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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65. 나무가 뭐 죄가 있다고. 20210729

by 지금은 Dec 03. 2024

“손자를 위해 나무를 심어야지.”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걸요.”


삼촌의 대답에 미리 심어도 좋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이야기하셨습니다. 옛 어른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소나무나 잣나무를, 계집아이가 태어나면 참중나무나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우리 집도 그렇습니다. 아버지나 삼촌이 태어났을 때는 무슨 나무를 심었는지 이야기가 없어 모르겠으나 고모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가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나무는 고모가 시집을 간 후에도 오랫동안 집 울타리에서 몸집을 불려 갔습니다.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집안 식구들의 쉼터가 되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나뭇잎은 머리를 가리는 장난감 우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고모의 나무가 있었지만 내 나무와 어른들의 나무는 없습니다. 고모는 외동딸이어서 특별히 생각했을까요. 대신 누구의 나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울안에는 감나무가 있고 산울타리에는 밤나무가 있었습니다. 아랫집과 경계를 이룬 울타리에는 가시 많은 탱자나무가 차지했습니다.


오동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잘 잘 자랍니다. 가볍고 질깁니다.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면 장롱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됩니다. 그러고 보면 시집을 가서 쓰일 살림살이 중의 하나입니다. 장롱은 중요한 혼수품입니다. 이곳에는 이불, 옷가지 등을 보관합니다. 장례 시 관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나무는 예로부터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삶의 터전이 되는 집, 가구를 비롯하여 땔감으로 사용됐습니다. 먹이나 약재가 되는 각종 열매를 줍니다. 새들을 비롯한 각종 동물의 보금자리가 되고 사람들에게는 휴식처를 제공합니다. 가뭄과 홍수를 조절합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자식이 태어났을 때 기념으로 자식 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대신 행사 때 기념식수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대개는 지체 높은 사람들입니다.


나는 나무를 심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환영합니다. 단지 일부의 사람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나무를 심는 것은 좋은데 꼭 이름을 남겨야 하는지 의문을 품습니다. 자신이 심은 나무 앞에 화강암이나 대리석에 자신의 이름과 직위를 남깁니다. 대통령이면 뭐고 시장 구청장이면 뭡니까. 기념하고 싶다면 심어놓고 혼자 생각할 것이지. 왠지 조선시대의 송덕비가 연상됩니다. 그중에도 자화자찬으로 만든 비석입니다. 내가 한 짓거리는 아니어도 낯간지러운 생각이 듭니다.


나무 심기로 말하면 나도 한 축을 담당했다고 자부합니다. 내 고향마을이 푸르게 된 이유 중에는 내 손길도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식목일이 돌아올 즈음이면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매일 오후에는 ‘사방공사’라는 이름 아래 묘목을 심었습니다. 쉬는 날이면 동네 어른들을 따라 일손을 도왔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남산에 올라 송충이를 잡았습니다.


황폐한 산림이 회복되고 나라의 경제 발전만큼이나 산과 계곡이 푸름을 유지하는 것은 온 국민의 노력입니다.


아침부터 찌는 더위에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거리 두기 기간임에도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책을 빌려 밖으로 나왔습니다.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가까운 숲만큼 좋은 곳도 없습니다.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늘이 좋은 나무 밑을 찾았습니다. 새소리, 매미 소리를 귀에 달았습니다. 백색소음입니다. ‘동화가 일러주는 내 마음의 비밀 언어’ 책의 내용과 어울립니다. 점심때가 지나도록 주인공들과 놀았습니다.


“더워도 끼니는 때워야지 않겠어요.”


아내의 문자에 놀이를 멈추었습니다.


나를 위해 심은 나무는 없으니 죽어도 내 나무관은 없습니다. 지위는 뭐고 명예는 뭐라서 죽어가면서도 꼭 티를 내야 할까요. 그늘을 만들어 준 나무 둥치를 쓰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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