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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73. 더운 날에 20210803

by 지금은 Dec 05. 2024

어느새 거실 온도가 삼십삼 도를 가리킵니다. 슬슬 머리와 목덜미 등이 뜨겁습니다. 엉덩이가 축축합니다. 에어컨을 켜려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습니다. 관리사무실에 물어봤습니다. 오래된 시설이라 부속품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나는 바람을 좋아하지 않으니 견딜 만하지만, 아이가 문제입니다. 퇴근하면 더위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선풍기를 내내 돌리지만 성에 차지 않는 눈치입니다.


“에어컨을 고쳐야 하는데 부속품이 없다고 하네.”


한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미리 선수를 쳤습니다.


점점 몸에 열기가 느껴집니다. 슬그머니 욕실로 향했습니다. 더위가 달려들어 봤자 얼마나 갈까 하는 생각입니다. 더워 봤자 삼 년 전 같지는 않겠다고 하고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그때는 우리 집안의 온도가 삼십오 도를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좀 견디다 보면 더위는 제물에 지쳐 사그라질 것입니다. 샤워 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이 미지근하게 느껴집니다. 겨울철에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머리에 물을 뒤집어쓰는 동안 어릴 적 개울이 떠오릅니다. 방학이 되면 우리는 점심도 거른 채 온종일 물에서 놀다시피 했습니다. 해거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영법도 모르면서 헤엄을 쳤습니다. 우리는 이런 영법을 개헤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할 것은 다 했습니다. 누가 빨리 가나, 누가 멀리 가나, 머리를 물속에 박고 누가 숨을 오래 참나. 누가 하늘을 보고 누워 오래 있나. 누가 다이빙을 멋지게 하나, 더운 날에도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물속에서 놀았습니다. 몸에 소름이 닥지닥지 솟아오르면 갯바위에 올라갔습니다. 태양을 바라보며 제자리 뛰기를 했습니다. 두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두드렸습니다. 아차, 빼먹은 것도 있습니다. 물속에서 물구나무서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여자애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 남자들끼리만 놀고 있는데 어느새 여자애들이 왔습니다. 이런 줄도 모르고 물속에서 물구나무서기 시합했는데 그만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누구누구는 뭐가 나온 것도 모르고 물구나무섰대요.”


지나고 보니 별것도 아닌데 창피함으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화가 나서 쫓아가면 붙들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애들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반복합니다. 나는 속이 상할 대로 상해서 앙갚음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음 날 그 애들이 미역을 감으러 가자, 몰래 뒤를 밟았습니다. 살금살금 다가갔지만 허사입니다. 누군가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모두 물속에서 놀고 있는데 한 명이 망을 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복수를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잠시 후 보초가 바뀌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잠시 되돌아보니 망을 보던 자리에 아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보다는 눈치가 빠른 아이들입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도 냇가에 갈 때가 있었습니다. 달이 뜨고 별이 총총한 날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열대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밤이 되어도 후텁지근합니다. 계곡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보다 더 많은 반딧불이 공간을 채웠습니다. 나는 이곳이 학교 앞 깊은 개울보다 더 친근합니다. 물은 얕아도 내가 매일 오르내리는 곳입니다. 오후가 되면 소를 몰고 개울에 들어섭니다. 고삐를 목에 사려줍니다. 나와 소는 지금부터 자유입니다. 소는 소대로 풀을 뜯고 나는 나대로 딸기를 따 먹거나 개울의 돌을 들치며 가재를 잡습니다. 다슬기를 건져 올릴 때도 있습니다. 나는 소를 좋아했습니다. 칭찬을 자주 듣기 때문입니다. 어스름해지면 배부른 소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스스로 외양간으로 직행합니다. 마음껏 풀을 뜯었기 때문입니다. 소는 만족한 지 삼촌이 주는 풀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되새김질합니다. 어머니가 소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살이 통통하게 올랐어요.”


어느 날 장에 다녀오신 할머니가 치마 속주머니에서 뭔가 꺼내어 슬그머니 내 손에 쥐셨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켰다. 혼자 먹으라는 신호다. 캐러멜입니다. 가끔 어머니가 아궁이의 불에 풀빵을 구워 주기도 했습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지금은 그 시절의 모습이 아닙니다. 작년에 찾아간 그 고향에는 그 친구들이 보이지 않고 우리를 대신할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벌써 칠십여 년이 지났으니 그 개울도 그 모습이 아닙니다. 개천은 온갖 잡풀로 뒤덮였습니다. 속이 들여다보이던 맑은 바닥은 사라졌습니다. 물의 수량도 줄어 발을 담글 정도의 깊이로 토사가 쌓였습니다. 흔적, 흔적은 있습니다. 내 희미한 기억처럼 겨우 흔적만 보일 뿐입니다.


욕조에서 찰방찰방 물장구를 칩니다. 허공을 향해 팔을 저어봅니다. 그래도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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