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고향을 떠나온 지 육십 년 20221023
친지의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눈에 익은 사람들과 두루 인사를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인사 방법이 제각각입니다. 손을 잡는 사람, 눈인사를 하는 사람, 목례를 하는 사람, 주먹을 맞대는 사람, 팔꿈치를 부딪치는 사람, 인사법은 달라도 마스크 속에는 미소에 미소가 눈을 통해 배어 나옵니다. 나는 상대의 동작에 맞추어 그들의 인사법에 따랐습니다.
내가 식장의 자리에 앉았는데 사촌 동생이 손을 잡더니 뒤로 돌아섭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이 나를 보고는 포옹이라도 하려는 듯 내 손을 덥석 부여잡았습니다.
“참 오랜만이야.”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얼버무려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니고 그저 어중간한 표현을 보였습니다. 검은 마스크에 검은 모자를 깊이 눌러쓴 그는 누구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자리에 앉아 신랑·신부의 결혼 과정을 눈여겨보지만 아무래도 걸리는 검은 모자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잠시 막간을 이용하여 동생에게 다가갔습니다.
“누구야.”
“할머니 동생 막내아들이잖아요.”
돌아앉은 그를 자세히 살펴보니 맞습니다. 어려서의 모습이 보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때 그의 어린 모습을 보고 그 후로는 만난 일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는 용케 내 모습을 알아보았습니다. 내 형님의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와는 달리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형님의 얼굴이며 표정을 닮아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아 몰라봐서 미안합니다. 마스크와 모자 때문에 알 수가 있어야지”
어깨를 어루만지면 말을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에게도 인사를 했습니다. 연로하신 때문에 역시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촌 동생에게 묻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지 모릅니다.
식장에서 사촌 동생들의 자녀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다가와 인사를 하기도 했지만, 몇 명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으면서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동생들이 자식들을 인사시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식사하는 동안 제수씨 한 분이 휴대전화를 켜고 사람들 사이를 돌면서 셔터를 부지런히 누릅니다.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아주버님, 형님 표정을 지어주세요.”
우리가 손사래를 치며 사진 찍기를 사양했지만 재차 요청합니다.
“만날 기회가 적으니, 친척들을 다 기억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표정을 지어주었습니다.
나도 제수씨처럼 친척 친지들의 사진을 담아두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은 고만고만해서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혹시 길거리에서 만나거나 지나친다 해도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있겠다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고향 동창생들 자녀의 결혼식에 참가했을 경우 가끔 무안을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몇십 년 동안 만나보지 못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행사장에서 어쩌다 만나면 그들은 용케도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악수를 청합니다. 내가 잠시 어리둥절할 때가 있습니다.
“야 인마, 친구도 몰라보냐?”
그들은 나를 용케 알아봅니다. 학교 다닐 때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았고 아직도 그 옛날 모습이 살아있다고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알아보지 못한 게 죄입니다. 존댓말을 반 섞어 미안함을 표합니다. 어떤 친구는 대놓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도회지에 산다고 무시하느냐는 투입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그게 아니라며 다시 한번 사과해야 했습니다. 이유는 내가 고향을 잘 찾지 않는 데서 비롯된 일입니다. 나고 자란 곳에 대해 섭섭한 일도 없는데 선뜻 발길이 내디뎌지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고향을 찾아 성묘하는 정도입니다. 끝나면 곧바로 돌아섭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빈곤했던 시절을 떠올리기 싫어서가 아닌가 합니다. 가뜩이나 병약했던 시기라서 친구들과 어울림도 적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세울 만한 추억거리도 없습니다. 주로 집에 있거나 나 홀로 체력에 맞게 산과 들과 어울렸습니다.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자연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계절의 감각을 남들보다 예민하게 느끼고 먼저 받아들이는지도 모릅니다. 겨울 속에 봄을 찾아내고 봄 속에서 여름을 찾아냅니다. 지금은 가을 속에 겨울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동창 친구들을 몇 명 만납니다. 그들은 시골의 변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지만, 나는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합니다.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어릴 때의 고장 모습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