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미역
“해야 해야 나오너라. 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해야 해야 나오너라.”
물속에서 나오자, 온몸이 떨리고 입술이 파래졌습니다. 모두 방차 위로 올라가 한쪽 발을 들고 깡깡이 춤을 춥니다. 고개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번갈아 가며 흔듭니다. 손은 엉덩이로 향합니다. 찰싹찰싹 파도 소리처럼 엉덩이에서 소리가 납니다.
잿빛 구름 사이로 들어간 해는 금방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재촉이라도 하듯 아래쪽 방차에서도 계집아이들이 깨금발을 뜁니다. 사내아이들의 박자에 맞추어 엉덩이를 두드립니다. 건너편 버드나무 사이로 갈대들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댑니다. 밀잠자리가 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모릅니다.
“야, 춥지?”
“응.”
“안 되겠어.”
서로 아랫도리를 쳐다봅니다. 서로 낄낄거립니다. 한 아이가 부끄러운 듯 아래를 감싸 쥐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나머지 아이들도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물속이 더 따뜻합니다. 한동안 아이들의 물장난이 이어집니다.
얼마를 지나서야 해님이 구름 사이를 벗어나 반쯤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해님은 구름의 방해로 화가 났나 봅니다.
“에이, 이제야 나오네. 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왔나 봐.”
아이들이 하나둘씩 바위 위로 올라가 엉덩이를 두드리며 노래합니다.
“해가해가 나왔다. 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해가해가 나왔다.”
아래쪽 물가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더 아래쪽에서도 들려옵니다. 그 아래쪽에서도 들려옵니다. 위쪽에서도 들려옵니다. 더 위쪽에서도 들려옵니다. 아이들은 해님을 좋아합니다. 강변에서 풀을 뜯던 소가 ‘음매’하고 긴 울음을 토해 냅니다. 해그늘이 시작되었습니다. 해님은 산 너머 아이들이 걱정되나 봅니다. 강변 저 건너의 아이들도 걱정이 되나 봅니다. 해는 구름을 피해 왔다 갔다 합니다.
“인제 그만 가자, 쇠풀을 뜯겨야 해.”
“나도.”
“꼴을 베어야 해.”
“나도.”
“나도.”
사내아이들이 둑길을 걸어갑니다. 저 아래의 계집아이들도 방차를 지나 걸어갑니다.
“미역 잘 감았니?”
“너희들은.”
“그냥 그래.”
“우리도 그냥 그래.”
“그런데 왜 엉덩이를 두드리며 떠들어댔지?”
“그냥.”
“너희들은 왜 엉덩이를 두드리며 떠들어댔지?”
“우리도 그냥.”
“그게 아니고 우리들이 보라고 한 것 같은데.”
“치, 너희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래 놓고는.”
“무슨, 저희가 먼저 해 놓고서 뭘 그래.”
“아니다, 위쪽 아이들이 먼저 했다.”
“그래도 그렇지.”
미루나무가 갑자기 길게 그림자를 늘이며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와! 되게 크네.”
잠시 후에 해그늘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습니다. 길게 늘였던 미루나무 그림자가 다른 곳을 향하여 숨어 버렸습니다.
“내일은 언제 올래?”
“왜?”
“그냥.”
“치, 우리들 발가벗은 것을 보려고 그러지?”
“아니다.”
“그런 것 같은데.”
“저희는 뭐 안 봤나?”
“그래도 뭘, 우리가 보고 싶어 봤니? 그냥 보이니까 할 수 없이 봤지.”
“우리도 그렇다.”
“내일 또 올 거지?”
“비밀, 아마 안 올 거야.”
“더워서 어떻게 하려고.”
“다른 곳으로 가면 되지.”
“다른 곳으로 가면 뭐 겁나나.”
내일도 같은 곳에서 해님을 부를 게 뻔합니다.
어느새 쫓아왔는지 또 미루나무 그림자가 앞을 또 가로막았습니다. 해님이 저 산 너머로 가기 위해 고갯마루에 턱을 고이고 이쪽도 한 번 보고 반대편도 한 번 봅니다. 갑자기 해거름의 동작이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동구 밖에 다다랐습니다. 벌써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명구야 명구야, 이 녀석 쇠풀 뜯길 생각은 안 하고 어디 있는 거야.”
“남순아 남순아, 계집애가 동생 돌볼 생각은 안 하고 뭐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