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 첫날의 의미 20230101

by 지금은

깨어보니 8시가 되었습니다. 늦잠을 잤습니다. 예년과는 달리 새해 첫날인데도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마지막 날의 의미도 잊었습니다. 해마다 해가 바뀔 때면 새 세상이라도 펼쳐지는 양 엄숙한 마음에 다양한 생각을 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해를 잘 보낼 생각에 수학 셈을 하듯 머리를 굴렸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가만히 있어도, 아무 생각이 없어도 세월은 물 흐르듯이 지나갑니다. 2022년을 지내고 보니 이룬 것도 있지만 놓친 것도 있습니다. 책을 부지런히 읽고 글을 열심히 썼습니다. 재주 없는 그림도 낙서하듯 그렸습니다. 혼자 있어도 심심하다는 생각을 해볼 때는 몇 번 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바빴습니다.


잃은 게 있습니다. 남과의 교감입니다. 만남이 적었습니다. 내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아내를 빼고는 누구와도 서먹한 감정입니다. 친인척 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득이한 일로 만나게 되면 인사말 외에는 더할 것이 없습니다. 내 부족함을 알기에 고쳐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생각으로 끝났습니다. 얼굴을 마주했을 때뿐 곧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남과의 대면을 싫어하는 내 성격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나쁜 것임을 알기에, 이는 마음의 병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첫날은 평소와는 달리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 해의 삶을 반성하고 다음 해의 계획과 포부를 마음속에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더해가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나는 보신각 타종을 보고 듣기 위해 밤잠을 늦춘 경우가 많습니다. 제야의 타종입니다. 직접 참관하지 않았지만,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생중계를 시청하면서 국민들과 한해의 반성과 다음 해의 포부에 대해 함께 했습니다.


올해의 내 신년 계획은 거창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70대 초기와 같이 건강을 염려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마음을 두기로 했습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큰 목표보다는 작은 실천입니다. 작은 주머니를 만들었습니다. 매일 5천 보 이상 걷기, 아령 하루에 세 번 하기, 그림책 한 권 만들기, 도서관, 학습관의 프로그램 참여하기, 매일 글 한 편 쓰기, 낙서 그림 그리기입니다. 1년 1회의 해외여행은 뒤로 미뤘습니다. 코로나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지난해에는 그림책 한 권, 글쓰기 모임에서 자신의 수필을 세 꼭지씩 모아 책을 발행했습니다. 올해는 가능하다면 온전한 내 글의 책을 내고 싶습니다. 아울러 다가오는 신춘문예에 원고를 내볼 생각입니다. 지지난해에는 글을 투고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반가운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제야의 타종 소식이 궁금해서 뉴스를 보았습니다. 종을 울리는 의미는 하늘의 태평과 무병장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말 중에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라는 말이 빠지지 않습니다. 지난해 역시 모두가 어려웠던 시기임은 분명합니다. 특히 대외적으로 코로나가 창궐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세계의 민심이 요동쳤습니다. 한마디로 질병과 고물가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이에 덧붙여 우리나라는 남북 대치 상황이 점점 나쁜 길로 가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치솟던 주택 가격은 금리의 가파른 상승과 함께 추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역전세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되자 세입자에게 이자만큼의 월세를 주는 일도 있습니다. 과거의 IMF를 연상시킵니다. 빚을 내어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대단합니다.


생활 물가가 상상외로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아내와 함께 식료품을 사러 시장에 들르면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또 올랐네. 같은 값에 다섯 개 샀는데 네 개밖에 못 사겠어요.”


“어쩌지?”


“크기도 작아졌어요.”


정부에서는 연초부터 공공요금을 올릴 것이라고 미리 귀띔했습니다. 한전, 지하철공사를 비롯한 기관에는 수조에서 수십조에 이르는 부채를 안고 있습니다. 요금을 올리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힘이 없다고 합니다. 전기, 가스, 교통비 등입니다.


IMF 때의 생각이 납니다. 모두 어려운 시기였지만 나의 경우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주택의 부채를 갚기 위해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15퍼센트가 넘는 은행 금리는 박봉에 시달리는 나에게는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원금을 상환하기는커녕 이자를 갚기에도 힘들었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 외식을 금하고 버스나 전철 대신 자전거로 출퇴근했습니다.


“IMF 때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공장을 운영하는 사촌 동생이 말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으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는 물론 나라의 상황도 어수선하니 어떤 조언도 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헤쳐 나왔으니, 이번의 어려움도 잘 이겨내리라 마음속으로 응원합니다. 우리 국민은 시련을 극복하는 지혜와 도전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나 또한 앞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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