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수학여행
‘쌀 서 되.’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될까?’
장담할 수 없습니다. 쌀 서 되면 이틀을 자고 온다고 했는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번인가 할머니께 말씀을 드리려고 기회를 엿보았지만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내일까지 수학여행을 갈 사람은 말하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다음날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수학여행을 갈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지만,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못 갈 사람은 다시 손을 들라고 했지만 들지를 못했습니다. 손든 팔을 세어 보시던 선생님은 숫자가 맞지 않자 다시 말씀하십니다.
“갈 사람?”
“안 갈 사람?”
역시 숫자가 맞지를 않습니다.
“다시 손들어.”
차근차근 헤아려도 맞지를 않습니다. 선생님은 또다시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셨습니다. 안 가는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모두 갔으면 좋겠다며, 오늘 집에 가면 다시 물어보고 내일 알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차를 타고 마곡사에 가는데 트럭은 공짜로 태워준다고 합니다. 잠자리는 절에서 그냥 재워 준답니다. 쌀 한 되는 시주하고 두 되는 밥 해 먹을 거랍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보내 줄까, 안 보내 줄까?’
저녁을 먹으면서 말하려고 하지만 못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말하려고 하지만 못했습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말해야지 하지만 못했습니다. 책보자기를 어깨에 둘러메고 사립문을 나서다가 할머니께 말했습니다.
“할머니, 수학여행 가도 돼요?”
“수학여행이 뭔데?”
“육 학년이 돼서 졸업 기념이래요. 마곡사에 가서 자고 오는 거래요.”
“절에 가서 자고 오는 거라고? 그럼 자고 와라.”
“쌀이 서 되라는데.”
“쌀이 어디 있어, 그냥 자고 오면 되지.”
“밥도 안 먹고 배가 고파서 어떻게 자 고와요.”
“그럼 안 가면 되지, 요즈음 쌀이 얼마나 귀하다고 그래.”
결국 호야는 수학여행을 포기했습니다. 호야만 못 갔습니다. 친구들이 그냥 가자고 했지만 안 갔습니다. 선생님이 그냥 가자고 했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사흘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산에 가서 밤 따 먹고 도토리를 주웠습니다. 집에서 일을 하라고 할 것 같아서 학교에 간다고 했습니다. 사흘이 지나고 학교에 갔습니다. 친구들이 여행 갔던 일들을 재미있게 말했습니다.
“호야 너도 갔으면 좋았을 텐데, 얼마나 재미가 있었다고.”
잠자는 여자애들 얼굴에 숯검정 칠하기, 잠자는 남자 친구들 바지 벗기기, 스님들 몰래 호두와 밤 따기, 고기 잡기입니다. 차를 타고 갔는데 짐을 싣는 트럭이랍니다. 바로 우리 동네 산판에서 나무를 실어 나르는 덜덜이 차입니다. 갈 때는 잘 갔답니다. 신작로에 흙먼지가 나서 흠뻑 뒤집어쓰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절에서 잠도 잘 잤답니다. 밥도 잘 먹었답니다. 쌀 서 되로 삼일을 재미있게 지냈다는 이야기에 매우 부러웠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우리 친구들의 추억이 될 듯합니다. 이틀 밤을 자던 날 서리가 내리고 날씨가 추웠습니다. 춥지 말라고 아궁이에 나무를 많이 지폈답니다. 방바닥에 불이 났대요. 잠결에 등과 엉덩이를 덴 친구들이 세 명입니다. 심하지는 않아서 다행입니다. 등과 엉덩이를 보고는 호야는 안 가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갔더라면 불고기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한 번 잠이 들었다 하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형이 마을 갔다 와 문지방을 넘는 순간 바로 밑에서 자는 호야를 발견했습니다. 엉겁결에 피하려고 발을 멀리 뛰다가 화로에 부딪혀 불이 엎질러졌습니다. 발을 데어 소란스러웠답니다. 불덩이가 굴러서 팔에 닿았는데도 팔만 흔들었답니다. 다음 날 아침까지 잠만 잘 잤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선견지명이 있나 봅니다. 부처님을 열심히 믿는 할머니입니다. 절에 가서 잔다고 하는데도 안 보냈습니다. 부처님 마음을 알고 계시나 봅니다.
아침 먹은 후 트럭을 타고 집으로 오는데 산 고개 밑에서 고장이 났습니다. 밀어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고치기를 기다리다가 점심때 주먹밥을 먹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못 고쳐서 걸어오는데 산을 넘으니 해가 졌다나요. 배도 고프기도 하고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 걸음을 재촉하다 동해동 송내네 집에 들렀습니다. 물이라도 얻어먹고 오려고 했는데 송내 아버지와 엄마가 밥을 해서 먹였답니다. 송내는 왜 맨 날 맨 날 지각을 하나 했는데 지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학교까지는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는 송내가 지각했다고 놀리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