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47. 달래

by 지금은

달래를 캐러 갔습니다. 어제부터 명숙이가 졸랐습니다. 많이 캐준다고 했습니다. 학교가 끝나자, 집으로 뛰어왔습니다. 바구니에 호미를 담아서 개울 건너 명숙이네로 향합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책보자기를 둘러맨 동우와 마주쳤습니다.

“어디 가니?”

“명숙이네.”

“뭣 하러?”

“달래 캐러.”

“자식, 여자냐?”

“아닌데.”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놀자. 남자란 나물이나 캐는 게 아니야. 고추가 없으면 몰라도.”

동우는 호야가 나물을 캐러 간다는 게 마땅치 않은가 봅니다. 자꾸만 가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호야는 명숙과 나물을 캐러 가고 싶습니다.

“오늘은 약속이니 한 번만 캐고 가지 않을게.”

“야, 약속도 약속이지. 남자는 그런 약속은 안 지켜도 되는 거야.”

징검다리 위에서 돌아서지 않고 버텼습니다. 동우는 안 됐다는 표정을 짓고는 길을 비켜 주었습니다. 명숙은 벌써 집을 나와 감나무 밑에서 손짓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면 어떻게 하니? 얼마나 기다렸다고.”

우리는 감나무 밑을 지났습니다. 둑을 지나 안 고랑으로 갔습니다. 달래가 생각보다 많다고 합니다. 명숙만이 안다고 합니다. 묵밭에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바구니를 보더니 비웃습니다.

“아이고 요렇게 작은 바구니를 가지고 왔어?”

“조금만 캐가려고.”

“내가 많이 캐 준다고 했잖아. 나처럼 큰 바구니를 가지고 와야지.”

명숙이 바구니는 커서 옆구리에 낄 수가 없습니다. 머리에 이고 갔습니다. 진짜로 달래가 많은가 봅니다. 허풍을 떠는 것 같아서 작은 바구니를 가지고 왔습니다. 큰 바구니를 가지고 올 것을 그랬나 봅니다.

명숙은 신이 나서 치마를 펄럭이며 뛰어갑니다. 호야도 뛰어갑니다. 명숙이가 노래를 부르며 종종걸음으로 언덕을 오릅니다. 호야도 노래를 부르며 언덕을 올랐습니다. 명숙이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힙니다. 호야의 얼굴에도 땀방울이 송송 맺힙니다.

“다 왔다.”

명숙이가 숨이 차는지 바구니를 동댕이쳤습니다. 벌러덩 묵밭에 쓰러지듯 누어 버렸습니다. 호야는 따라서할까 하다가 그냥 묵밭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호야도 숨이 차올랐습니다. 나비가 민들레꽃에 앉으려다가 깜짝 놀라 다시 날아올랐습니다. 뒤따르던 나비도 날아올랐습니다. 묵밭에는 파르스름한 풀들이 많이 돋아나 있었습니다.

“이게 달래야.”

명숙이가 달래를 가르쳐 주고는 생끗 웃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하나를 캐어 호야의 바구니에 넣어 주었습니다. 생각처럼 많지 않습니다. 명숙이가 말한 것과 다릅니다. 한참 동안 캤지만, 명숙은 한 사발도 캐지 못했습니다. 호야는 물론 반 사발도 못 캤습니다.

“작년에는 무척 많았는데.”

호야는 돌아설까 하다가 묵밭에 깔린 씀바귀를 캐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토끼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명숙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부엉댕이로 가보자고 했습니다. 호야는 토끼가 좋아할 씀바귀만 부지런히 캤습니다. 밭 기슭으로는 개나리가 긴 허리를 늘어뜨렸습니다. 노란 꽃들을 탐스럽게 피웠습니다. 산 위로는 진달래가 꽃봉오리를 터뜨렸습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꽃들이 많아서 딴 세상에 온 것 같습니다. 나물을 많이 캐지는 못했어도 기분이 좋습니다. 명숙과 오랜만에 소꿉놀이도 합니다. 계집애와 소꿉놀이한다고 놀림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단둘이니까요. 명숙은 호야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호야도 명숙을 위해 나무를 해 오고 밭에 있는 수수깡들을 가지고 아늑한 집도 지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해가 기우는 것도 몰랐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호야가 말했습니다.

“내일 또 나물 뜯으러 가자.”

“재미있니?”

“응.”

“너는?”

“나도.”

명숙이가 방긋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갔습니다.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이 나와서 놀렸습니다.

지지 배짱 사내 짱, 지지 배짱 사내 짱.

누구누구는 명숙과 묵밭에서 으아 했대요.

호미 가지고 으아 했대요.

지지 배짱 사내 짱, 지지 배짱 사내 짱

누구누구는 명숙과 바구니 끼고 으아 했대요.

손을 잡고 으아 했대요.

동우는 나쁜 놈입니다. 친구들에게 말한 게 틀림없습니다. 아는 사람은 동우밖에 없습니다. 호야는 눈을 흘기며 친구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여자애들과 한 번도 안 놀았니?”

동우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숨어서 놀지는 않았지.”

“나도·

“나도.”

지지 배짱 사내 짱, 지지 배짱 사내 짱,

누구누구는 명숙과…….

명숙이가 책보자기를 들고 들어오다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너희들 호야와 나를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우리 아버지한테 일러.”

아이들이 놀리기를 멈추고 교실로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명숙이가 정말로 이르면 큰일입니다. 명숙이 아버지는 힘이 장사라서 아무도 이기지 못합니다. 군내 씨름 대회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상으로 두 번이나 송아지를 타 왔습니다. 일 학년 땐 동우가 명숙을 때렸다가 동우도 동우 아버지도 혼났습니다.

명숙이가 칠판 앞에서 말했습니다.

“한 번만 더 놀려 봐라. 그냥 두나.”

교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명숙이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야, 공부 끝나고 우리 집에 오는 거야. 알았지.”

귓속말로 속삭이고는 제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갈까 말까?’

생각하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오늘은 웬일이지? 이상하다. 아침 자습도 없는데 얘들이 이렇게 조용할까? 매일 이렇게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

“명숙 때문이에요.”

반장이 말했습니다.

“그래? 그럼, 명숙이는 오늘부터 생활부장이다.”

친구들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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