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내 책이 나오기까지 20210806
오늘 드디어 그림책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 한 권밖에 없는 책입니다.
「내 이름은 민들레」
엄밀히 말하면 두 권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한 권은 도서관 보관용, 한 권은 내 것입니다. 글, 그림은 지금은(지금은) 내 이름입니다. 내용을 간단히 말해봅니다. 횡단보도 경계석에 몸을 겨우 의지하고 피어난 민들레가 한 할머니의 눈에 뜨였습니다. 불쌍히 여긴 할머니가 민들레를 공원의 숲 속에 옮겨주고 매일 보살피며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네 이름은 민들레, 내 이름은 언년이.”
어느 날부터 할머니가 보이지 않게 되자 민들레는 홀씨가 되어 찾아 나섭니다. 마침내 할머니의 무덤을 발견했습니다. 별이 내리는 밤 반가움에 둘은 새벽까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눕니다.
봄에 도서관에서 ‘그림책 만들기’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그동안의 수업 내용과는 달리 정말로 책을 만드는 과정을 배웠습니다. 줄거리를 만들고 장면을 구상하여 그림을 그리는 과정입니다.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가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수강생 대부분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수업하는 중 한두 명씩 포기하더니 끝까지 완주한 사람은 사분의 일 정도입니다. 나는 무난히 이들에 포함됐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미 그림책을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이 있어 대강의 얼개를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수업에 임했기 때문에 조금은 수월했습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수강생 모두는 경험이 없는 초년생입니다. 나의 빠른 설계가 수강생들의 진도를 앞지르다 보니 선생님과의 의사소통 기회가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책의 줄거리를 구상하고 있는데 나는 초본이 완성되었습니다. 몇 번의 수정을 거듭하고 마침내 교정을 보았습니다. 다음부터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수업에 임했습니다. 동료들의 진행 과정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림을 완성하는 기법은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크레파스, 색연필, 물감 등으로 그림을 직접 그리는 사람,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는 사람, 종이접기를 하는 사람, 그림이나 사진 등을 오려 짜깁기하는 사람 등 각자의 표현 방법이 달랐습니다.
나는 직접 야외에 나가 사진을 찍어 완성했습니다. 나의 경우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사진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림 솜씨가 부족하다 보니 아무래도 어설프다는 느낌이 든 때문입니다. 사진이라서 원하는 그림을 쉽게 얻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흔한 민들레를 담는 것이 생각처럼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을 손에 넣기란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괜찮다 싶어 집에 돌아와 영상을 확인하면 처음과는 다른 느낌이 듭니다.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합니다. 결국 셀 수 없이 많은 민들레를 찍었습니다.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열여덟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수천 번의 셔터를 눌러야 했습니다. 쉬운 것 같으며 전혀 쉽지 않은…….
그림책을 보다 보니 책을 만드는데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린이 도서 전시대에서 꼬마들과 어울려 그림책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림은 활자보다 더 많은 생각을 갖게 해 줍니다. 그림을 보며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원하는 만큼의 그림책을 만들었다는 것에 희열을 느낍니다. 나와 선생님과 인쇄소의 궁합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입니다. 사족이긴 하지만 지나간 일을 말해보려고 합니다. 지금의 그림책 발행은 두 번째입니다. 처음 책을 만든 것은 오 년 전입니다. 지금처럼 다른 도서관에서 그림책 만들기를 배웠는데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선생님은 강의 내내 그림책의 구성을 두고 갈팡질팡했습니다. 겨우겨우 완성된 원고는 인쇄소까지 문제가 생겨 발행일을 육 개월 이상이나 넘겼습니다.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수강생들의 원성이 대단했습니다. 그림이, 글씨체가, 책의 완성도가 기대 이하입니다. 사전 교감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내가 그린 그림의 반만큼이라도 색감이 살았으면, 글자의 크기가 배열이 그림과 어울려야 하는데……”
도서관 그림책을 책임 맡았던 직원은 다른 곳으로 전출되었습니다. 기획과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이유입니다. 수강생들의 원망이 한몫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초보자는 경험을 쌓기까지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서, 그림책 강사, 인쇄소 모두가 초년이었습니다. 삶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한 번의 경험이 두 번째에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 책을 구상하기 위해 틈틈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하늘만을 모읍니다. 숲만을 모읍니다. 연못만 모읍니다. 곤충만을 모읍니다. 미리 분야별로 저장합니다. 필요할 때 빼서 써야 하니까요. 앞날을 위한 준비된 자의 여유로움입니다.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