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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1. 2024

2021 그날

39. 호드기를 불까요? 20210419

책을 읽다가 잠시 텔레비전 켰습니다. 시골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을 닮았습니다. 뒷산과 앞 개울 사이에 몇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 아늑해 보입니다. 오늘따라 햇살이 마을을 감쌌습니다. 그야말로 화창한 날씨입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순간입니다. 한 노인이 논두렁에 기대어 시조창을 읊조리고 한 젊은이는 호드기를 불고 있습니다. 서로 잘 어울리는 화음은 아닙니다. 창을 하는 사람이나 호드기를 불고 있는 사람이나 다 같이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부를 것이지.’


나는 시조창에는 자신이 없지만 그 노인의 가락에 맞추어 호드기를 불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몇 번의 연습이 필요하겠지요.


호드기는 피리를 이르는 말입니다. 내가 어릴 적 부르는 이름은 호드기였습니다. 다른 고장에서 시집온 아주머니는 횟대기라고 했습니다. 나는 피리를 잘 불지만 만들기도 자신이 있습니다. 어른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급자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익숙해지기까지는 뜻하지 않게 예리한 낫에 손도 몇 번 베었습니다.


늦은 봄 이맘때입니다.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할 때면 개울가를 향해 달려갑니다. 버들강아지가 활짝 핀 가지를 자릅니다. 그 나무껍질을 조심스레 비틀어 봅니다. 나무와 껍질이 분리되는 작은 소리가 들립니다. 칼로 껍질을 손가락 길이만큼 도려내어 껍질을 빼냅니다. 둥그런 관이 만들어졌습니다. 한쪽 끝을 칼로 긁어내어 혀(舌)를 만들고 그것을 입술로 물어 소리를 내어봅니다. 양손을 입에 대고 그것을 움직여 음의 높이나 강약을 조절해 봅니다.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소리를 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줄 때는 아기였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실력이 늘었습니다. 어른이나 형들을 따라 불다 보니 제법 가락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나 동네에 호드기 소리의 시작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아이들이 입에 호드기를 불었습니다. 아침부터 마을이 시끄럽습니다. 소리가 아이들보다 앞서 학교로 향합니다. 드디어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의 생김새만큼이나 구구 각색의 소리가 모였습니다.


“내일부터는 학교에서 피리를 불지 마세요.”


운동장 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이 공부에 지장이 있다며 한 말씀하셨습니다. 대신 담임선생님은 음악 시간에 피리 불기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내일부터는 학교에서 피리를 불 수 없으니 섭섭하겠지. 오늘 이 시간만큼은 마음껏 불어라.”


우리들은 선생님을 따라 뒷산 정상에서 섰습니다. 피리 소리가 하늘에 닿을 것 같습니다. 운동장이 작아졌습니다. 우리 반 친구들이 누우면 꼭 찰 것만 같습니다. 피리 소리에 놀랐나 봅니다. 학교가 자동차만큼 작게 보입니다.


시골에서는 자연물들이 장난감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호드기의 재료는 다양합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버드나무가 있고, 보릿대나 밀대도 있습니다. 질이 떨어지기는 해도 민들레 줄기, 호박 줄기, 머위 줄기도 쓸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나뭇잎이 피리의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나요, 아직도 호드기를 잘 불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지냈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남보다 호드기에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주야장장(晝夜長長) 불어대는 내 피리 소리에 식구는 물론 동네 사람들도 짜증을 냈으니 말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봄에 시작된 피리 소리는 가을이 되어야 끝을 냅니다. 내 피리 소리는 처량 맞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겨울은요. 퉁소입니다. 어른들의 퉁소를 하나 얻어 흉내를 내어봅니다. 바람 소리만 흘리던 입이 어느 순간 달랐습니다.


도시에 살면서도 가끔 호드기를 불었습니다.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띄었습니다. 모든 관악기가 그러하듯 길이나 굵기에 따라 음색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피리의 종류에 견주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음색의 다름에 호드기를 제각각 많이 만들어 보았습니다.


나는 호루라기도 잘 붑니다. 군 생활을 할 때나 체육 시간에는 구령에 맞게 불었습니다. 제식훈련을 떠올리면 됩니다. 동료들이 내 구령을 익히고 따라 하기도 했습니다.


아차, 잊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만 떠올렸지 올해는 피리를 불지 않았습니다. 창밖이 어두워집니다. 서재의 불을 켭니다. 연필 깎는 칼을 찾아야겠습니다. 내일은 호숫가로 가야 합니다. 추억을 하나 되살려야 합니다. 가지 하나를 잘라 멋지게 불어보렵니다. 제 실력이 살아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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