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37. 영화 구경

by 지금은

“야, 우리 밤에 영화 구경 갈까?”

“글쎄”

“글쎄가 뭐야, 얼마나 재미있다고.”

호야는 벌써 구경 준비가 다 된 양 명구에게 말합니다. 아침부터 극장에 가고 싶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어제 학교 앞 개울가 공터에 가설극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영화를 본 친구들의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야, 영화 되게 재미있었지?”

“응, 엄청 재미있던데, 국군 아저씨가 인민군을 무찌르는 모습은 아주 최고야.”

“되게 용감하더라, 혼자 백 명도 넘는 인민군을 드르륵.”

“야, 허풍 떨지 마. 백 명은 안 되고 한 오십 명은 되겠지.”

동욱이가 세어 본 듯이 말했습니다.

“무척 재미있었지.”

“그건 그래.”

학교 공부가 끝날 때까지 영화 이야기로 쉬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갈 거야 안 갈 거야?”

“생각해 보고, 엄마가 돈을 줘야지 갈 수가 있지.”

갈 수 있다고 했지만, 호야 역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호야는 명구가 집을 나섰습니다. 부모님께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해 봤자 소용없음을 잘 압니다. 지청구만 들을 게 뻔합니다.

“돈 있니.”

명구가 호야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그럼 가나 마나지.”

“그래도 가 보자, 혹시 누가 아니. 공짜 구경을 할 수 있을지도.”

극장 앞에는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눈치 빠른 어른 몇 명은 극장 앞 미루나무 가지 위에 앉아있습니다. 공짜로 구경하려고 합니다.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표를 사가 지고 극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영화가 시작되었나 봅니다. 빙 둘러쳐진 광목천 밖으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비칩니다. 가끔 입장객의 감탄사와 지껄이는 소리, 영화 속의 소리가 뒤섞여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몇몇 사람들이 호야와 명구처럼 주위를 서성입니다. 분명히 돈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극장 안의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호야와 명구가 출입구 가까이에 다가섰습니다. 안을 삐쭉 들여다보지만, 보일 리가 없습니다. 물끄러미 입구를 지키는 아저씨만 한동안 쳐다봅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돈 있어?”

“없어요.”

“그러면 왜 왔어.”

“구경하고 싶어서요.”

“돈도 없이?”

“그래도요.”

영화를 시작한 지는 오래 지났습니다.

호야와 명구가 돌아서려는데 아저씨가 불렀습니다.

“야, 호주머니에 든 것이 뭐니?”

불룩한 호주머니를 쳐다본 아저씨가 궁금한 듯 물었습니다.

“호두요.”

“왜 가져왔어.”

“그냥요, 아저씨 드릴까요?”

“내놔 봐.”

호야가 양 호주머니에서 호두를 꺼내 내밀었습니다. 아마 여덟 개쯤은 되나 봅니다.

“나한테 다섯 개만 주고 들어가거라.”

“저 혼자요?”

“그럼?”

“친구하고 같이 왔는데.”

“친구는 안 되는데.”

그러자 명구가 실망한 눈으로 살며시 호야의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어디서 왔니?”

“동해요.”

“동해가 어디인데.”

“여기서 이십 리는 돼요.”

아저씨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먼 데서 왔구나, 들어가.”

다음날 호야와 명구는 학교에 갔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호두 다섯 개를 주고 영화 구경을 했으니 말입니다. 호두 두 개면 공책이 한 권밖에 안 되는데 자랑할 만도 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호야와 명구는 저녁을 서둘러 먹고 또 극장을 향했습니다. 물론 호주머니에는 각각 호두가 불룩하게 들어 있습니다. 어제보다도 더 많이 호두를 넣었습니다.

극장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서성입니다. 물론 친구들도 보이는데 모두 호주머니가 불룩합니다. 극장 입구로 다가가 호야와 명구는 호두를 내밀었습니다.

“아저씨 이거.”

아저씨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할 수 없이 돌아서는 호야를 향해 해명이가 다가왔습니다.

“야, 모두 퇴짜 맞았다.”

호야가 해명의 바지를 내려다보니 주머니가 불룩 튀어나왔습니다.

“비밀로 해야 하는 건데.”

그러자 명구가 슬며시 끌면서 귓속말로 말했습니다.

“야, 우리 납작 엎드려서 몰래 포장 밑으로 숨어 들어가자.”

“들키면 어떻게 하려고.”

“조심해야지.”

호야와 명구가 살그머니 아저씨를 피해서 뒤편으로 다가갔습니다. 어떤 어른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포장을 들추고 있습니다. 호야와 명구도 소리 없이 다가간 뒤에 엎드렸습니다. 순간 큰 고함이 뛰쳐나왔습니다.

“어떤 놈이야.”

몸집이 큰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포장에 비친 그림자는 너무너무 컸습니다. 엎드렸던 청년이 일어나 달아났습니다. 이어서 호야와 명구도 죽어라 하고 도망을 쳤습니다. 나무 밑에 숨어서 쳐다보니 엎드려 있던 곳은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큰일 날 뻔했지?”

“그래 맞아, 잡혔더라면.”

돌아오는 하늘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반달이 걸려 있습니다.

‘탁탁, 탁탁.’

가끔 호두 깨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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