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기대가 크면 20220518
걸음이 빨라집니다. 평소에 굼뜨던 행동이 날쌘돌이가 된 듯싶습니다. 동행을 할 때면 늘 뒤처지던 그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나를 한 발 앞서갑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는 나보다 다섯 발짝은 앞섰습니다.
‘호떡’
호떡 때문입니다. 그는 호떡을 퍽 좋아합니다. 어느 곳을 가든 그것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내가 만류할 때는 눈요기라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토요일이면 되도록 바깥나들이를 했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노들섬입니다. 내 계획에는 새빛섬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야경을 보는 것이 좋다기에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집에서 먼 곳이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녹녹지 않다고 생각됐습니다.
이곳저곳 검색을 하다 보니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노들섬에 도착할 때 점심때를 넘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재수가 좋다고나 해야 할까. 전철 급행을 연이어 두 번이나 탔습니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했습니다. 노들섬,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옛날의 밤섬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밤섬은 좀 더 강의 하류 쪽에 있습니다. 마포대교 방향입니다. 나는 서울에 살았으면서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관심이 문제입니다. 서울에 살지 않았어도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예를 든다면 내가 프랑스에 살지 않아도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이 파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노들섬의 위치와 환경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예전에 있던 작은 섬을 인공적으로 손을 더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작은 숲도 있습니다. 산책로가 보이기에 걸어볼까 하고 접근했는데 맹꽁이의 서식지라는 문구와 함께 출입 금지 알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출입을 할까 염려가 됐는지 철조망의 작은 문에 자물쇠까지 채워 놓았습니다. 숲 속을 거닐어 보고 싶었는데 마음뿐입니다. 먹을거리는 시원치 않습니다. 음료수 외에는 피자가게 하나뿐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해 올 걸.’
피자가게는 이미 사람들이 붐비고 있습니다. 입구에는 긴 줄이 이어졌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차림표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의외로 가지 수가 많습니다. 줄을 서서라도 먹고 가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 동료가 내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내 기호가 아니야. 차라리 호떡을 먹는 게 낫지.’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배도 꺼지지 않았는데 호떡이나 먹으러 가자는 말에 발길을 돌렸습니다. 노들섬은 규모가 작고 볼거리가 적어서인지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남대문 시장으로 갈까, 동대문 시장으로 갈까 망설이는데 그는 인천대공원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맛도 그러려니와 크기도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부평역에 도착했을 무렵입니다. 무언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이 빈 모양입니다. 시간을 보니 숫자가 두 시 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근래 점심으로 한 시를 넘긴 일은 드뭅니다. 보통 열두 시경입니다. 아침을 평소 일찍 먹는 편입니다.
인천대공원 입구에 들어섰을 때는 시장기를 느꼈습니다.
‘이럴 수가 있나.’
걸음을 빨리했지만 호떡 장수의 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차에 가려 보이지 않나 봅니다. 마침 우리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컵 속에서 반쯤 몸통을 내민 호떡을 베어 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호떡 장수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있던 자리는 텅 비었습니다. 한 걸음 늦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많으니, 재료가 일찍 떨어졌을 거야.”
그가 말했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서둘러 왔지만, 평소에 호떡을 사 먹는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간입니다. 애써 왔는데 허무합니다.
며칠 전에 읽은 동화 「마법 골무가 가져온 여름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주인공 가넷의 한 장면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읍내에 갔다가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팔찌를 발견했습니다. 사고 싶었지만, 돈이 부족했습니다. 마음을 알아차린 주인은 돈을 마련해 오기까지 남에게 팔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부지런히 집안일을 도와 생일날까지 팔찌를 살 돈을 모았습니다. 생일날 읍내에 가기로 했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일로 다음으로 미루자, 화가 난 그는 먼 읍내로 향했습니다. 여름날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걸어 도착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약속과는 달리 며칠 전에 팔찌가 팔리고 말았습니다. 약속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주인공이 잊은 줄로 알았답니다. 발길을 되돌리는 주인공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내가 느끼는 허무함보다 몇 배 더 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야, 호떡 장수 돈 벌어주려고 했더니만 헛수고만 했잖아. 오늘만 날인가.”
애써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감자옹심이 전문점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새알심 중에서도 감자옹심이라, 말은 들었지만 생소합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나요. 저번 주에는 콩국수 전문점에 갔습니다. 문이 닫혔습니다. 매진이랍니다. 어쩌겠습니까. 옆집 메밀국숫집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