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호떡 이야기 20221029
나는 요즈음 호떡을 좋아합니다.
내가 처음 호떡을 먹어본 것은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입니다. 밤늦게 시장에서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마중하면 가끔 꿀 호떡을 사주셨습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는 호떡이라는 말을 들어본 일도 없고 구경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장날에 어른들을 따라 시장 구경을 한 일이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호떡집에 불났다.”
이 말은 어른들에게서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바쁘거나 급한 일로 허둥지둥할 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중국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다 보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저 중국말을 표현할 때 ‘쏼라쏼라’(算了算了)라고 할 때가 있었습니다. 중국어를 표현할 때 본래 이 말은 “충분해”라는 뜻이지만, 우리가 쓸 때는 ‘뭔가 거칠게 말하는 중국말’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는 성조, 즉 말에 높이를 넣어 의미를 구분하는 중국어의 특징 때문이지만, 상대의 말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호떡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의 중국어는 ‘이상하면서도 시끄러운 말’로 들립니다. 이러한 이유로 호떡집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시끄러운 가게’란 인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중국인의 어수선한 모습이 우리에게는 호떡 가게가 한 마디로 불난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낯선 문화가 서로 충돌하면서 만들어진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편으로 호떡이 인기가 있어 잘 팔렸으니 바쁘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떡이 맛은 있지만 먹을 때는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한 입 베어 물면 꿀이 꿰져 나와 흘러내립니다. 처음에는 맛있다는 생각만 드는데 손등에라도 떨어지면 몹시 뜨겁고, 핥아먹고 나면 살갗이 덴 것 같습니다. 이 꿀 든 호떡을 먹노라면, 손과 입가에 검은 꿀이 묻습니다. 그냥은 떨어지지 않아 물에 씻어야 지워집니다. 꿀이라는 설탕이 옷이나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끈끈해서 불편합니다. 바닥에 넓은 종이라도 깔면 좋습니다.
아동문학가 어효선이 남긴 호떡에 대한 이야기 한 도막을 소개합니다. 혓바닥 데는 줄 모르고, 입천장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먹는 호떡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통칭 ‘중국 사람들’, 곧 화교가 꽉 잡고 있었습니다. 화교가 이 땅에 들여온 음식이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굽는 풍경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어효선의 회고에 따르면 호떡은 화교의 중국집에서 팔던 음식입니다. 호떡집에는 벽돌로 쌓고 흙으로 미장한 부뚜막이 있습니다. 호떡은 부뚜막 위에 놓인 둥근 철판에서 애벌구이합니다. 다음 불이 이글이글 타는 화덕에 빙 둘러 넣어서는 속을 고루 익혀 완성했습니다. 그때는 설탕 소 말고 팥소도 썼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팥 든 것보다 검은 설탕 든 것을 좋아했습니다. 게다가 팥 든 호떡은 지름이 10㎝, 설탕 든 호떡은 얇아도 지름이 15㎝입니다. 아이들은 찐득한 흑갈색 설탕 소를 ‘꿀’이라 부르며 신나게 호떡을 먹어 치웠습니다. <수정 증보 조선어사전>(1940년) 또한 호떡을 일러 ‘양밀가루를 물에 반죽하여 둥글넓적하게 만들고 속에 흑설탕이나 혹은 팥소를 넣어 철판에 구운 떡’이라 했으니, 전에는 딱 한 가지 호떡이 다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호떡의 종류가 많았나 봅니다. 지금 공갈빵이라고 불리는 빵도 호떡의 한 종류라고 합니다.
나는 중학교 일 학년 때 처음으로 꿀 호떡 맛을 보았습니다. 다른 소를 넣은 것은 구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호떡과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먹기가 다소 불편한 점도 있지만 이사를 한 때문입니다. 호떡과 친해진 것은 불과 이삼 년에 불과합니다. 어쩌다 아내와 먹을거리를 말하다 호떡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내가 어릴 때의 추억을 되살렸습니다. 꿀 호떡입니다. 함께 나들이할 기회가 되어 말했습니다.
“나가는 김에 우리 호떡을 한 번 맛볼까.”
우리 고장에서 파는 곳을 인터넷으로 검색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서 그런지 역전 가까이 있는 노점에는 사람들이 줄 서 있습니다. 일회용 컵에 받아서 들었습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옆에 매달려 있는 휴지를 몇 장 뽑았습니다. 입을 닦을 종이입니다. 입이 컵 가까이 다가가자 뜨거운 얼굴에 퍼집니다. ‘후’ 불고는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단맛이 강합니다.
“하나 더 먹어야지요.”
고개를 끄덕했습니다. 거의 다 먹을 무렵입니다. 처음 맛이 서서히 숨겨집니다. 너무 달다는 느낌이 짙어집니다. 하나만 먹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중학교 때 먹던 호떡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크기가 작고 바삭거림이 적습니다. 그때는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얼굴 크기만 했습니다. 지금은 호떡의 크기가 삼분의 정도입니다. 속이 더부룩해서 결국 점심 계획은 취소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호떡 하면 크기가 작기는 하지만 하나로 족했습니다.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호떡의 기호도 변했습니다. 차 맛이 있는 호떡, 팥이 들어있는 호떡, 수수로 만든 호떡 등 몇 가지 종류를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수수에 팥소가 있는 호떡을 좋아합니다. 수수부꾸미 맛도 팥의 맛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달지 않아 먹고 나서 뒤끝도 좋습니다.
요즈음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니 호떡도 그냥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천 원 하던 것이 오백 원 올랐습니다. 하지만 팥과 수수를 좋아하는 나는 이를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 이를 위해 먼 서울까지 원정을 합니다. 아직 인근에 수수 호떡을 파는 곳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천 원의 행복이 천오백 원의 행복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