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58. 더위 팔기

by 지금은

“대보름날 아침에 더위를 팔아라.”

할머니는 며칠 전부터 말씀하셨습니다. 작년에는 더위가 심했습니다. 논바닥이 갈라지는 가뭄에 더위는 극성을 떨었습니다. 동네 우물물도 말라갑니다. 할머니는 평생에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말씀대로 일찍 일어났습니다. 구름이 하늘을 가렸습니다. 해님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나 봅니다. 온 동네가 조용합니다. 호야는 신발을 신자마자 이웃집으로 갔습니다. 춘식이네 집입니다. 사립문에 다가섰지만, 마당은 뿌연 안갯속에 묻혀있습니다.

“춘식아, 춘식아”

‘왜’하는 대답이 들리며 방문이 열렸습니다.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며 춘식이가 마당을 지나 사립문으로 다가왔습니다.

“내 더위 사가라.”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호야 더위 사 가라.”

춘식이네 집 안방 문이 덜컥 열렸습니다. 춘식이 엄마가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이 등신 같은 놈, 호야가 네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지 말고 내 더위 사가라 해야지, 올 더위를 어떻게 참아내려고 해.”

춘식이 엄마는 춘식이 머리에 꿀밤을 주었습니다. 곧 손목을 끌고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조금 있다가 춘식이 형이 호야 집 앞에 왔습니다. 마당에서 세수하는 호야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갔습니다. 형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양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호야야.”

“응”

“내 더위 사가라고.”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지 말라는 할머니 말씀을 잊었습니다. 춘식이 형은 환한 얼굴을 하고는 재빨리 자기 집으로 사라졌습니다.

올해는 호야의 더위를 팔고 춘식이 형의 더위를 샀습니다. 호야의 더위가 더 심한지, 춘식이 형의 더위가 더 심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호야가 더위를 산 것은 비밀로 했습니다. 할머니가 알면 뭐라고 하실까?

‘금방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게야.’

삼촌이 밖에서 돌아왔습니다. 손에는 복숭아나무 가지가 들려있습니다. 곧 소의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올여름에는 더위 타지 말고 농사일 잘해야 한다.”

아침을 먹고 학교로 가는 길에 정은이를 만났습니다.

“정은아.”

“내 더위 사가라.”

이를 어쩌지, 더위를 팔려다 더위를 먹게 되었습니다. 호야는 시무룩한 얼굴을 한 채 정은이를 앞서 걸었습니다. 정은이가 나와 같이 걸으려고 발걸음을 빨리하면 호야는 그만큼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걱정할 것 없어. 해뜨기 전에 더위를 사고팔아야 하는 거야.”

“정말?”

교실은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떠들썩했습니다.

“내 더위 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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