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전통시장의 애창 20230110
오랜만에 라디오를 켰습니다. 조영남 가수의 구수한 노래가 다가옵니다. ‘화개장터’입니다.
‘화개장터’ 노랫말처럼 섬진강은 영남과 호남 사이를 가로지릅니다. 나는 하동에 가본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동에는 오일장인 화개장터가 있습니다. 지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장이 섰다니 역사가 깊은 전통시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시장은 서구의 영향을 받아 옛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편리함과 깨끗함을 추구하다 보니 옛날의 시장은 점차 기능을 잃으며 많이 없어졌습니다. 현대식 시장은 슈퍼, 마트, 백화점 등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전통시장과는 달리 사람들이 수시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편리함을 알면서도 가끔 전통시장을 찾아갑니다.
요즈음 내가 찾아가는 곳은 남대문시장, 경동시장, 소래어시장을 비롯한 신포시장 등입니다. 나는 인천에 사는 관계로 이들 중 소래 포구나 신포동이 가깝습니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거리입니다. 20여 분을 걸어서 전철을 타고 다시 환승하여 역에서 내려 10여 분을 걷습니다. 집 가까이에 대형 마트가 있음에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도 있지만 시장의 정감 때문입니다. 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외양에서 풍기는 각각의 정취가 다릅니다.
‘보글보글, 지글지글’
이 겨울 솥이나 찜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연 수증기,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진 음식의 냄새는 오감을 자극합니다. 각종 떡, 족발, 튀김, 어묵, 팥죽, 전, 나물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발길을 유혹합니다. 전통시장에는 예전부터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것이 있습니다. 방앗간, 왕족발, 정육점, 어물전……. 뜻을 모르는 무국적의 간판에 비해 수돌이네 방앗간, 영월 팥죽집은 정감이 갑니다.
내가 산책 겸 찾아가는 신포시장은 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새로 개통한 수인선 신포역에서 내리면 자유공원이 보입니다. 동인천 방향으로 걷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입구에 다다릅니다. 이곳은 닭강정으로 유명합니다.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요즘은 불과 10여 미터 거리에 만둣집이 유명합니다. 이곳도 사람들이 줄을 서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기 있는 만두를 먹고 싶은 생각에 기다릴까 하다가 한 시간 반이라는 말에 그만두었습니다.
이왕 왔으니, 자유공원을 옆에 끼고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도 들려야겠습니다. 삼국지 벽화 거리, 근대박물관, 화교역사관을 둘러보고 식사 전이라면 자장면도 한 그릇 비워야 합니다. 울긋불긋한 건물들이 중국의 어느 골목을 연상시킵니다. 공갈빵 하나를 들었습니다. 깨뜨려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어느새 발길은 동화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골목에는 벽을 따라 동화 속의 아기자기한 모습이 펼쳐집니다. ‘찰칵’ 어느 별에서 온 어린 왕자 옆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동화를 좋아하는 나는 친구라도 된 기분입니다.
시장마다의 특색과 먹을거리가 있습니다. 소래어시장은 다양한 젓갈부터 해산물을 파는 수산물 시장입니다. 역이 가까워 많은 사람이 구경할 겸 찾아옵니다. 휴일이면 붐비는 사람들로 시장통이 좁아집니다. 군데군데 술병과 회를 놓고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시장을 끼고 있는 옛 소래 철길을 걸으며 갈매기와 함께 하늘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내가 60년대 말 잠시 전동차의 운전 교습생으로 다리를 건넜던 곳이기도 합니다. 바지락 손칼국수와 튀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에 따라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현대화입니다. 뻥 뚫린 하늘에 돔 형태의 가림막이 만들어졌습니다. 비라도 오면 질퍽거리던 바닥이 사라지고 폭염과 추위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전통시장의 매력은 다른 데 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합니다. 덤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일이 없습니다. 필요하다 싶으면 한 개만 사도 됩니다. 와글와글 시끄러워도 괜찮습니다. 소소한 먹을거리가 눈을 유혹합니다. 생각이 있다면 주위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즉석에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전통시장은 한마디로 정겨운 감성이 숨 쉬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대문시장은 나와 인연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중학교에 다닐 때 일 년 동안이나 스쳐 지나가던 곳입니다. 그때와 지금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전통시장임에는 분명합니다. 그 시절 일부의 사람들은 남대문 시장을 양키 시장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후진국이고 미국의 도움을 많이 받다 보니 미제라고 불리는 물건이 긴 골목을 차지했습니다. 군수 물품도 많았습니다. 시장에 놓여있는 것들을 둘러보며 딴 세상에 와 있다고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물건의 종류가 달라졌지만, 아직도 전통시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곳의 팥죽과 수수 호떡을 좋아합니다. 내가 찾아가는 곳은 음식의 단맛이 비교적 적습니다. 시장을 둘러보는 김에 봄철 모자 하나를 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