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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17. 2024

2021 그날

19. 여행을 떠나자고요? 20210328

코로나가 마치 얼음덩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짓누르지만, 계절은 어느새 겨울을 뒤로 몰아내고 봄을 앞세웠습니다.


‘여행을 떠나자고요.’


봄에 어울리는 말입니다.


어렸을 때 몇 번 듣던 말입니다.


“춘심은, 순녀는 봄바람이 났대요.”


어느 날 괴나리봇짐을 가슴에 안고 종적을 감췄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무렵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도 피었습니다. 추위에 꽁꽁 감추어 두었던 마음이 봄눈이 녹자, 버들강아지처럼 피어올랐는지 모릅니다.


나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춘심이, 순녀, 영삼이가 마을에서 사라진 후로는 사춘기가 아닌 어린 나이지만 늘 바깥세상이 궁금했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텃밭에서 아지랑이와 놀고 있는 새참 때입니다. 작은 고무신을 발에 꼬인 채 슬그머니 뒷동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주위를 둘러봅니다.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킵니다.


‘저기가 공주라고 했지, 이쪽은 천안이라고 했지, 뒤쪽은 온양이라고 했지.’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서 무작정 천안 시내를 향해 걸었습니다. 넓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목적지에 이를 것만 같았습니다.


“어디를 그렇게 부지런히 걸어가니?”


“천안에요.”


“왜?”


“기차 구경하려고요.”


개울 건너에 사는 아저씨가 극구 말렸습니다. 작은 발로 가기에는 무리랍니다. 다음에 어른들과 가보라고 합니다. 다리가 아픕니다. 못 이기는 척 아저씨 손에 이끌려 되돌아왔습니다. 그림에서만 보았든 기차가,  친구가 자랑하든 기차가 함께 어른거렸습니다.


나는 책을 읽다 보니 요즈음 삶 자체가 여행이라는 느낌을 머릿속에 가두었습니다. 생로병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삶이 여행의 과정입니다. 짧은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고 긴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간으로야 알찬 여행이었음을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나는 긴 여행을 좋아합니다. 대부분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할머니의 말씀입니다. 가보고 하시는 걸까. 가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셨을까?

‘저승이 좋다지만 이승만이나 할까.


미지의 세계는 늘 궁금하지만 두려운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종교가 사람의 출현과 함께하는지 모릅니다. 미지의 세계를 가늠해 볼 수 있다면 신에게 의지하는 종교는 사람들 곁에 함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신에 대한 의지도 여행의 과정이 될까요. 나는 고민에 빠진 때도 있었습니다.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종교와 신은 존재할 것인가?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잠자리에서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도 하나의 여행이라면 어떨까요. 꿈도 생활의 일부인 것은 분명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온몸이 찌뿌듯합니다. 스마트 폰에 저장된 강사의 몸동작을 따라 어제 배운 스트레칭을 해봅니다. 음향과 구령 소리가 잠시 시끄러웠나 봅니다. 식구들이 눈을 비비며 거실에 나타났습니다. 소리를 슬그머니 낮춥니다. 생각 없이 너무 이른 시간에 소란을 피운 것 같아 잠시 몸의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졌습니다.


“동작을 좀 크게 해야겠어요. 팔 동작이 너무 뻣뻣해요.”


“처음이라 그렇지 뭐.”


처음은 아닙니다. 어제도 했으니 말입니다. 식구들이 하나둘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나 둘 셋……여덟, 한 번 더 반복.”


함께 모여 있는 것을 모르는 강사는 우리들의 부산스러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절제된 구령을 반복합니다. 잠시 잠깐 집안 식구들과 운동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이라고요.’


모든 것이 다 여행이라고 한다면 뭐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과정일 뿐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여행? 어느 여행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니 기준이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동기, 대상지, 관심의 대상, 경관, 기간, 교통수단, 진행 주체로 나열했습니다. 학문적인 측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그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마음에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권태로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둘째,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의 충족. 셋째,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입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천안 시내가 얼마나 먼 곳인지도 모르고 발길을 옮긴 것은 새로운 호기심의 충족을 위해서였습니다.


퇴직을 하면서 한 아내와의 약속이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입니다. 동남아로부터 유럽으로 차근차근 시야를 넓혔는데 코로나가 우리의 발길을 묶었습니다. 약속을 못 지키니 어쩌지요? 스스로 면죄부를 주어야겠습니다. 대신 한 달에 두어 번 서울의 골목 탐방입니다.


아울러 집중적인 독서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과의 대화기 이루어집니다. 생각 차이로 가끔 다툼이 일기는 하지만 아직은 순항입니다. 차이점은 대부분 시대적 감각이거나 사상의 견해가 다름입니다. 오늘은 책상에 오래 머물러서일까요.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기지개를 켭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호숫가를 돌아야 합니다. 사물과의 대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녁노을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 태양, 호수에 내려앉은 별들과 반짝이는 눈 맞춤, 그보다 먼저 부스럭거리는 갈대와의 속삭임도 들어야겠지요.


큰 물고기가 별을 하나 덥석 물었습니다. 곧 몸이 빛을 발할 것입니다. 나는 삶 자체가 그냥 여행이라 여기렵니다.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생각도 잠시 멈췄습니다.


“머무름도 여행이라면 여행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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