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봄놀이
토요일 오후의 햇살은 따스합니다. 호야는 책보자기를 어깨에 둘러메고 교실을 나섭니다. 해님과 마주쳤습니다. 눈이 부십니다. 손을 들어 눈을 가렸습니다.
‘어서 가야지.’
자운영꽃이 눈에 선합니다. 해마다 피는 꽃은 올해도 개울을 건너 논바닥을 덮었습니다. 논두렁까지 온통 붉게 물들였습니다. 호야에게 좋은 놀이터입니다. 해마다 자운영꽃이 만발하면 며칠이나 이곳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꽃시계를 만들어야지, 꽃반지도 만들어야지, 화환도 만들어야지’
호야는 논에 이르자 책보자기를 아무렇게나 논둑에 던져놓았습니다. 수많은 벌이 꽃에 모여들어 꿀을 따기에 바쁩니다. 호야는 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면 호야에게 달려들지 않습니다.
‘어디가 좋을까?’
천천히 주위를 둘러봅니다. 길가 쪽이 좋습니다. 조금 있으면 명자가 지나갈 듯합니다. 오늘 청소 당번이라서 조금 늦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명자를 만나야 합니다. 반지와 시계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화환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커서 나중에 결혼도 하고 싶습니다. 논은 불을 켜놓은 만큼이나 밝습니다. 해가 미루나무보다 더 높은 곳에서 호야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호야는 부지런히 꽃반지를 만들었습니다. 몰래 자운영 포기사이에 감췄습니다. 무릎을 세우고 턱을 고이고 길을 쳐다봅니다. 명자가 지나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혹시 샛길로 가면 어쩌지.’
명자가 빨리 와야만 합니다. 눈이 부셔 살그머니 눈을 감았습니다. 눈꺼풀이 따스해집니다.
“야, 너 눈은 왜 감고 있어?”
눈을 뜨자, 명자가 어느새 내 뒤에 있습니다. 나를 보고 몰래 뒤로 돌아왔나 봅니다. 일부러 놀라는 척했습니다.
“아휴, 깜짝이야. 발소리를 내야지.”
슬그머니 꽃반지를 내밀었습니다.
“너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예쁘다.”
명자가 손가락에 감아봅니다. 호야는 꽃반지를 빼앗아 손가락에 매어 주었습니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방긋 웃었습니다.
“우리 놀다가 갈까?”
“그래.”
꽃반지를 만들었습니다. 꽃시계도 만들었습니다. 화환도 만들었습니다. 명자가 꽃시계를 호야의 팔목에 매어주었습니다. 호야는 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명자의 얼굴이 천사처럼 예쁘게 보입니다. 함께 화환을 만들었습니다. 서로서로 머리에 씌워주었습니다. 호야가 낯을 붉히며 입을 열었습니다.
“야, 우리 결혼할까?”
“결혼, 너무 어린데.”
“그럼, 나중에.”
“우리 엄마한테 물어보고.”
“비밀로 하면 어떨까?”
“그러지, 뭐.”
봄볕이 잘 익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