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한잠을 잤습니다. 예방주사의 뒤끝이 남아있는지 아직도 몸이 찌뿌듯합니다. 아무래도 방안에만 있다가는 회복이 늦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럴 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최선임을 알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가볍게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문밖으로 나왔지만,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패잔병처럼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며 걸었습니다. 축 늘어진 팔이 몸에 매달려 억지로 끌려가는 기분입니다. 건널목에 이르러 발을 옮기려는 순간 초록불이 빨간 불로 바뀌었습니다. 찰나입니다. 다음 초록불을 기다리는 동안 습관대로 발목을 몇 번 돌리고 팔도 좌우로 뒤틀었습니다. 허리도 돌립니다.
목운동하려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이 정지하고 말았습니다.
‘와아!’
소리 없는 감탄사에 입이 벌어졌습니다. 여름의 시작인데 벌써 가을빛…… 이 하늘에 넓고 넓은 구멍이 뚫리고 새하얀 구름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조금 전과 달리 나는 공원의 산책로를 걷는 내내 발걸음을 내버려 둔 채 눈이 하늘에 머물렀습니다.
원래 내가 공원으로 나갈 때는 연못의 풍경을 찍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지금은 공원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완전 하늘에 홀렸기 때문입니다. 나무 밑을 걷는 동안에도 나뭇잎 사이로 나타나는 하늘을 보기에 바빴습니다. 잠시 생각을 바꾸어야겠습니다. 연못의 풍경을 모아 그림책을 만들어 볼 심산이었는데 기분상 뒤로 미루어야 합니다.
지금은 하늘에 취한 게 틀림없습니다. 숲을 벗어나자,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하늘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파란 하늘은 구름을 마음대로 흩어놓은 채 여유롭게 오후를 즐기고 있습니다.
‘내 솜씨가 어때?’
칭찬을 기다리는 듯 여유 만만합니다.
‘잘한 거야, 잘한 거야.’
나는 스마트폰을 들었지만 잠시 뜸을 들여야만 했습니다. 어느 곳을 먼저 담아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한 장에 하늘을 모두 담기에는 화면이 부족합니다. 생각을 뒤로 미루어야 합니다. 뜸을 들이다가는 마음에 맞는 모습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하늘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야 합니다. 대강 구도를 잡아 찰칵찰칵 눌렀습니다. 발걸음이 바빠집니다. 연못가에서, 도서관 방향에서, 학교 근처에서, 언덕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집에 와서 화면을 저장하고 보니 삼십여 장을 넘겼습니다. 떨림이 있거나 구성이 맘에 들지 않은 것들을 틈틈이 지운 것을 합치면 백여 장은 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의 소망이 일부 풀렸습니다.
어느 날 봄 하늘이 아름답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으로만 그쳤습니다. 원하는 하늘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풍경을 종종 찍으면서도 아름다운 하늘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일 년 동안의 하늘을 모아 보고 싶은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하늘만을 생각했는데 오늘은 마음이 좀 달라졌습니다.
‘아름다운 하늘만 하늘이 아니거든.’
무거운 하늘의 장면도 모아야겠습니다. 아름다운 하늘만의 이야기로는 풍족한 세계를 펼칠 수 없습니다.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눈이 오는 날, 서리가 내리는 날, 안개가 드리운 날 등, 변화하는 수많은 하늘을 그려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희로애락, 애오욕’ 뭐 이런 것들이 마음을 건드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늘이라고 해서 인간의 마음과 별다를 일이 있겠습니까.
인간이 자서전을 쓰듯, 하늘의 자서전은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하늘이 자서전을 쓰기로 한다면 인간의 자서전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수명이란 영원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그동안의 사연을 늘어놓는다면 그 내용은 무궁무진합니다.
매일매일 자기 모습을 표현하고 하루 중에도 셀 수 없이 낯선 많은 것들을 하늘에 늘어놓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인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늘은 늘 그렇게 변화를 모색합니다.
오늘은 하늘이 펼쳐놓은 구름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어느 날은 하늘이 데려온 별들이 마음에 들어 모습을 헤아려야 했습니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새벽이 다가올 때까지 마지막 별과 안녕 인사를 했던 일도 있습니다. 이뿐이겠습니까.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날에는 하늘은 달의 희미한 눈동자를 빌려 나를 내려다봅니다. 뭐 염려할 것은 없습니다. 눈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소통이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