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설날은
상철네 집 바깥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찬샘거리를 향해 달렸습니다. 우르르 한꺼번에 달렸습니다. 호야도 달렸습니다. 왜 아이들이 달리는지 모릅니다. 그냥 아이들을 따라 달렸습니다. 오솔길을 놔두고 논두렁으로 달리다가 논배미를 가로질러 달립니다. 호야도 뒤지지 않으려고 달렸습니다. 처음부터 논배미를 가로질러 달렸습니다. 눈발이 하나둘씩 날리기 시작합니다. 바람을 타고 뒤에서 앞으로 흩날립니다. 하늘이 뿌옇게 잿빛으로 물들어 갑니다. 한참을 달리던 호야가 아이들을 따라잡으며 옆에서 달리던 동석에게 물었습니다.
“야, 왜 찬샘거리로 달려가는 거지?”
그렇지만 동석이는 호야를 힐끔 곁눈질로 쳐다보고는 말도 없이 숨을 헐떡이며 앞으로 달려갑니다.
“야, 힘들다. 천천히 가면 안 되니?”
“천천히 가도 돼. 너만 말이야.”
“왜?”
“서울 가 있는 우리 누나가 늑대고개를 넘어오고 있다고 하니까 빨리 마중 가야 해.”
“누나?”
“응.”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동석을 따라 뛰던 호야는 갑자기 멋쩍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보처럼, 따라가긴 왜 따라가지? 우리 누나도 아니고 친척도 아닌데.’
찬샘거리 바위 언덕에 올라섰습니다. 저 멀리서 여자애가 큰 보따리 두 개를 들고 힘들게 걸어옵니다.
‘동석이 누나?’
멈춰 서서 생각하는 사이에 동석은 앞서서 달려 내려갑니다.
“우리 누나다.”
동석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집니다. 아까보다 더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날 것 같습니다. 뒤따라서 몇 발짝 내려가다가 멈췄습니다. 어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야가 슬그머니 바위 언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동석이와 아이들이 누나를 둘러싸고 함께 걸어옵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동애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드디어 동애가 언덕 아래 이르렀습니다. 호야는 바위 뒤로 돌아가 숨었습니다.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옵니다. 고개를 살며시 내밀어 동애를 쳐다봅니다. 얼굴이 뽀얗고 키도 나만큼 큽니다.
‘서울이 좋은가 보다.’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보내고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동해를 보니 알 것만 같습니다. 동애와 아이들이 호야의 곁을 지나갈 때입니다. 뛰쳐나가 반겨주고 싶었습니다. 동애의 서울 생활이 궁금했습니다.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큰 소리로 떠들면서 지나가는 그들의 말소리에는 서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모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엄마는 돌아오신다는 기별이 없고 오실지 못 오실지 모릅니다.
‘엄마가 먼저 오시지 동해가 먼저 올 게 뭐람’
동네 어귀로 들어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엄마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엄마는 호야의 곁을 떠난 지 벌써 사 년째 되었습니다. 형을 공부시킨다고 서울로 함께 가신 후에 명절 때는 한 번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늘 명절 전에 오시곤 했는데 요번에는 달랐습니다.
“바쁘셔서 그럴까?”
작년입니다. 엄마를 졸라 따라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호야는 잘 압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시나 봅니다. 동구 밖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 때까지 열 번도 더 넘게 뒤를 돌아보십니다. 돌아가라고 손짓합니다. 올해는 어쩌면 엄마가 못 오실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늘 명절 전에 다녀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다려집니다. 혹시 덜 바쁘셔서 형과 함께 올지도 모릅니다. 동해와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집으로 되돌아갈까 하다가 그냥 바위 위에 서 있기로 했습니다.
연을 가지러 간 사이에 엄마가 나타나시면 어쩌지. 얼굴에 와닿는 바람이 차갑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모퉁이가 뚫어져라 하고 쳐다봅니다. 사람들이 가끔 산모롱이에서 나타납니다. ‘혹시 엄마가’ 하는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바라봅니다. 때마다 다른 사람들입니다.
“호야야, 여기 서서 뭣 하고 있니? 추운데.”
장에 다녀오시던 이웃집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고개를 저었습니다.
“바람도 세찬데 들어가지.”
“괜찮아요.”
“눈깔사탕 줄까?”
아저씨는 낌새를 알아챘나 봅니다. 안 됐다는 표정으로 사탕 하나를 손에 쥐여 주고 지나칩니다. 해마다 명절 전날 내가 바위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아저씨는 늘 명절 바로 전날에 장을 봐 오십니다.
“불쌍한 녀석, 아버지도 없는데 엄마와 떨어져 있으니.”
저만치 지나치며 하는 소리지만 바람결에 들려옵니다. 잿빛 하늘에 눈발이 거세지면서 점점 어두워집니다. 산모퉁이가 아물거리고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이더니 이제는 그나마 산모퉁이까지 어둠에 묻혀버렸습니다. 호야의 머리에는 어느새 흰 눈이 쌓입니다. 어깨에도 발등에도 쌓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동석이네 개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습니다. 벌써 어둠이 옅게 깔리고 논둑길을 눈이 덮어버렸습니다.
‘인제 그만 돌아가야지.’
생각하며 고개를 돌릴 때였습니다.
“거기 서 있는 게 호야지?”
고모가 밭 가장자리에서 외칩니다. 호야는 아무 대답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밭둑을 향해 발을 옮겼습니다.
“저녁도 안 먹고 여기 있으면 어떻게.”
고모는 늘 호야의 마음을 읽고 있습니다. 찾으나 마나 찬샘거리에 가면 분명히 있을 거라며 이곳으로 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누가 온다는 기별이 있으면 이곳으로 옵니다. 집안 식구들이 오게 되면 이곳에서 마중합니다.
“뭣 하러 여기 와있어? 올 사람도 없는데.”
“그냥.”
호야는 고개를 머리를 숙인 채 말없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고모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습니다. 말했다가는 호야의 눈물이 터질지 모릅니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바람이 세차게 몰아칩니다. 발목이 눈에 빠집니다. 호야는 눈을 한 움큼 다져 저 아래 논을 향해 던졌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는 오시지 않고 쓸데없는 눈만 올 게 뭐람’
동석이네 집에 갈까 생각했지만 그만두었습니다. 나보다 한 살 위지만 동해와 얼굴을 마주하면 서먹서먹할 것만 같습니다. 호야가 동해를 피하듯이 평소에도 동해 역시 호야를 피하곤 했으니까요. 이불을 덮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방 안에서 뚫어진 문틈으로 밖을 내다봅니다. 눈은 쉬지 않고 내립니다. 엄마가 걱정됩니다. 호야는 밖으로 나와 댓돌 위부터 사립문을 향해 싸리비 질을 했습니다. 사립문을 나와 동구 밖까지 갔습니다. 동구 밖에는 어느새 만들어 놓았는지 눈사람이 호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집들의 불들도 하나둘씩 꺼져갑니다. 이제는 인수네 집 등잔불만 가물거립니다. 조금 있으면 꺼지겠지요. 호야는 돌아오다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발자국이 호야를 따라옵니다. 따라오는 저 발자국이 엄마의 발자국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