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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1. 2024

2021 그날

40. 노년의 꿈은 오늘이다. 20210422

‘뭐. 있어. 산다는 게 그런 거지.’


꿈의 길이가 줄었나 봅니다. 아니 끝이 사라졌나 봅니다. 그 많던 꿈이, 그 위대한 꿈이 어느새 마음에서 멀어졌습니다. 공원 한 귀퉁이에서, 길가의 나무 밑에서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한없이 응시하던 한 노인이 있습니다. 잠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봅니다. 내 눈길이 따라갔으나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허공입니다.


유년기, 아니면 소년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 노인은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지 모릅니다. 잠시 토끼 구름이 뛰어오고 꽃구름도 다가옵니다. 새털구름이 날아옵니다.


코로나는 모르는 사람과의 모임 자체를 단절시켰지만, 대화마저 끊어버렸습니다. 거리 두기는 고의든 아니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도 멀어지게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코로나의 장벽은 무섭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있지만 불러주는 친구는 없습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까 했지만, 염려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집에 웅크리고 있기가 싫습니다. 혼자라도 나가야 합니다. 굳어지는 몸뚱이, 무뎌지는 생각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산으로 계곡으로 공원으로 쏘다녀야 합니다. 들판도 좋습니다. 걸으면 어떻습니까. 자전거라면 좀 멀리 갈 수 있을 겁니다. 뭐 걱정할 것 없습니다. 전철이 있고 버스도 있습니다. 그냥 움직여 보는 겁니다. 꽃이 피어나고 새싹들이 돋아나고 자라는 소리가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홀립니다. 새들의 지저귐에 귀도 호사입니다.


코로나는 나의 삶을 일정 부분 바꾸어 놓았습니다. 꼭 사람만 만나야 합니까. 나쁜 게 있으면 좋은 것도 있게 마련입니다. 코로나는 나에게 의미 있는 시공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오롯이 내 마음을 한곳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글을 쓸 수 있는 장소의 제공입니다. 여유라도 부려볼까요. 그림도 음악도 관심을 두게 했습니다. 빈방이 어느새 서재로 바뀌었습니다. 컴퓨터가 있고 붓과 펜이 있고 악보도 있습니다. 배움터를 찾아가지 않아도 배울 곳이 많습니다. 집 안에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몇 가지 조작만으로도 학습이며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비대면이라서 다소 제약은 있지만 찾아가는 시간을 생각해 본다면  불편함을 잠시 잊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서재로 출근합니다. 단정한 옷차림입니다. 가끔은 모자도 씁니다. 거울을 봅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놀아야 합니다. 책 속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림도 그리고 음악 감상을 하며 내 안에 모르는 나를 끄집어냅니다.


오늘도 그 노인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옆으로 다가가 슬그머니 앉았습니다.


“호드기 불기에 좋은 때인데…….”


혼자 말을 하며 호숫가의 버드나무를 가리켰습니다. 그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호드기,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군요.”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가까이 있는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도서관 카페에는 각종 신문이 있습니다. 매일 소식을 가득 안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문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도 도서 대출증을 만들었습니다. 책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이 있게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나는 내일이 나에게 선물을 주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오로지 오늘입니다. 내일이 온다면 오늘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나의 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마음에 담아둔 것들을 조용히 실천해 보는 겁니다. 꿈 요, 뭐 있습니까. 제일 먼저 건강입니다. 사는 날까지 챙겨야 합니다. 다음은요, 시간을 잘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책과의 대화, 그림 속의 사색, 음악과의 여행입니다.


쉿, 출근 시간입니다. 노트북을 켜야겠습니다. 곧 비대면 수업이 곧 시작됩니다. 그림책 이야기 시간입니다. 아기 엄마들이 많습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고 어제 산 모자를 눌러썼습니다. 아니 선글라스까지 걸쳤습니다. 같은 장소는 아니어도 각자 인사를 나눕니다. 서로 안부를 묻습니다. 좀 남세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어울려 보는 겁니다. 나, 청일점입니다. 딸이나 손녀 같은 사람들과 수다를 좀 떨어야겠습니다. 그들을 보니 애기똥풀이 떠오릅니다. 똥 중에 예쁜 똥이라면 아가의 똥이겠지요.


‘야, 너희들을 보고 있노라니 구린내가 난다. 좋은 때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을 좇아가야 하다 보니 체면일랑은 바닥에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냥 가기로 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립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 이 시간에는 essay 수업이 있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일의 꿈은 바로 오늘과 친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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