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일백 원
긴 막대기를 가져다가 조심조심 건드려 보고 살살 건져봅니다. 하지만 동전은 요리조리 미끄러지며 춤을 춥니다. 엎드려 한참이나 동전과 씨름합니다. 이마에 난 땀이 콧잔등을 타고 아래로 떨어집니다. 지나가던 애들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뭐 하니?”
“보면 모르냐?”
“동전 건지려고 그러는구나.”
“그래.”
“어떻게 된 거야?”
“물 떠먹으려다 빠뜨렸어.”
아이들은 호야가 하는 모습을 보며 이것저것 참견을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건져줄게.”
애들이 나무막대기를 빼앗아 동전을 건지려 시선을 집중합니다. 막대기 끝에서 자꾸만 미끄러질 뿐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몇 번이나 모래 속에 숨어드는 것을 겨우겨우 찾아냈습니다.
“안 되겠다. 물을 퍼내는 수밖에는.”
말하고는 물러섰다가 하나둘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을 푸면 되겠지?”
꼬마에게 말했더니 물속을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드디어 바지를 걷어붙이고 두레박을 물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한 두레박, 두 두레박,······. 물은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후유’하고 긴 숨을 토해냈습니다. 이마의 땀을 닦았지만 물은 항상 그대로입니다. 꼬마가 다가와 우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물이 좀 줄었니?”
“응, 아주 손톱만큼.”
조그만 손을 펴고 제 손톱을 가리킵니다. 앙증맞습니다. 줄고 있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다시 물을 퍼냈습니다.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모릅니다. 허리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멈췄습니다. 물은 한 뼘도 줄어들지 않아 보입니다. 기다리다 지친 꼬마는 돌아가 버렸습니다. 주위는 고요합니다. 모두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서 아주 조용합니다.
백 원짜리 동전은 매우 귀중합니다. 다른 백 원짜리 동전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호야의 장래가 담긴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서울에 계시는 엄마가 다녀가셨습니다.
“약속을 못 지켜서 어떻게 하지? 미안하구나. 엄마가 좀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했는데.”
엄마는 무척이나 마음 아파하며 걱정하셨습니다.
“건강 조심하고 열심히 공부해라. 졸업하면 서울로 데려갈게.”
졸업했지만, 서울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쪽 손을 가슴에 안고 있는 호야를 보시면서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손을 크게 다쳤습니다. 나무를 하러 간다고 산에 갔다가 산비탈에서 미끄러져 손을 잘못짚었습니다. 낫에 손가락을 여러 개 뱄습니다. 손가락을 꿰매려고 병원에 갔습니다. 그 외에는 소독약만 바르며 한 달이 넘게 가슴에 손을 매달고 있었습니다. 실밥도 호야가 면도칼로 끊었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은 겁 때문이지만, 원인은 치료비입니다. 굶는 처지에 병원에 간다는 생각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엄마는 어떻게 소식을 아셨는지 모릅니다. 한 달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 내려오셨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엄마는 물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니? 좋을 수가 없을까?”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엄마도 한동안 생각을 하셨지만 역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셨나 봅니다. 갑자기 한숨을 푹 쉬고는 호야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다음날 해가 돌담 위를 지나갈 무렵 엄마는 서울로 떠날 채비를 하셨습니다. 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일하러 나가고 마을도 역시 텅 비어있습니다.
“이야기를 좀 하자꾸나.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밤새도록 생각을 해봤다. 서당에 다니는 것이 어떻겠니? 형도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 서당을 좀 다녔지,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구나.”
호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쁜 일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을 가슴에 붙들어 매고 집안 식구들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왠지······. 그렇다고 식구 중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엄마는 호야 손에 삼백 원을 꼭 쥐여 주셨습니다. 내일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하라 부탁했습니다. 앞으로의 돈은 보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삼백 원은 석 달 치의 공부할 돈입니다.
걱정됩니다. 호야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이웃집 할아버지가 서당 선생님이셨는데 무서웠습니다. 춘식이네 집에 가끔 놀러 갔습니다. 하루는 건넛마을 형이 공부에 게으름을 피웠다고 할아버지한테 종아리를 맞았습니다. 종아리가 빨갛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할아버지가 떡을 먹고 가라고 했지만, 겁이 나서 집으로 막 뛰어왔습니다. 그리고 뒤 곁으로 돌아가 광에 숨었었습니다. 그 후로는 서당 선생님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춘식이네 집에 놀러 가지도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서당에 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됩니다.
‘못한다고 혼나고 종아리를 맞으면 어떻게 하지?’
생각하던 호야는 내일 가기로 했습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내일 가야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내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꼭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배가 고팠습니다. 늘 하던 것처럼 우물로 갔습니다.
‘물먹어야지.’
아무런 생각 없이 두레박을 우물에 넣고 물을 퍼 올리기 위해 허리를 굽혔습니다. 순간 ‘찰방’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우물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백 원짜리 동전입니다.
‘아이고, 이를 어쩌지?’
두레박으로 건져 올리려 했지만, 물이 출렁출렁 춤만 춥니다. 긴 막대기로 건지려 해도 물을 퍼내 보아도 뜻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춘식이 형이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보고 말했습니다.
“어림도 없다. 장정 넷이 함께 물을 퍼내야 청소를 할 수 있는 우물인데 혼자 힘으로 되겠니.”
춘식이 형이 돌아갔습니다. 삼촌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걱정이 되어 집으로 갔다가 우물로 왔다가 했습니다. 동전은 비스듬히 가라앉아 있습니다. 또 왔다 갔다를 여러 번 했습니다. 해가 우물가의 향나무 밑을 비출 즈음 삼촌이 소를 몰고 옵니다. 재빨리 우물로 달렸습니다. 동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막대기로 바닥을 살살 헤쳐 봤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건져 갔나?’
삼촌한테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큰일입니다. 서당에서는 석 달 치나 받는다니 말입니다. 식구들이 알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됩니다. 알면 혼이 날 것은 뻔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 어떤 일이 있어도 꼭 건져야 하는데 어쩐담.’
다시 물속을 들여다보았지만 역시 동전은 보이지 않습니다. 향나무 밑 언덕에 턱을 고이고 있는데 여자들이 물을 길으러 하나둘씩 왔다 갑니다.
“아줌마, 동전 보이지 않아요?”
“무슨 동전?”
아줌마는 무심코 물을 떠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아랫집 누나가 물을 길으러 와서 두레박을 우물 속에 넣습니다.
“누나, 동전 안 보여?”
“동전?”
“보이나 잘 봐?”
“동전을 어떻게 했기에?”
“응, 아무것도 아니야.”
날이 어두워지고 사람들이 오지 않자, 반달이 우물 속에 보일 때까지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밥 안 먹고 어디에 가 있었니? 배고프겠다.”
고모가 보리 개떡을 내밀었습니다.
“안 먹을래.”
고모는 말없이 도로 부엌으로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모두 마당에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같이 있기가 싫었습니다. 사랑방으로 들어가 누었습니다. 윗주머니를 만져보니 이백 원이 그대로 있습니다. 걱정되어 동전을 꺼내 골방 벽 틈에 숨겼습니다. 혹시라도 또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엄마가 알면 얼마나 서운해하실까.’
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꿈속에 엄마의 베틀 소리가 가냘프게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