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돋보기
‘탁탁, 반짝반짝.’
할아버지의 부싯돌 소리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소리를 냅니다.
“왜 이렇게 불이 안 붙지?”
할아버지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호야의 머릿속에 꿈결처럼 들려옵니다.
‘탁탁 타다닥.’
“안 되겠는걸, 날도 좋은데, 밤사이에 비가 내려서 그럴까? 쑥이 누졌나 봐.”
호야가 눈을 뜨자 갑자기 눈이 부십니다. 햇살이 창호지의 뜯어진 문틈 사이로 몇 줄기 길게 선을 그리며 방바닥을 기어갑니다. 눈을 비비고 할아버지를 바라봅니다. 굽어진 할아버지의 등이 보이고 손이 천천히 움직입니다.
“할아버지.”
“벌써 깼구나, 더 자지 않고. 내가 시끄럽게 했나 보다.”
할아버지는 부싯돌을 담배쌈지에 넣고 계셨습니다. 호야는 슬그머니 일어나 건넌방으로 갔습니다. 책보자기를 풀어헤쳤습니다. 돋보기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 댓돌 위에 앉았습니다.
어제 호경이가 학교에 돋보기를 가지고 와서 자랑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쓰시던 돋보기안경이 깨지자, 안경알 하나를 호경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귀퉁이가 좀 깨지기는 했어도 장난감으로는 썩 좋습니다. 쉬는 시간에 호경이가 밖으로 나와 돌 위에 검은 종이를 놓고 돋보기를 꺼내 비춥니다. 잠시 후 흰 연기가 실처럼 피어오르더니 작은 불꽃이 일었습니다. 종이를 들어 보이자, 구멍이 보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종이에 불이 붙을 수 있다고 합니다. 참 신기합니다.
‘어떻게 유리로 불을 붙일 수가 있을까? 요술 방망이, 도깨비방망이?’
선생님이 창밖으로 얼굴을 보이고는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호경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돋보기를 재빨리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돌 위에 놓여있는 종이를 슬그머니 감추고 교실로 향했습니다. 우리들도 따라서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공부하면서 내내 호경이의 돋보기가 머리를 맴돕니다. 쉬는 시간에 가지고 놀면 다시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호경은 내 마음을 모르는지 쉬는 시간 내내 주머니에서 꺼내 보지 않았습니다.
“야 멋있다.”
“정말?”
“응.”
“별것도 아닌데 이까짓 것 가지고 뭘 그래.”
“아니 신기한데.”
“그럼 빌려줄까?”
점심시간 내내 호경이의 둘레에 모여 돋보기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친구들이 차례로 검은 종이를 태워보았습니다. 호경은 처음 말과는 달리 호야에게 돋보기를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자식, 빌려준다고 하더니.’
빌려달라는 말이 여러 번 목구멍까지 나왔습니다. 공부가 끝날 때까지 입에서만 맴돌 뿐 입 밖의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운동장 청소를 하고 있는데 호경이가 다가오더니 어깨를 툭 쳤습니다.
“왜?”
“돋보기를 빌려달라고 했잖아. 무엇에 쓰려고 하니?”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호경은 말없이 돋보기를 내 앞에 내밀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아버지께 돋보기를 보여드리고 담뱃불을 붙여보고 싶었습니다. 혹시나 실수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시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검은 종이를 찾다 보니 검은 종이가 없습니다. 엄마의 반지 그릇 뒤져 검은 천 조각을 대돌 위에 얹고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잘 돼야 할 텐데.’
호야는 손이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곧 불이 붙기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기 시작합니다. 무척 반갑습니다. 뒷마당을 쓸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향해 소리를 쳤습니다.
“할아버지, 빨리 와보세요. 빨리요.”
할아버지가 무슨 큰일이라도 있어 그러는 줄 알고 황급히 다가오셨습니다.
“할아버지, 담배 담뱃불 붙이세요.”
“담뱃불은 웬 담뱃불.”
“조금 전에 담뱃불을 붙이시다가 못 붙이셨잖아요.”
“그런데 화경은 어디서 났니?”
“호경 할아버지의 안경이 깨져 호경에게 준 것이래요.”
“음 그거 좋구나. 부싯돌이 말을 잘 안 들을 때는 쓸 만하지.”
“할아버지께는 이것이 꼭 필요하시겠지요?”
“글쎄다, 필요하기는 하다마는.”
“그럼, 할아버지 가지세요.”
“너는 어떻게 하고, 네 장난감인걸.”
“저는 괜찮아요.”
호야는 자신도 모르게 할아버지께 화경을 내밀었습니다.
“귀퉁이가 좀 깨지기는 했어도 아쉬운 대로 쓰겠구나. 잔글씨도 볼 수 있고, 고맙다.”
할아버지는 담뱃불을 붙이고 이내 쌈지에 넣으셨습니다.
교실에 들어서자, 호경과 마주쳤습니다.
“호경아, 안녕.”
“화경 재미있게 가지고 놀았니?”
“응, 그런데 깜빡 잊고 가지고 오지를 못해서 어떻게 하지?”
“내일 가져오면 되지 뭘 그래.”
호경이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습니다. 호야는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렸습니다. 잔글씨도 볼 수 있다는 말씀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드렸습니다. 호경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잊은 것입니다. 호야는 다음날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깜빡 잊었네, 미안해.”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이렇게 해서 여드레가 지났습니다. 며칠은 별 표정이 없던 호경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야, 약속을 지켜야지, 나는 너를 믿는데.”
호야는 할 말을 잊었습니다.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어떻게 하지? 할아버지께도 거짓말을 하고 친구에게도 거짓말쟁이가 되었네.’
집으로 돌아온 호야에게 할아버지가 물으셨습니다.
“너 걱정거리라도 있니? 표정이 말이 아니구나.”
“아니에요, 걱정거리는요.”
저녁을 먹고 나자, 할아버지는 호야를 불렀습니다.
“얘 화경 가지고 놀아라. 불조심하고 말이야. 나는 이제 쓸 일이 없게 되었으니까. 장에 가서 돋보기안경 하나 샀지. 하나로 보니까 보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불편해.”
호야는 화경을 받아 들고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웬 한숨을, 걱정거리가 있거들랑 이 할아버지에게 말해. 걱정이나 슬픔은 같이하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다음날 학교 가는 길은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습니다.
“호경아 오늘은 잊지 않았다. 잊을까 봐 집에 가자마자 책보자기에 미리 싸 두었지.”
호경이의 팔이 내 어깨 위로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함께 어깨동무를 했습니다.
“너 가져. 우리 할아버지가 안경을 새로 사시고 또 하나 주셨거든.”
호야는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다시 받아 든 화경을 손에 꼭 쥐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