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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48. 장마 끝. 20210718

by 지금은 Dec 02. 2024

빌린 책을 돌려주려고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호숫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매미 소리가 들립니다. 마른장마라고 해도 며칠간 하늘이 꾸물댔으니 여름인 걸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초복이 지난 게 언제인데, 삼계탕도 먹었잖아. 여름인 거야.’


제법 햇살이 따갑기까지 합니다. 남쪽은 며칠 전부터 불볕더위라는데 아직은 견딜만합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갓난아이의 목청처럼 귀를 간질입니다. 


이십여 년 전 어느 해 무의도의 매미 울음은 대단했습니다. 매미는 더위에 약이 올랐나 봅니다. 석고상처럼 움직임도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는 울음은 바다도 어쩌지 못했습니다. 구름을 몰고 오고 비를 쏟아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울음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 매미의 성질이 있는 대로 폭발했는지도 모릅니다. 땅속에 오랫동안 갇혀 지내다 세상 구경을 하는 데 더위까지 마음을 거슬렸나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등불이 밝혀있던 곳은 매미들의 무덤입니다. 아랫집 노인이 집 마당과 주변을 쓸다 말고 말했다.


“생전에 이런 일은 처음인 거야.”


삼태기 가득 모인 사체를 두엄 가에 쏟아부으며 하는 말입니다.


“여기도 그래요.”


나는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곳만은 아닙니다. 서울에서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탔는데 가로수의 매미들도 극성스럽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매미의 울음은 구월의 날짜를 넘기듯 서서히 잦아들었습니다.


매미에게서 마음을 돌렸을 때입니다. 몇 걸음을 옮겼을 때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일곱 명의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몇 그루의 소나무가 그들을 안고 있습니다. 놀러 온 사람들이겠지 했습니다. 움직임이 없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들의 행동이 눈에 뜨입니다.


‘화가? 아니 아마추어.’


모두 간이 의자에 몸을 실은 채 붓놀림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주위에는 화구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습니다. 그들의 등 뒤로 눈치채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혹시 방해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호수를 배경으로 풍경을 그리는 중입니다. 우리 아파트의 높은 건물도 들어있습니다. 저 중간쯤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있던 자리입니다. 하나같이 풍경은 달라도 가까이 있는 호수의 물줄기를 뿜어대는 시원한 분수는 없습니다. 약속이라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의 화폭에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름입니다. 흐린 연필 자국이 붓의 도움을 기다리는 듯 움직임이 없습니다. 눈이 저절로 구름을 밀어 올렸습니다. 구도가 좋습니다.


‘와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사를 자아냈습니다. 화폭에 눈을 떼지 못하던 그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나는 순간 입을 가렸습니다. 필요 없는 짓입니다. 이미 마스크가 준비했는데 잊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잠시 그들의 집중을 흩어 놓기는 했지만,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들의 그림에 환호를 보냈으리라는 흐뭇한 감정을 알아차리리라고 믿습니다. 그림이 잘 완성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들 앞으로 구름이 파란 화폭을 멋지게 채웠습니다. 여백의 미도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저 하늘을 한 장에 담기는 무리입니다. 조각조각 맘에 드는 부분을 잘라 담아야 합니다. 올해의 계획 중 하나는 하늘을 사진에 담아보는 것입니다. 중간에 수정된 계획이기는 해도 생각을 잘했습니다.


한 달 전입니다. 인사동의 한 화랑에 들렸는데 하늘 화가의 작품에 매료되었습니다. 하늘의 멋진 모습을 그림 대신 사진에 담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림 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이 늦었습니다. 누구와의 약속은 아니지만 나와의 약속을 놓쳤습니다.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호수로 발길을 돌려보니 하늘이 어느새 물속에 놀고 있습니다. 구름이 물결에 일렁입니다. 분수가 구름을 빨아올려 하늘로 되돌립니다. 나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꺼냅니다.


매미 한 마리가 외롭게 울음을 토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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