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300. 달력 20231209

by 지금은

달력이 한 장 남았습니다. 12월입니다. 어느새 여기까지 온 거야, 분명 새해가 코앞이었는데 제 자리에 와있습니다. 달력을 되돌립니다. 2023년 1월 1일입니다. 더 거슬러 오르려 해도 오를 곳이 없습니다. 낭떠러지입니다. 2022년의 달력은 나를 떠난 지 여러 달,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해지 난 달력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천재의 기억보다 둔재의 기록이 낫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달력의 기억이 생각납니다. 책싸개, 딱지 접기, 제기 만들기, 365일 일력은 화장지로 사용하기. 어른들은 담배를 말아 피우기도 했습니다. 봉초라는 담배입니다.

‘그땐 그랬지’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니, 젊은이들과 노인 어른들이 달력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노인들은 옛 추억을, 젊은이들은 새로운 감각을 지닌 달력의 모습을 선보입니다.

달력은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입니다. 종이로 되어있든 가상공간에 있든 하루하루 날짜를 확인하며 살아갑니다. 농경시대에는 달력이 대세였지만 이 시대는 일력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는 것처럼 달력도 이에 따라 변모해 왔습니다. 달력의 변모를 살펴봅니다. 내가 어릴 때는 숫자 중심이었습니다. 요즘은 숫자보다 그림 중심입니다. 달력도 멋을 앞세우게 되었습니다. 지난 달력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액자에 넣어 벽에 걸었습니다. 어엿한 하나의 미술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된 것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달력을 선보입니다. 달력의 변천사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두 소방관이 달력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제복을 입은 건강하고 밝은 얼굴입니다.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깁니다. 근육질의 단련된 몸매가 장을 넘길 때마다 다양한 모습을 선보입니다. 전국의 소방관 몸짱 대회에서 선발된 사람들입니다. 이 달력은 화상 환자를 돕기 위한 의미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어느 해인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참가한 모델을 중심으로 만든 달력을 본 일이 있습니다. 같은 몸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다가옵니다. 이 달력도 같은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노인정에서 노인을 모델로 만든 달력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김장하는 주름진 손, 눈이 감길 정도의 환한 미소가 어우러져 김장 속을 채우고 있습니다. 각각이 모델이 되어 동네를 끌어안았습니다. 온정리 마을의 달력에는 명절이나 나라의 기념일 대신 날짜 아래 어르신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장의 말에 의하면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혹여나 잊고 지나갈 수 있는 부모님의 생신을 잊지 말라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외지에 나와 있지만 자신이 고향, 동네 분들의 활동 속에 함께 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어울려 있다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겠습니까. 생신이 돌아오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축하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이장의 할 일이 늘어났지만,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아내의 숨은 조력을 은근히 자랑합니다.

요즘은 개성시대입니다. 몇몇 사람이 자신만의 달력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젊은이들입니다. 개인의 모습을 주제로 엮었습니다. 12가지의 표정이 귀엽고 매력적입니다. 생각지 못한 표현이 내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환한 표정, 애교 있는 표정 등이 어우러져 마음을 밝게 합니다. 한 달력에는 지난해의 가족 행사 정경이 달마다 나와 있습니다. 올해도 지난해만큼 다정다감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어떤 이는 자신이 찾은 곳을 배경으로 주제를 삼았습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달력이 있었습니다. 노년의 딸이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담아 화면을 꾸몄습니다.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아버지가 뜻하지 않는 교통사고로 다쳤답니다. 퇴원 후 성치 않은 몸으로 폐휴지를 수집했습니다. 만류했지만, 일이 몸에 밴 삶이었으니 그냥 집에 있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나 봅니다. 한 푼 두 푼 모으는 재미가 있다고 말씀하시기에 용돈으로 쓸 거라고 했는데 손자가 대학에 입학하자 통장을 내놓으셨답니다.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울컥하고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푸’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부모의 마음이지’

달력의 행태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모든 사람이 각자가 원하는 삶 속에 다양한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무슨 달력을 만들어볼까. 전에 컴퓨터를 배우면서 내 모습의 달력을 한 장 만들어 본 일이 있습니다.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잊고 지냈습니다. 버킷리스트에 들어있는 하모니카 연주에 이어 달력 만들기를 넣어야겠습니다. 다음 해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은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