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풀매듭
“쓰르람 쓰르람.”
가을을 알리는 매미가 우는가 싶더니 벌써 방학이 끝났습니다. 학교에 갔습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끝난 방학이 못내 아쉽습니다.
동우와 집으로 돌아옵니다. 산기슭에서 땀을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오늘따라 더 높은 하늘입니다. 솜털보다 보드라운 뭉게구름이 미루나무 위에 걸렸습니다. 숨바꼭질하듯이 앞선 전투기가 뭉게구름 속으로 숨었다 나옵니다. 뒤를 따르던 비행기 두 대도 구름 속을 헤치고 빠져나왔습니다.
“야, 방학이 벌써 끝났지, 열흘만 더 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래.”
언제 옆에 다가왔는지 동우 형이 꼴을 베어오다가 이 말을 듣고 비웃듯이 말했습니다.
“자식들 한 달도 더 놀고 그런 말을 해? 앉으면 눕고 싶다더니. 빨리 가서 쇠풀이나 뜯기시지.”
우리들은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대꾸도 못 하고 일어섰습니다. 동우 형이 앞서 가면서 멀어집니다. 우리는 형의 말에 뒤늦은 대꾸를 합니다.
“용케도 들었어. 형들은 그런 생각 안 했나 뭐.”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분이 별로 좋지를 않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형을 골탕 먹이고 싶지마는 잘못하다가는 혼날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산기슭을 지나서 산 밑에 있는 도랑을 따라서 걸어갑니다. 길게 자란 풀잎들이 자꾸만 종아리를 거슬립니다.
“에이, 별것이 다 귀찮게 하네.”
동우가 빙그레 웃으면서 표정이 변했습니다. 나는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장난치고 싶은 게 분명합니다.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니?”
“응.”
“뭔데?”
“길옆에 있는 풀을 서로 묶어 놓는 거.”
“왜?”
“묶어놓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매듭에 걸려 걸려서 넘어지겠지.”
호야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언젠가 미역을 감고 이곳을 지나간 기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형들이 묶어놓은 풀에 걸렸습니다. 크게 곤두박질을 친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재빨리 길가의 양쪽에 있는 풀을 가지런히 모았습니다. 끝을 잡고 풀매듭을 군데군데 지어놓았습니다. 잘 살펴보지 않는다면 지나가다가 넘어질 것이 뻔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걸려 넘어졌으면 좋겠다고.’
저녁을 먹고 나서 감나무 밑 평상 주위에 모깃불을 놓는 중입니다. 동우네 바깥마당에서 동네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궁금해서 모깃불을 대강 놓고 다가갔습니다. 내 모습을 발견한 동우가 나를 슬며시 잡아끌었습니다. 사랑방 마루로 가서 걸터앉아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토끼 잡았대.”
“무슨 토끼?”
“산토끼.”
“어디서?”
“야, 척하면 알아야지. 찬샘거리.
토끼가 도랑 위로 올라와 풀을 뜯기에 영숙 아버지가 작대기로 두드리며 소리를 쳤다지. 우리들이 묶어놓은 풀에 걸려 곤두박질하는 것을 때려서 잡았다나.”
“죽 쑤어서 남 좋은 일만 했잖아.”
“야, 인마. 어디 우리들이 남 좋은 일 하려고 했니?”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생각을 해보니 공은 우리가 들였는데 잡은 것은 엉뚱한 사람이 몫입니다. 서운한 생각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동우와 내가 풀을 묶어 놓아서 토끼를 잡은 거라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입니다. 마당 가운데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아저씨들 앞으로 누군가 다가섰습니다.
“어느 놈이 장난했어, 누구야 누구?”
“무슨 일 있어?”
“아니 어느 놈이 찬샘거리에 풀은 묶어놓아서 그만.”
목소리 크기로 유명한 영숙이 삼촌이 다리를 절룩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이 무릎 좀 봐, 얼굴도 쓰라린데 봐주구려.”
“에이, 이런.”
“하마터면 도랑으로 곤두박질을 칠 뻔했잖아. 어느 놈인지 붙잡히기만 하면 그냥.”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달빛에 주먹을 불끈 쥔 영숙이 삼촌의 무릎과 얼굴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거 심하게 다쳤군그래. 동우야, 방에 들어가서 약통 가져오너라.”
동우 아버지가 소리쳤습니다. 호야는 순간 동우의 얼굴을 쳐다봤는데 얼굴빛이 변했습니다. 따라서 내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동우야! 하고 아버지가 소리를 칠 때 들킨 줄 알았나 봅니다. 나는 동우를 따라 안채로 들어갔습니다.
“야, 어떻게 하지?”
“쉿 조용.”
입을 가렸는데 동우 엄마가 말했습니다.
“왜들 그러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영숙이 삼촌이 풀에 걸려 넘어졌대요.”
“넘어질 데가 없어서 그 흔한 풀에 걸려 넘어진다던.”
“모르겠어요.”
“조심해라, 달밤이라고 장난하다가 영숙이 삼촌처럼 될라.”
“예.”
약통을 가지고 바깥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네가 가져다 드려.”
“왜, 너한테 심부름시켰는데.”
“같이 잘못했잖아.”
“야.”
호야는 재빨리 동우의 입을 막았습니다.
“야, 이 녀석 빨리 가져오지 못하고 뭘 해. 남은 아파서 죽겠는데.”
“예.”
슬그머니 마당을 떠나 식은땀을 닦으며 찬샘거리로 향했습니다. 동시에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새털구름 속으로 살며시 숨어들었던 달님이 얼굴을 내밀고 빙그레 웃었다. 동우와 호야의 머릿속에 자꾸만 맴돌았습니다. 엄마의 가위가 반짝입니다.
‘또 넘어지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