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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47. 실패한 여행도 값지다. 20210718

by 지금은 Dec 02. 2024

실패한 여행이란 없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상상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것뿐입니다. 내가 플리츠 비치에 갔을 때입니다. 전날 비가 쉴 새 없이 내렸습니다. 우리의 여행을 안내하는 사람이 밤새워 걱정했다고 합니다.


‘멋진 폭포와 선상 유람을 하지 못하면 실망이 클 텐데.’


걱정을 많이 한 이유인지 기도 덕분인지 아침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맑았습니다. 우리가 공원에 입장하기 위해 매표소에 제일 먼저 도착했는데 개장 시간보다 한 시간 가까이 지체되었습니다. 공원의 안전을 점검하기 위해서랍니다. 불어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입장을 했습니다. 폭우로 인해 징검다리가 겨우 상판을 드러낸 정도입니다. 안내인은 조심에 조심을 당부했습니다. 정해진 방향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폭포의 물줄기가 세찬 소리를 앞세우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흩날리는 물방울을 피하고자 우리는 비옷을 하나씩 걸쳤습니다. 나는 그곳을 벗어날 때까지 고양이 발걸음을 흉내 내야 했습니다. 멋진 풍경들을 조심조심 마음속에 담았습니다. 아직도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생생합니다.


다음 여정을 위해 출발했습니다. 산 고개를 넘어 유람선을 타러 갑니다. 언덕에 올라서자, 인원 점검이 있었습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자, 그의 아내가 전화했지만 불통입니다. 여자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보입니다. 결국 시간이 지체되어 배 타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경관에 취해 우리 일행과 떨어져 다른 팀에 섞였던 모양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배 타는 곳으로 향하다 일행이 아님을 알고 되돌아왔지만 말하지 않는 비난의 화살을 맞았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내 말대로 그냥 선착장으로 향했으면 됐을걸.”


약속한 배는 이미 떠났는데 뭘 어쩌겠습니까.


대신 숙소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자유시간입니다. 숙소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중 개울가의 집을 지나칠 때입니다. 이 층집 베란다에서 어떤 여인이 우리 부부를 향해 손짓합니다. 우리가 멈칫 발걸음을 멈추자, 그녀는 재빨리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미소를 짓고는 이어 담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여기.”


그녀의 자두나무에서 열매를 따 비닐봉지에 담아 우리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우리의 여행을 도와준 현지 안내인입니다.


“고맙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영어단어 몇 마디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잘 익은 자두만큼이나 평소에 회화를 익혀둘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몇 번 숙였다. 손짓과 발짓을 하며 토막말을 이어갔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불쑥 우리말이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그는 잘 알아들었습니다.


자두 봉지를 들고 숙소로 돌아와 일행 몇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갈걸.”


“그러게요.”


“선생님은 이 나라에 사셨어요. 어떻게 이 나라 말을 잘해요.”


빙그레 웃었습니다. 영어 단어 몇 마디에 만국 공통어인 손짓, 발짓, 몸짓에 우리말까지 섞었을 뿐입니다. 궁하면 다 통하게 마련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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