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망쳐봐야 20210804
오늘은 미술 수업이 있었습니다. 먹물을 이용한 선 그리기 연습입니다. 화선지에 붓으로 사물의 윤곽을 그렸습니다. 강사는 사전에 붓의 사용 방법에 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화선지는 예민합니다. 물을 잘 흡수하니 도화지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모두 집중해서 선을 긋습니다. 숨소리조차 멈춘 듯 조용합니다.
우리 모임의 수강생들은 편차가 심합니다. 수묵화나 서예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완전 초보자도 있습니다. 나는 초보자에 속합니다. 강사는 이런 분위기를 염려합니다. 잘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가고 싶고 처음인 사람은 천천히 가기를 원합니다. 때때로 강사는 개개인의 편차를 환기하며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답답하지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한 수강생이 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세심한 편입니다. 남들은 세 장 이상이나 연습을 했는데 한 장이 마무리 단계입니다.
“번지지 않게 잘하셨습니다.”
강사는 덧붙였다. 깔끔하지만 선이 가늘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괜찮은데 색을 입히고 완성하면 힘이 없어 보일 거라고 했습니다.
“한 장은 버린다 생각하고 선의 굵기를 다르게 해 보세요. 먹물의 번짐을 알아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되며 선이나 농담을 조절할 방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수긍이 갑니다. 우리는 실패하면서 배웁니다.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알게 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면 이면에는 실패가 숨어있습니다. 실패 없는 성공이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그랬고 라이트 형제도 그랬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음식점의 일급 주방장은 실수로 인해 수많은 식재료를 버렸습니다. 운동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능 습득을 위해 수많은 성공과 실수를 거듭했습니다. 그들은 실수를 실패로 생각하지 않고 배움으로 여겼습니다. 하나의 완성을 위해서는 무한 반복이 필요합니다.
내 종이를 살펴보았습니다. 지적받은 수강생 것과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나 역시 번짐은 없었지만, 그분 것에 비해 선이 더 가냘픕니다. 우리는 강사의 지도를 받지만, 은연중에 동료에게서도 배움을 얻습니다. 각자의 작품의 구성과 기법의 차이를 발견합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동료들의 주위를 천천히 돌았습니다. 발걸음이 멈추고 눈이 집중되는 곳이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일부러 자리에 늦게 돌아갔습니다. 내가 눈여겨보았던 사람의 행동 장면을 관찰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이지 않게 뒤편에 섰습니다. 손놀림을 봅니다. 그는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합니다. 거침없이 붓을 놀립니다. 시간이 지체되다 보니 강사의 눈치가 보입니다.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번에는 과감하게 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좋아요, 힘이 있어 보이는군요. 번지지 않게 하려면 붓을 배지에 한 번 문지르고…….”
강사는 요령을 자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반복 연습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무한 반복을 권합니다.
‘한술 밥이 배부르랴.’
다시 새 화선지를 펼칩니다. 맘먹고 망쳐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