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45. 눈싸움

by 지금은

온 세상이 변했습니다. 산과 들이 하얗습니다. 우리 동네도, 멀리 보이는 앞 동네의 지붕도 하얗습니다. 학교 가는 길도, 학교의 지붕도, 운동장도 하얗습니다. 이런 날에 틀림없이 눈싸움이 벌어집니다. 아주 어려서도, 일 학년 때도, 이 학년 때도 그랬습니다.

오늘도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눈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성급한 아이들은 책보자기를 교실에 둘 생각을 잊었습니다. 어깨에 둘러멘 채 눈덩이를 던집니다. 이런 날에는 내 편도 상대편도 없습니다. 서로 친한 친구들에게도 던집니다.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친구에게도 던집니다. 남자아이에게도 던지고 여자아이에게도 던집니다. 누군가에게 꼭 던져야겠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던지면 됩니다.

“너 거기 있어, 붙잡히기만 해 봐라.”

석화가 눈 뭉치를 들고 달아나는 명식을 쫓아갑니다. 틀림없이 눈덩이가 석화에게로 날아갔을 것입니다. 명식이가 달아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나를 붙잡겠다고? 붙잡을 수가 있다면 쫓아와 보라지.”

키는 작아도 달리기를 잘하는 명석이입니다. 덩치가 큰 석화가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뒤를 쫓아가지만, 명석은 용케도 잘 달아납니다. 한 번쯤은 붙잡혀 줄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곤란합니다. 힘센 석화가 그냥 봐줄 리가 없습니다. 명석은 잘 압니다. 눈덩이로 얼굴을 맞힌 것이 아닙니다. 석화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목을 잡았습니다. 입과 코에 눈덩이를 집어넣고 얼굴을 통째로 비벼 주었습니다. 화 난 게 분명합니다. 석화는 결국 명석을 잡는 것을 포기하고 흰 입김을 모락모락 뿜어 대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혼자 중얼거립니다.

“이따가 붙잡히기만 해 봐라 그냥 두나.”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석화의 분은 풀리지 않았나 봅니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교문 뒤로 돌아갔습니다. 명석이가 나올 때를 기다립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명석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식, 벌써 울타리를 넘어서 도망갔나?”

석화가 망보기를 포기하고 돌아섰습니다. 이때입니다. 어디서 숨어 있었는지 명석이가 재빨리 다가가 눈을 한 움큼 석화의 목덜미에 넣고 등을 두드렸습니다.

“시원하겠지?”

명석은 석화의 저고리 등판을 몇 차례 더 문지르고는 혀를 날름 내밀었습니다. 석화는 깜짝 놀라 재빨리 손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명석은 어느새 석화의 손에서 벗어났습니다.

“너 거기 있어, 이제는 정말 그냥 안 둘 거야.”

석화는 운동회 날 달리기를 하던 것보다 더 힘차게 명석을 쫓아갑니다. 정말 화난 얼굴입니다. 석화의 눈을 본 명석이도 이제는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납니다. 눈길은 걷는 것은 무척 힘이 듭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집니다. 넘어지며 달아나고 쫓아가다 넘어집니다. 시간이 많이 났습니다.

명식이의 힘이 빠지면서 점점 석화와의 거리가 가까워집니다. 마침내 등이 잡힐 듯 말 듯합니다. 뒤를 돌아보던 명석이가 뒤뚱하고 중심을 잃고 눈 위에 쓰러졌습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잡혔지, 제가 달아나면 못 잡을 줄 알고.’

잡으려고 같이 넘어졌지만, 명석은 보이질 않습니다. 길 아래 논 밑으로 굴러 버렸습니다.

“너 빨리 올라와, 그냥 안 둘 거야.”

명석은 눈 속에 묻힌 채 보이지 않습니다.

“장난하지 말고 나와, 나한테 혼날까 봐 겁나서 그러는 줄 다 알아.”

잠시 기다리던 석화는 아무런 대답도 없자 걱정이 되나 봅니다. 얼굴빛이 달라지며 길 아래로 뛰어내렸습니다. 석화의 몸도 눈 속에 묻히고 겨우 얼굴만 빠끔히 눈 위로 드러냈습니다.

“괜찮니? 괜찮니?”

석화는 어쩔 줄을 모르고 눈을 마구 헤쳤습니다. 그러자 명석이의 머리가 보이고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눈썹, 코, 입, 귀며 몸 전체가 눈투성이 입니다. 완전히 눈사람입니다. 석화는 얼굴을 감싸고 있는 명석이의 손을 잡고 논 가운데로 나왔습니다.

“미안해, 잘못했어.”

“야,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때야? 죽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다고.”

석화는 눈 범벅이 된 자기 몸은 생각은 못 하고 눈사람이 된 명석의 몸을 떨어 주었습니다. 언덕을 몇 차례 미끄러지다 겨우 길 위로 올라섰습니다.

“너도 눈 털어야지.”

명석은 석화의 눈 쌓인 몸을 털어 주었습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구나, 같이 안 왔으면 너 죽을지도 모를 텐데. 누나한테 감사해라.”

“누나는 무슨 누나, 나 때문에 춥지 않게 집에 가면서.”

“감사하라고 해라, 그렇지 않으면······.”

미소를 먹은 석화의 손이 명석이의 머리 위로 올라갔습니다.

“알았어, 우리 집에 가서 감 줄게.”

“감은 무슨 감?”

“네가 조금 전에 감사라고 했으니까.”

“그런 감 말고.”

“알았어, 그런 감 아니면 홍시겠지. 가자.”

“아니, 아직도 이게 누나를 놀려.”

명석이의 혀가 날름 밖으로 나왔습니다. 또 앞서서 달렸습니다. 석화도 지지 않고 달렸습니다. 달려가는 명석과 석화의 등 뒤로 세차게 내리는 눈발이 점점 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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