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생각 밖의 선물 20221022
오늘은 덤으로 문화축제를 즐겼습니다. 사촌 동생의 아들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입니다. 한 달 전에 알림이 왔기에 날짜에 큰 동그라미를 하고 잊을까 하는 생각에 별표까지 해놓았습니다. 곧 문자도 보냈습니다.
“아들 결혼 축하해, 곧 할아버지가 되겠네. 기쁜 소식 전해주어서 고마워.”
결혼식이 오전이라 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그냥 가기는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일부러도 서울 구경을 가는데 이왕 서울에 발을 디뎠으니 어느 곳에 가서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인천의 끝에서 서울의 끝까지 가기에는 꽤 먼 거리입니다. 버스보다는 전철을 선호하기에 몇 차례 환승도 해야 합니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내가 말합니다.
“석촌호수나 둘러보고 가면 어떨까요.”
벚꽃이 만개한 때에 쏟아지는 벚꽃을 맞으며 호수를 걷던 추억이 살아난 듯합니다. 예식 장소에서 불과 백여 미터 떨어진 곳이라 부담 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평일이 아니고 쉬는 날이라서 그럴까 젊은 사람들이 호수 둘레 길을 메웠습니다. 봄에 왔을 때보다는 덜 붐볐지만, 그때 못지않게 많은 인파입니다. 우리는 곧 이들 속에 묻혔습니다. 반 바퀴를 채 못 갔을 때입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이게 아닌데, 벚꽃 필 때와는 정취가 사뭇 다르네.”
실망하는 눈치입니다. 아직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았습니다. 단풍이 든다 해도 벚나무들은 가을의 정취가 흠뻑 묻어나지 않습니다. 이파리의 색깔이 별로 곱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다른 곳으로 가는 건데.’
아무래도 오늘은 시간을 소비했으니 어떤 곳을 들리기는 무리라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무렵입니다. 갑자기 음악 소리와 함께 귀에 익은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눈을 돌리자, 계단 위에 축제를 알리는 문구가 있습니다. 전철을 타기 위해서는 어차피 그곳을 지나야 하기에 계단을 밟고 올라섰습니다. 이곳에 공연장이 있을 줄이야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원형의 계단에 앉아 있습니다. 귀에 익은 아나운서가 맞습니다. 평소에 재치 있게 말을 해서 호감이 가는 사회자이기도 합니다. 막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군중들의 틈에 끼었을 때 한 팀이 악기 연주를 마치고 다른 팀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물놀이, 가을 정취에 맞는 트로트, 우리 민요인 창, 리듬체조, 팝송……. 계속 프로그램이 이어졌지만, 아내와 나는 중간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길에서의 늦은 밤을 싫어합니다.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가을 그대로 좋습니다. 자연의 선물인 하늘, 땅, 공간의 변화, 뉴스를 보니 오늘은 설악산에 이만오천 명의 사람들이 몰렸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곳곳에 많은 사람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나는 가을이 되면 자연을 즐기러 밖으로 나가지만 이에 못지않게 각종 행사에도 참여하려고 합니다. 덤으로 얻는 볼거리는 뛸 듯이 기쁩니다.
며칠 전에는 덕수궁 관람을 하고 돌담길을 걷는데 개인 연주자가 길거리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첼리스트입니다. 내가 익히 알고 좋아하는 곡을 발표하기에 한동안 넋을 잃고 감상했습니다.
“생각지 않은 생음악을 감상했으니, 얼마간의 값을 지불해야겠지요.”
고개를 끄덕이자, 아내는 지폐를 그의 모자에 넣었습니다.
인사동에 지필묵을 사러 갔을 때입니다. 미술회관에서 서예 전시회가 있습니다. 화랑에서는 개인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횡재를 만났습니다. 작가의 친절한 설명에 두 배의 기쁨을 얻었습니다. 또 다른 날에는 송림동 꽃 축제를 연다기에 구경하고 민속놀이에도 참여했습니다. 나는 어려서 좋아하는 제기차기, 굴렁쇠 굴리기를 했습니다. 제기차기는 예전만 못했지만, 굴렁쇠 굴리기는 여전했습니다. 곧 옆 골목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공방의 작품들이 골목을 따라 양옆으로 길게 늘어섰습니다.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퀴즈 문제를 풀고 예쁜 공책도 한 권 받았습니다. 그림책 만들 때 더미 북(가제본의 책)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을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뜻밖의 선물이 있는 계절입니다. 특히 글감을 얻기 좋은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가을을 잘 보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