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책 읽기 20210230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을 거들떠보지 않던 내가 변했습니다. 이제는 독서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언제인지는 가늠할 수가 없지만 손이 슬금슬금 책에 다가가더니만 그것을 마음에서 놓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철학 서적입니다. 어려운 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생각에 가끔 철학책을 손에 듭니다. 음식을 가려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가끔 억지로라도 눈에 넣으려고 노력합니다.
기초가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마음에 두지 않아서일까요. 아무튼 일주일 전부터 두꺼운 철학서를 펼쳐놓고 씨름합니다. 용어 자체도 어렵지만 문학이나 역사서에 비해 문장을 이해하는 자체가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책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 순간 만족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쉽게 풀이를 해놓았다고는 하지만 깊이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보니 책장을 덮을 때는 허전한 마음뿐입니다. 소설을 예로 든다면 아이들을 기준으로 기술한 「레미제라블」과 성인이 읽는 「레미제라블」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의 철학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철학이 무엇인지 정답을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사전적으로는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어떤 현상에 대해 원인을 생각하고 분석해 보는 것입니다. 즉 어떤 사실에 대해 ‘왜?’라는 물을 가지고 그 물음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가는 과정이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라는 물음에 늘 자신이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져본다는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혼돈이 오고 머리가 아파집니다. 철학자들의 논리나 주장에 대해서 선 듯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학자 간의 학문적 견해나 대립에 있어서는 내용뿐만 아니라 문장을 파악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누군가의 책을 읽다 보니 좋은 책이란 쉽게 쓰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쉬운 용어, 간결한 문장이 독자의 이해를 잘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쓴 책보다는 비전문가가 쓴 책이 더 재미있고 읽기 쉽다고도 합니다. 자신의 처지에서 될 수 있으면 이해하기 쉽도록 기술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서를 쓴 저자들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책이 철학서뿐만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디로 기초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알파벳을 겨우 익힌 사람이 영어 동화책을 읽겠다고 덤비는 것과 같다는 마음이 듭니다.
섶에 올린 누에의 모습처럼 빽빽한 글씨를 천천히 읽어갑니다. 이해되는 내용이 있고 그렇지 못한 곳도 있지만,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시간을 죽여 가며 앞으로 나갑니다. 사전을 들치고 인터넷을 뒤지며 용어를 알아봅니다. 어느새 반을 읽었습니다. 머릿속에 남는 것은 별로 없지만 철학자들과 주변을 둘러싼 환경들을 아는 것만으로도 수확이 있다고 위안으로 삼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아픕니다. 이럴 때는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덮어두고 다른 분야의 책으로 옮겨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수필, 시, 소설, 동화, 때론 그림책으로도 눈이 옮겨갑니다. 내용이 좀 쉬워 보이는 곳으로의 여행은 휴식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책만 읽었어야 하겠습니까. 산책자도 됩니다. 공원을 걸으며 호숫가를 거닐며 마음을 정리하고 주변과 대화도 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시야를 가렸던 황사가 서서히 물러났습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렸던 봄이 맑은 하늘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꽃들이, 나무들이, 풀들이, 새들이 생기를 얻었습니다. 민들레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색색의 꽃들이 벌들을 불러 모읍니다. 까치가 집을 짓기 위해 나뭇가지를 물어 나릅니다.
철학 요, 그러고 보니 철학이 봄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봄이 철학을 담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발길을 옮깁니다. 삶 자체가 철학이라고 여기며 잘 이해되지 않는 책을 펼칩니다. 삶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처럼 천천히 알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