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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17. 2024

2021 그날

18. 어머니의 초상화(肖像畵) 20210327

내 어머니의 초상화는 없습니다. 여태껏 초상화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내 곁을 떠나신 지는 몇십 년이 흘렀습니다. 초상화는 없지만 아직은 어머니의 모습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어쩌나, 사진첩을 들출 때마다 어느새 가족들의 사진과 함께 어머니의 모습도 점점 빛이 흐려지고 있습니다. 세월이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내가 전에 「어머니의 초상」이란 글을 읽었지만 기억을 온전히 되살릴 수는 없고 다만 아지랑이처럼 희미하게 피어오릅니다.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어머니라는 말을 찾자, 나에게 낯익은 작가들의 이름이 나열됩니다. 그러고 보니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머니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나도향, 박경리, 박완서, 신경숙, 막심 고리키, 알퐁스 도데, 펄벅,…….’


그들의 마음이나 나의 마음이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를 말하라면 어머니는 내 마음의 고향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어머니를 떠올리다 「어머니의 초상화」라는 그림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묘사처럼 그 내용 중에는 어머니와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어머니이면서도 여인입니다. 가정을 지키는 강한 모습을 보이는 어머니, 한편으로는 연약하여 보호받고 싶어 하기도 하고, 얽매임에서 벗어나 여인으로서의 진정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보듬어 안아야 하는 절대 본능의 강한 어머니.


한 여인으로 대접받고 살아가고 싶어 하는 어머니가 아닌 한 여자의 숨겨진 내면.


나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는.


자식이 보는 어머니는 같은 모습임이 틀림없습니다. 모성 본능을 지닌 사람, 나는 작가들이 그리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때때로 그려지는 여인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어머니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육이오 전쟁, 남편과 이른 사별, 시어머니, 구 남매나 되는 시동생들 그리고 네 명의 자식이 복닥거리는 대가족.


시골에서의 삶은 눈을 뜨면 오로지 일뿐입니다. 밭으로 논으로 산으로, 늦은 시간의 집안 살림, 도시에서의 삶도 이에 못지않았습니다. 아침과 동시에 시작되는 하루의 일과는 무거운 봇짐을 이고 시장을 도는 일입니다. 별이 초롱초롱한 밤길, 보름달이 중천에 걸린 시간, 눈비가 발길을 어지럽히는 순간에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무쇠 같은 분이었습니다.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장군을 하고도 남았을 터인데.”


어머니가 힘겨워할 때 이모님이 가끔 혼잣말처럼 내뱉는 중얼거림이 내 귀를 찾아왔습니다. 그 속에는 이모님의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숨어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겨울이면 모진 바람과 추위에 ‘글리세린’ 하나로 터진 손과 발을 지탱하셨습니다.


나는 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어머니의 초상화」의 한 여인으로 살다 가셨으면 좋았을 걸, 짧은 시간이라도, 틈틈이라도 좋습니다. 마냥 기다려 줄 것만 같았던 어머니, 나의 삶이 어렵다는 이유로 화장품 하나, 머릿기름 하나 사드리지 못한 것이 눈에 밟힙니다.


내 몸이 여기저기 아파진 후에야 어머니는 강철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책의 어느 구절에서 읽었던 누군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부모가 돼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것은 고맙지만 다음 생애에 어머니의 삶이 되풀이된다면 극구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 제발 좋은 시기에 태어나세요. 평화롭고 풍족한 곳에서…….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전에 자신이 꿈꾸는 멋진 여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굳센 여인, 그리고 자애로운 나의 어머니!


고이 간직한 빛바랜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무릎 위에 펼칩니다.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어머니의 영상이 오롯이 기억되기를……. 어머니 감히 사랑한다는 말씀은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존경한다는 말로 대신하렵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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