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 갯벌의 밤 20231208
‘별이 빛나는 밤에’
‘별이 빛나는 밤에’
나는 시그널 음악을 좋아합니다.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프로그램은 자정이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좋지만, 시작을 알리는 음에 빠져드는 이유는 겨울밤 살을 에는 추위에 하늘을 바라보는 시린 마음 때문입니다. 공부하다가 졸음이 다가올 때면 가끔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올려보았습니다. 섬뜩할 정도로 코안으로 스며드는 매서운 공기는 머리를 쭈뼛하게 만듭니다.
하늘로 향합니다. 별이 총총 떠 있습니다. 서로 보아 달라는 듯 차가운 공기에도 눈을 말똥거립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든/ 밤같이 까만 눈동자/ (중략) 창가에 피는/ 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겨울밤은 외롭습니다. 잠 못 이루는 깊은 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아예 별을 잊고 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천문학자도 아니고 보면, 이 추운 날, 별 보러 간다고 아래층까지 내려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가 보았자 별 볼일이 거의 없습니다. 먼지와 빛 공해로 별을 찾는다는 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요행히 날씨의 도움이 있다면 눈을 사방팔방으로 돌려 몇 개 찾을 수 있을 뿐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봄부터 가을까지입니다.
어렸을 때는 밥을 먹기보다 별 보기가 더 쉬웠습니다. 한적한 시골이라면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지 생각합니다. 10여 년 전 영월에서 밤을 보낸 일이 있습니다. 별마로 천문대에 올라 동강의 하늘을 보았을 때입니다. 별들이 한가득 하늘에 차 있고 그도 모자라 강물 속에도 그득 담겨 있었습니다. 내 유년기 산촌의 별들을 모아놓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별」이 생각납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목동의 하룻밤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나는 곧 소년이 되었습니다. 그의 첫 단편집 「풍차 방앗간 편지」에 나오는 프로방스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풍광도 마음속에 그려집니다.
겨울이 서서히 물들어갑니다. 나는 별을 잊은 대신 달밤을 떠올립니다. 달을 따라 서걱거리는 해안을 걷습니다. 모래알들이 무게에 짓눌려 발자국을 남깁니다. 멀리 보이는 물 빠진 갯벌은 황량한 벌판입니다. 어느새 마음보다 발길이 앞섰습니다. 달을 따라갑니다. 반달이 별들 사이를 지나 수평선을 향해 달아납니다.
‘뭐 하는 거니?’
집 앞 창문 너머 방안까지 찾아왔던 달이 달아나고 있습니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고 고만큼 앞서갑니다. 얼마나 따라갔는지 모릅니다. 파도소리가 들립니다. 길을 내주었던 바닷물이 밀려옵니다. 발길을 돌립니다. 앞에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한 숭어가 한 모금의 물을 의지해 파닥이고 있지만 눈을 돌릴 겨를이 없습니다.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간간이 뒤를 돌아봅니다. 바닷물이 얼마나 뒤따라왔는가, 달은 제자리에 머물러 나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손을 흔들어 보일 생각이 없나 봅니다. 표정의 변화가 없습니다.
갯벌을 벗어나 모래사장에 닿았습니다. 바닷물이 갯벌을 덮었습니다. 발치에서 살랑살랑 신발 코끝을 간질입니다. 달빛이 바닷물 위에 내렸습니다. 별들이 함께 내렸습니다. 갯벌에서 반짝이던 야광충들은 물속에 숨었습니다. 별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나 봅니다. 대신 파도의 너울을 따라 물속에서 반짝입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코끝이 찡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산마루를 넘으며 몇 차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달은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저 내 뒷모습을 바라볼 뿐입니다. 아마도 내 길을 인도해 주려는 마음인 듯합니다. 집에 도착했습니다. 달이 수평선을 향해 다가갑니다. 내 안전한 귀가를 기다렸음이 틀림없습니다. 엄지 척했습니다. 그러자 옅은 웃음이 보입니다.
휴대전화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를 검색합니다.
‘책을 읽겠다더니만 지금까지 뭐 한 거야.’
윤오영의 수필집 「고독의 반추」 중 ‘달밤’ 펼칩니다. 책 속에서 자고 있겠지,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