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내 취향을 찾아서 20221124
취향이 뭐라고요.’
말하기가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빠져드는 겁니다. 무엇인가 맘에 든다 싶으면 물속으로 다이빙하듯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풍덩 합니다. 계획 없이 덤비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후회도 하지만 지나고 보면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해볼 걸 하는 뉘우침은 없습니다. 이것저것 해보니 때로는 망했다고 허탈해했는데 지나고 보면 뭔가 남는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 그림자입니다.
나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내가 ‘아니다’ 생각이 날 때까지 캐묻고 알아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변죽을 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취향이란 쉽게 말하면 많은 물건 중에 맘에 드는 것을 하나 집어내는 경우와 같습니다.
한동안 음악에 빠진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일은 없지만 나 스스로 습득을 위해 여러 해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하지만 내 실력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악기는 없습니다. 다만 몇몇 악기는 청중 없이 혼자 즐길 수 있는 정도입니다. 결과 나는 음악에 대해한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남은 것은 있습니다. 악보를 보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음악의 세계는 넓습니다. 악기연주, 지휘, 노래, 감상……. 내가 정착한 곳은 감상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시간만 허락한다면 준비물 없이 다가설 수 있는 분야입니다. 감상법을 모르는 나는 어떤 이론이나 배경도 없이 무조건 빠졌습니다. 남의 연주와 성악이 좋았습니다. 내 취향은 고전음악입니다. 많은 음악의 장르가 있지만 웅장한 것보다는 물 흐르듯 잔잔하고 감미로운 곡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구노의 아베마리아, 쇼팽의 녹턴,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등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나는 제라늄의 빨간 꽃에 매력을 느낍니다. 냄새가 진해 약간 거부감은 있지만 일 년 내내 빨강을 유지할 수 있어 좋습니다. 햇볕만 잘 받으면 별 탈 없이 싱싱함을 유지해 줍니다. 꽃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림도 이야기해야겠습니다. 크로키에 관심이 갑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광경을 재빨리 담아낼 수 있어 좋습니다. 음악 감상처럼 미술 감상도 좋아합니다. 관람료가 없는 화랑이나 전시회가 있다면 잘 찾아갑니다.
나는 꼼지락거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색종이 접기에 빠졌습니다. 몇 년 동안 아내의 지청구를 받으면서도 몰입했습니다. 정말 미쳤습니다. 사과상자 크기의 박스에 담긴 종이접기 작품이 여섯 개나 되었습니다. 여복했으면 아내가 쓰레기장에 갖다 버리겠다고 했겠습니까. 아까워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내 작품은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습니다.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에게, 칭얼대는 아이에게, 각종 모임에서 헤어질 때 하나씩 그들의 손에 쥐어줍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도 밝은 얼굴과 이야기가 살아납니다.
다음으로는 운동입니다. 핸드볼 시청을 즐깁니다. 예전에 아이들을 지도한 이유로 관심을 가집니다. 내가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는 지금의 걷기와 자전거 타기입니다. 자전거에 중독되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장모님이 내 생일 선물로 값비싼 자전거를 사주셨습니다. 덕분에 쉬는 날이면 먼 거리를 달렸습니다. 부천에 살 때는 서울, 수원, 김포, 강화 등의 먼 길을 혼자 힘든 줄 모르고 달렸습니다.
나는 독서도 좋아합니다. 매일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 여깁니다. 문학작품으로는 소설과 동화, 수필입니다. 시는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시가 미지의 세계라고 여겨집니다. 시인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나름대로 공부를 했지만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공부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심이 필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시인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취향은 한 마디로 부딪쳐보는 겁니다. 무턱대고 덤비다 보니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는 했어도 남는 것은 있습니다. 그 분야의 흐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의 버킷리스트는 의외로 많았습니다. 메모장에 기록해 보았습니다.
‘와! 이렇게 많았던 거야.’
탈출한 것들도 많지만 잔잔한 것들이 아직도 바구니 가득합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어린아이가 세상의 신기함에 몸 둘 바를 모르듯 나는 백지 위를 달리는 연필입니다.
‘이 나이에 뭐 하게.’
나는 이 나이에도 찾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취향이 많다고 여깁니다. 그러고 보니 바쁜 것이 내 취향인가 봅니다. 궁금한 것이 내 취향인가 봅니다. 또 다른 냄새를 맡아봐야 합니다. 요즈음은 책 속에서 철학자들의 동네를 방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