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51. 고구마

by 지금은

한 고개를 넘었습니다. 조금 무겁습니다. 한 고개를 넘었습니다. 조금 더 무겁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았습니다. 어깨가 조금 결립니다. 팔도 무겁습니다. 동생이 내 얼굴을 보고 말했습니다.

“쉬었다가 가자.”

“무거워서 그래?”

“아니, 오빠가 힘들어 보여서.”

“조금만 더 가서 쉬자.”

호야는 막대기에 매달린 고구마 보자기를 제 편으로 좀 더 당겼습니다. 그러자 동생의 팔이 가벼워졌나 봅니다.

“내 쪽으로 당겨야 해.”

“왜?”

“내 팔이 가벼워진 것 같아서.”

“아니야.”

산모퉁이를 돌고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냇가의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오빠, 쉬어 가자.”

“그럴까?”

들고 있던 고구마 보자기를 내려놓고 등에 진 고구마 자루를 벗어 바위에 내려놓았습니다. 돌다리 앉아 세수했습니다. 이른 봄이라 바람이 차기는 해도 시원합니다. 동생도 따라서 세수했습니다. 석양빛이 개울을 노랗게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해가 어느새 산봉우리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는데.”

“바보, 어떻게 굶고 살 수가 있어. 하루만 굶어도 배가 고파서 죽겠는데.”

“하느님도 밥을 먹고살까?”

“에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그렇지만 먹고살겠지. 하느님이라고 별수 있을까? 하느님도 굶으면 죽겠지.”

동생이 침을 꼴깍 삼키며 나를 나무라듯 말했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하늘골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고구마를 얻어 가는 중입니다. 먹을 것이 아닙니다. 종자로 써야 합니다. 우리 집에도 고구마가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습니다. 큰 밭에서 캔 고구마가 꽤 많다 싶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다 먹어 버리고 지금은 씨앗을 할 것도 없습니다. 며칠 전부터 삼촌이 말했습니다.

“다가오는 일요일에는 하늘골 아저씨 댁에 가서 고구마를 얻어 오너라. 그래야 큰 밭에 심을 수 있으니까.”

큰댁 아주머니가 반겨 주었습니다.

“아이고 조그만 것들이 왔네. 엄마 떨어져 고생이 많구나.”

아주머니는 우리들이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따뜻한 점심을 지어 주시고 홍시도 두 개씩이나 주셨습니다. 맛있고 배가 불렀습니다. 그만 먹겠다고 해도 자꾸만 먹으라고 했습니다.

점심을 먹자, 우리들은 떠나기로 했습니다. 금방 가면 힘들다고 좀 쉬었다가 가라고 하셨습니다. 산에 갔다가 오신 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자고 가려무나.”

“아뇨, 내일 학교에 가야 되는데요.”

“그래? 그럼 안 되겠구나. 서둘러야 한다. 부지런히 가야 해 넘어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무거운 것을 가지고 해지기 전에 갈 수가 있을지 모르겠구나. 삼촌이 왔으면 좀 더 가져가도 될 터인데.”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서둘러 고구마 자루와 보자기를 들었습니다.

“할머니께 안부 전하고 잘 가거라. 산 너머 넷째 할아버지 제사에 가야 하니 갖다 줄 수도 없고 어떻게 한담. 형님도 원, 직접 와서 가져가지.”

“가다가 힘들면 쉬면서 가거라. 그리고 놀러 와. 맛있는 것도 줄게.”

혀를 차고는 동구 밖까지 나와 자루를 등에 메어 주고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인제 그만 가자.”

“응, 그런데 오빠가 힘들어서 어떻게 해. 보자기를 내가 머리에 이어 볼까?”

“그만둬라. 조그만 게 어떻게 머리에 인다고 그래.”

동생은 호야가 걱정되나 봅니다. 잠깐 쉬었지만, 개울에서 물도 먹고 세수도 했으니, 보따리가 한결 가벼운 느낌입니다. 모퉁이를 다시 돌고 큰 바위 아래를 지났습니다. 장구목 앞을 지나갑니다. 반도 못 갔는데 해는 벌써 산 위에 매달렸습니다. 다시 늑대 바위 밑을 지났습니다. 어깨가 결리고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땀이 흐릅니다. 동생도 힘들어합니다.

“팔 안 아프니?”

“오빠는?”

“나는 아직 괜찮은데.”

“나도.”

동생은 막대기에 꼬인 고구마 보자기를 제 편으로 당겼습니다. 내 팔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조금 가다 보니 동생의 팔이 아픈 것 같습니다. 다시 보자기를 호야 편으로 당겼습니다. 팔이 전보다 무거워졌습니다.

“오빠, 힘들지?”

“너는?”

“조금.”

“나도.”

“그럼, 조금만 쉬었다 가자.”

서리골 앞에서 고구마를 내려놓았습니다.

안골에 와서 쉬었습니다. 북실에 와서 쉬었습니다. 해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는 꼴깍 넘어갔습니다.

“오빠, 힘들어”

“쉬자.”

백 걸음을 갔습니다.

“휴.”

“쉬자.”

고구마를 등에서 내려놓을 생각도 안 하고 언덕에 기댄 채 쉬었습니다.

“가자.”

또 백 걸음을 가고 쉬었습니다.

“오빠, 보자기는 내가 들고 갈게.”

“안 돼, 무거워.”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괜찮아.”

팔십여 걸음을 가서 쉬었습니다. 오십여 걸음을 가서 쉬었습니다. 학교 말에 다가왔습니다.

어둠이 짙어집니다. 갈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방앗간 앞에 오자 집마다 불이 켜졌습니다. 아직도 삼십 분은 가야 합니다. 동생이 보자기를 자기편으로 당겼습니다. 조금 가다가 쉬었습니다. 동생이 또 보자기를 자기편으로 당겼습니다. 막대기의 반을 넘었습니다. 또 가다가 당겼습니다. 동생의 팔이 무릎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보자기는 도랑에 감춰 놓고 갈까?”

“안 돼.”

“내일 가져가면 되지.”

“누가 가져가면 어떻게 하려고.”

막대기를 든 동생이 힘을 주어 허리춤으로 갔습니다. 막대기를 두 손으로 들었습니다. 보자기를 내 편으로 당기고 나도 두 손으로 들었습니다.

마을 앞 냇가에 닿았습니다.

“물먹고 가자.”

동생은 고구마를 내려놓고는 재빠르게 물가에 엎드렸습니다. 나도 재빨리 엎드렸습니다. 동생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내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호야니?”

어둠을 뚫고 삼촌이 다가왔습니다.

“이 녀석들이 밤인 줄도 모르고 놀고 있어? 걱정했잖아.”

삼촌은 고구마 보자기와 자루를 빼앗아 들고 앞장을 섰습니다.

“애걔, 이것도 고구마라고. 줄려면 많이 주지. 큰 밭에 심으려면 더 있어야 하는데 어쩌지.”

말없이 불 꺼진 방에 들어가 누었습니다. 구멍 뚫린 창호지 사이로 별들을 한 번 보고는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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