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엄마의 앞치마
“호야야, 이리 와.”
엄마가 부엌에서 살그머니 얼굴을 내밀고 손짓하면서 부르십니다. 무슨 비밀이 있어 보입니다. 호야는 대답하지 않고 살금살금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마당에는 이웃집 춘식이가 놀고 있었지만,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도 사립문 밖에서 잡초를 뽑고 계셨지만, 알지 못하셨습니다.
“본 사람 없지?”
“응.”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여기 앉아, 누구한테도 이야기하면 안 돼.”
엄마는 재빨리 부지깽이를 들어 아궁이 속을 헤집고 동그란 것을 꺼냈습니다. 재투성이를 부엌 바닥에 놓고 부지깽이로 살살 쳤습니다. 큰 재가 어느 정도 떨어져 나가자, 손으로 고 운재를 살살 떨었습니다. 다음 앞치마로 감싸고는 호호 입으로 불었습니다. 동그란 덩어리에서 가느다란 재들이 떨어져 나옵니다. 손이 뜨거워 번갈아 덩어리를 이 손 저 손으로 옮깁니다. 드디어 재가 다 떨어져 나가자, 엄마는 내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자 먹어 봐, 맛은 별로 없겠지만.”
“이게 뭔데요?”
“풀빵.”
한 입 벼 물어보니 겉은 바삭거리고 속은 부드럽습니다.
“맛있는데요.”
“그래? 그럼, 다음에 또 해줄게. 풀이 남으면 말이야.”
맛이 있습니다. 주먹보다 훨씬 작습니다. 큰 달걀만 합니다. 아깝다는 생각에 조금씩 떼어먹습니다. 먹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입맛을 다셨습니다.
“엄마도 드세요.”
호야가 반을 떼어 내밀었습니다.
“너나 먹어라, 작아 나눌 게 있겠니. 이렇게 맛있어하는 줄 알았으면 좀 더 크게 만들걸.”
엄마는 아침을 드시지 못하셨습니다. 식구들이 밥을 다 먹어 엄마 차례는 오지 않았습니다. 더 먹고 싶어 하는 식구들에게 한술씩 더 놓다 보니 엄마의 밥그릇은 비었고 주걱에 붙은 밥 몇 알을 잡수셨습니다. 물만 한 대접 마셨습니다.
‘엄마가 먹어야 하는데.’
먹다 보니 다 먹어 버렸습니다. 물론 엄마가 잡수려고 만든 풀빵은 아닙니다. 엄마 혼자 드시려고 이런 일을 할 리는 없습니다.
“네 덕택에 소가 무럭무럭 자라고 윤기가 나는구나. 다른 애들은 꾀도 잘 부리는데, 너는 소와 맞는가 보다. 소띠라서.”
“엄마는.”
“풀빵 먹었다고 하지 마라. 절대 비밀이야. 할머니 아시면 혼난단다.”
고개를 끄떡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음에도 호야는 몇 번인가 풀빵을 먹었습니다. 그때마다 몰래 숨어서 먹었습니다. 엄마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도 잡수시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배고파하시는 것 같아서 한 번은 풀빵을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표정이 변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맛이 없어서 그러니?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는데.”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그냥 먹어야 했습니다. 엄마는 불쌍합니다. 자나 깨나 일뿐입니다. 낮에는 들에 나가 논일 밭일을 해야 합니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절구 방아를 찧어 저녁 준비를 해야 합니다. 겨울에는 하루 종일 절구 방아질에 손이 터져 피가 튑니다. 밤에는 명주를 짜고 틈틈이 식구들의 바느질을 해야 합니다. 가끔 바느질하다가 졸기라도 하면 할머니의 호령이 떨어집니다. 없는 살림에 점심은 없고 저녁도 거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차지는 없습니다. 있으면 몇 술, 없으면 그만입니다. 할아버지 안 계신 가난한 집 칠 형제 맏며느리라고 생각을 해본다면 짐작될 겁니다.
우리 집 소는 참 신기합니다. 아무리 비쩍 마른 소를 사 와도 호야의 손에서 일 년이 지나면 살이 통통 오르고 윤기가 자르르 흐릅니다. 동네 사람들은 말합니다.
“다 호야 때문이지 뭐. 그 녀석은 소에 완전히 미쳤어.”
“맞아. 소 곁에서 한시라도 떨어져 있지를 않으니 그렇겠지.”
동네 사람들의 말처럼 호야는 학교만 갔다 오면 소와 살다시피 합니다. 소를 보통 위하는 게 아닙니다. 풀을 뜯기고 등을 긁어 주고 목욕도 시킵니다.
엄마는 어쩌다가 달걀도 구워 주셨습니다. 제사 때와 명절을 빼고는 일 년 내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달걀을,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돼. 할머니가 아시면…….”
엄마가 대신 드셨으면 했지만, 말을 못 하고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먹었습니다. 분명히 엄마는 나에게 먹일 양으로 말씀하신 게 분명합니다. 전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요.
“맛이 없나 보다, 있으면 좀 더 맛있는 것을 해줄 수 있을 텐데.”
엄마의 맑은 눈에 눈물이 어른거립니다. 호야는 더 이상 눈을 마주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재빨리 먹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그날도 호야를 향해 조심스레 손짓하셨습니다. 분명 풀빵을 주실 겁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앉아.”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았지만, 아궁이의 불은 이미 꺼져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소와 너무 가까이하지 마라. 앞으로는 공부에 신경을 쓰도록 해라. 늘 소랑 있다 보 면 나무꾼이나 농사꾼이지 되지. 농군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농사지을 땅이 변변치 않고 기운도 약하니 열심히 공부해서 가난에서 벗어난 사람이 돼라.”
고개를 끄떡이는 호야의 손에는 생각하지 못한 박하사탕 하나가 들려 있습니다. 어디서 났는지 엄마는 아무도 모르게 감춰 두었던 사탕을 치마폭에서 꺼냈습니다.
“뒷동산에 올라가 먹어라. 하늘도 보고 저 멀리 산 너머 무엇이 있나 생각해 봐, 보이는 것은 다 보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커서 무엇이 됐으면 좋겠는지 궁리해 보렴.”
엄마의 배에서는 다시 꼬르륵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동산에서 막 떠오르는 달님의 얼굴처럼 엄마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아 보입니다. 엄마의 말씀대로 박하사탕을 손에 꼭 쥐고 뒷담을 넘어 동산으로 향했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될지 생각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