”
친구들이 둘러서서 손뼉을 쳤습니다. 주저앉아 있는 서린이를 일으켜 책상에 앉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린이의 책보자기는 어느새 호야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야, 천천히 가. 잘못하다가 넘어지면 오른발까지 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