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동맹이
“야, 기석아. 너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왜”
“너희 아버지가 감기 걸리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
답답해서 입과 얼굴을 감싼 목도리를 풀어헤치려는 것을 돌멩이는 막으면서 타이릅니다.
“그래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안 돼, 감기 걸리면 큰일 난다니까 참아야 해.”
동맹은 기석이, 상용과 등하굣길을 함께 다닙니다. 기석과 상용은 동맹의 말을 듣지 않으면 혼이 날지도 모릅니다. 동맹은 힘이 장사입니다. 마음씨가 착하지만 일단 화가 났다 하면 어느 친구도 봐주지 않습니다.
‘동맹아 동맹아, 멍청이 동맹아.
동맹아 동맹아, 오줌싸개 똥싸개.
동맹이는 동맹이는 바보 바보천치 천치.’
아이들이 놀리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까불지 마라, 나 화나면 무서우니까.”
곧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몇 번 더 놀렸다가는 코피가 나기가 쉽습니다.
이 학년 때의 일입니다. 기석이가 동맹의 경고를 무시하고 놀리다가 심하게 맞았습니다. 나이가 어리고 힘도 약하니 키 크고 힘센 동맹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기석이 아버지는 동맹을 나무랄 수가 없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듣고 보니 괜히 때린 것이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좀 모자라기는 해도 참을성이 있는 아이입니다.
“동맹아, 아니 동명아, 미안하다. 기석이 녀석이 형 같은 너를 함부로 놀려서 말이야.”
“저도 잘못했어요.”
“요즈음 날씨가 춥고 눈도 많이 오지. 기석을 동생처럼 생각하고 감기 걸리지 않게 잘 데리고 다니거라.”
혼이 날줄로 알았던 동맹은 기석이 아버지의 말씀에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곧 실천에 옮겼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땅이 미끄러우면 기석을 업고, 다리를 건넙니다. 바람이 조금만 차가워도 목도리로 눈만 남겨 놓고 얼굴을 폭 싸줍니다. 아기를 돌보듯 보살핍니다. 동맹은 집을 나서면 아랫동네 기석이네 집 앞에서 기다립니다. 기석이가 나오면 학교에 갑니다. 끝나면 집까지 데려다주곤 합니다.
봄이 되어도 날씨가 더워져도 항상 목도리는 기석이의 얼굴을 감쌉니다. 눈만 내놓고 머리를 모두 감춥니다.
“너무 답답하다. 너무너무 더워”
목도리를 풀려하면 감기 걸린다고 못 하게 합니다.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동맹에게 말했습니다.
“야, 이제는 날이 더워서 목도리로 감싸면 몸에 더 해로운 거야.”
“우리는 장갑을 벗고 목도리를 안 한 지 한 달도 넘었잖아.”
그렇지만 소용없습니다.
“뭘 안다고 그래, 너희들은 건강하잖아, 기석이 아버지가 감기 걸리면 안 된다고 부탁했는데, 어른 말 들어야지.”
기석과 상용은 오월 중순까지도 목도리로 눈만 내놓고 얼굴을 감싸야했습니다. 동명은 참 이상합니다. 날이 더운지 추운 지도 구분이 안 되는가 봅니다. 한 번 정한 것이면 어김없이 계속합니다.
하지만 이해가 되는 일도 있습니다. 무엇이냐고 하면 동명은 봄, 가을, 겨울, 세 계절의 옷이 항상 같습니다. 겨울이라고 해서 두꺼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봄가을에 입는 옷을 입습니다. 속옷을 입지 않고, 겉옷뿐입니다. 그저 여름에만 반소매 옷을 입습니다.
“아휴, 더워라.”
동맹은 겨울에도 가끔 그런 말을 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기도 합니다. 차가운 얼음물에 세수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겨울이 되면 마룻바닥 닦는 걸레를 빠는 일은 동맹이 차지입니다. 딴 애들은 손이 시려 쩔쩔매는데 동맹은 아무렇지도 않게 찬물에 손을 넣습니다. 가끔가다가 교실에서부터 시작해서 복도, 변소 바닥까지 흘리고 다니는 일이 있어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
‘무엇을 흘리고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나요?’
물을 흘린다고요, 아니지요. 오줌을 싸고 다닌다고요, 가끔 그렇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바짓가랑이 사이로 작은 고구마를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동맹이 아버지는 이런 일들을 자기 탓으로 여깁니다. 귀한 아들이라고 아기일 때 보약을 먹였답니다. 너무 많이 먹인 탓이라나요. 이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힘은 장사입니다.
‘어떻게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느냐고요?’
그야 증거를 대보면 되겠지요. 동맹은 아버지보다 더 많은 짐을 질 수가 있습니다. 동맹이 아버지는 동네에서 힘이 세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지게로 장작을 다섯 다발이나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맹은 여섯 다발을 지고도 일어납니다. 힘 안 들이고 걸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육 학년 겨울에 있었던 일입니다. 선생님보다도 힘이 세서 학교에서 힘드는 일도 잘합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 중에 팔씨름을 잘한다고 자랑하시던 총각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동맹과 겨뤄 보고는 항복했습니다.
‘그 친구 이름이 왜 동맹이냐고요?’
짐작이 갈 텐데, 우리들보다도 나이가 다섯 살이나 많고 힘도 셉니다. 공부를 못합니다. 한글과 덧셈, 뺄셈을 알지 못하고 이름 석 자만 겨우 쓸 수 있습니다. 힘세다 동맹이, 무식하다 동맹입니다.
“너는 좋은 놈이야, 놀리지도 않고.”
“동명이 너도 좋은 친구야.”
동맹은 다른 친구들에게도 착하게 굴었지만, 호야에게 특히 친절히 대합니다. 친구들이 싸움을 건다거나 심한 장난을 하는 일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싸움을 걸어오는 친구가 있다면 동명이가 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오 학년 때의 이른 봄입니다. 둘째 시간이 끝났습니다. 화장실로 가는데, 복도에 노랑물이 흘려 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밟을까 봐 피했습니다. 화장실로 가다 보았습니다. 돌멩이가 화장실 건너편에 서 있습니다. 양지바른 교실 처마 밑에 달달 떨고 있습니다.
“동맹아, 왜 거기 있어, 추워서 그러니?”
“응.”
“왜 그래, 공부 시간이 다 돼 가는데.”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엉덩이부터 바짓가랑이를 타고 노랑 물감이 번졌습니다. 배탈이 나서 설사가 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잠자코 있었다가 ‘춥지?’ 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동명은 부끄러운지 눈만 끔뻑거릴 뿐 말이 없습니다. 큰일입니다. 친구들이 안다면 얼마나 창피한 노릇입니까.
살그머니 교실로 들어가 송내를 불러냈습니다. 우리들보다 여섯 살이나 더 많습니다. 우리 반 반장입니다. 우리들은 철 모르고 형님 대접은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로 지냅니다. 이런 일로 화내거나 거북해하는 일은 없습니다.
“송내야, 잠깐만 동명이가.”
귓속말에 송내는 무엇인가 느낀 것이라도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교실로 들어가서 동명이의 책보자기를 챙겼습니다. 어깨에 매 주고는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우리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공부를 했습니다. 물론 복도와 화장실 바닥에 흘린 노랑 물감이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범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뒤처리는 송내의 몫이었습니다.
동명은 그래도 좋은 놈입니다. 우리 학급에 없어서는 안 되는 친구입니다. 비록 부족한 면이 있기는 해도 친구들의 힘든 일을 잘 도와줍니다.
다음날도 동명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에 왔습니다. 가을옷을 입고 왔습니다.
“야, 호야 고구마 먹어라.”
“웬 고구마?”
“우리 엄마가 너 주라고 했어.”
“송내가 바닥에 흘린 것 치웠다.”
“그럼, 송네한테 줘야지.”
“야, 인마 웬 고구마는 가지고 왔어?”
“너 주려고.”
“너 어제 고구마 똥 쌌지?”
“어떻게 알아?”
“그것도 모르냐, 고구마 똥이 노랗지.”
“너도 나처럼?”
“인마 너하고 나하고 같으냐.”
송내가 군밤을 한 대 먹였습니다.
“너나 다 먹어라.”
“안 돼, 나만 먹으면.”
“왜?”
“같이 싸야지, 너는 반장이니까.”
“호야는?”
“내 친구니까.”
“미친놈 고구마 주는 방법도 여러 가지네, 그래, 좋다, 같이 먹고 같이 싸자.”
우리는 일 학년 교실 뒤편 양지쪽 벽에 몸을 기댑니다. 친구들 몰래 온기가 살아있는 군고구마의 껍질을 정성스레 벗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