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어디까지 왔니!
서낭당을 지났을 때입니다.
“우리 어디까지 왔니, 할까?”
호야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형은 엉덩이를 내밀었습니다. 등에 업혔습니다. 호야는 두 손으로 형의 눈을 살짝 가립니다.
“어디까지 왔니, 아직 아직 멀었다. 어디까지 왔니, 너럭바위까지 왔다.”
“형, 그만 내리자.”
“집까지는 더 가야 하는데.”
“힘들까 봐 그렇지.”
호야와 형은 석산 큰 할아버지 댁에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입니다. 할아버지 댁에서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는데 어느새 저녁노을이 머리 위를 수놓았습니다.
“어디까지 왔니, 개울 건너왔다.”
“형, 그만 내릴게.”
“다 온 걸 뭘.”
형은 등에서 미끄러지려는 호야를 추켜 업었습니다. 등이 축축합니다.
“어디까지 왔니, 동식이네 집까지 왔다.”
“어디까지 왔니, 사립문 밖에 있다. 어디까지 왔니, 다 왔다!”
형은 사립문을 들어서자, 호야를 내려놓았습니다.
호야 동네 아이들은 달이 밝은 밤이면 상열네 바깥마당에 모여 놉니다. 낮에 놀고도 모자란 듯합니다. 그림자밟기, 강강술래, 무궁화가 피었습니다, 수건 돌리기, 진 뺏기…….
달이 뒷동산에 걸릴 때쯤이 되어서야 놀이가 끝납니다. 아쉬운 듯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차놀이가 이어집니다. 동네의 맨 윗집에 사는 홍준이가 기차의 꼬리가 됐습니다. 동구 밖 가까이에 사는 철구형이 머리입니다. 모두 앞사람의 옆구리를 잡았습니다. 기차가 이어졌습니다. 철구형이 소리칩니다.
“준비됐나요.”
“준비됐어요.”
기차가 홍준이네 집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어디까지 왔니, 상철이네 집까지 왔다.”
“어디까지 왔니, 춘식이네 집까지 왔다.”
맨 윗집 사립문 앞에서 홍준을 내려 주었습니다.
다음으로 순구를 내려줄 차례입니다. 순구가 내리려는 찰나 집안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순구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입니다.
“어디까지 왔니, 쉿.”
순구 할아버지는 무섭습니다. 착한 사람이 화나면 무섭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평소에는 늘 웃음을 보이는 친절한 할아버지가 한 달 전에는 동네가 떠나가도록 큰소리를 치셨습니다.
“낮에 실컷 놀고도 모자라서 밤새도록 시끄럽게 군단 말이냐.”
한밤중 큰 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깨어나 한두 사람씩 사립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할아버지의 위엄에 놀랐습니다. 부모들은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기차는 제 갈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꾸짖다 각자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한밤중에 동네가 시끄러웠던 경우는 순이네 집에 불이 났을 때를 빼고는 처음입니다. 그렇다고 기차가 늘 정지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놀이는 계속되었고 늦은 기차는 출발했습니다. 대장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순구네 집 근처에 갔을 때는 ‘소곤소곤’ 알았지.”
달님의 입이 구름에 살짝 가려졌습니다. 마지막 기차는 어김없이 출발했고 아이들을 목적지에 닿았습니다.
호야가 사립문을 들어섰습니다. 외양간에 누워있는 소의 귀가 흔들렸습니다. 소의 목에 달린 워낭이 딸랑딸랑 소리를 냅니다. 호야의 눈이 소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쉿’ 호야는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발길을 옮기려는 순간 몸이 움찔했습니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타리를 타고 우리 집으로 넘어왔습니다.
‘땅땅’ 순구 할아버지가 놋재떨이에 담뱃대를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호야는 재빨리 방 안으로 들어가 이불속을 파고들었습니다. 달은 구름 속에 숨었습니다.
‘어디까지 왔니,’
할아버지의 책 읽는 소리가 호야를 따라오다가 방문 앞에 멈춘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