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의 반려(伴侶)는 20230110
나의 반려자는 아내, 이 외에는 특별히 정을 두지 못했습니다. 내향적이고 다정함이 부족하다 보니 남과 어울림에 소극적입니다. 얼마 전부터 반려(伴侶)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려자(伴侶者)라는 말이 많아지더니, 반려동물(伴侶動物)이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그중에도 반려견입니다, 다음으로는 반려 식물((伴侶植物)이라는 말까지 퍼졌습니다. 요즈음은 반려견(伴侶犬)이 대세인 듯합니다. 집 밖으로 나서면 견공들 천지입니다. 목줄에 매어 보호자와 산책합니다. 특히 공원에는 혼자 걷는 사람보다 개와 함께 걷는 사람이 더 많은 정도입니다. 함께 걷기도 하지만 유모차에 갓난아기를 태우듯 고이 모십니다. 걷기 싫다고 떼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나는 가끔 착각에 빠집니다.
‘사람이 주인이야, 개가 주인이야.’
언제인가부터 나는 유모차가 나타나면 눈여겨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강아지가 탔을까, 아기가 탔을까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지만 궁금합니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개를 무서워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짖어대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특히 목줄이 없을 때입니다. 낯선 곳에 갔을 때 으르렁거리며 다가오는 개를 보면 쭈뼛해지며 몸을 피해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남들은 개를 보면 예쁜 표정을 지으며 주인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무조건 옆으로 피합니다. 그냥 거부감이 듭니다. 크든 작든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좋아하는 반려동물을 꼽으라면 소를 말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나뿐만 아니라 우리 집 식구들의 마음에도 반려우(伴侶牛)였습니다. 농사에 꼭 필요한 짐승입니다. 논밭을 갈고 짐마차를 끌었습니다. 소에게 힘든 일을 시키는 만큼 대우를 잘해주었습니다. 나는 봄부터 가을까지 풀을 잘 먹을 수 있도록 냇가를 비롯하여 풀이 많은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이후 도시 생활하면서 나에게는 식구 외에는 반려자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특별히 애착을 가진 것은 없었지만 꽃이 예쁘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식물을 키웠습니다. 이 종류 저 종류 가리지 않고 내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정성껏 키웠습니다. 정성을 들이는 만큼 잘 자랐습니다. 한 가지 식물에 애착을 가진 일은 없습니다.
가끔 아내가 묻습니다.
“추운데 베란다에서 뭘 해요?”
“아이비하고 사과 향 화초가 괜찮은지 살펴보고 있어요.”
대신 나에게는 변함없는 동반자가 있습니다. 책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내 곁에는 책이 늘 함께했습니다. 내 나이에서 여섯 살을 빼면 나머지 세월 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학생, 선생, 퇴직 후에는 잠시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이후에도 책은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방을 메고 학생인 양 도서관으로, 노인회관, 복지관, 평생학습관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책가방에는 이름에 맞게 늘 몇 권이 책이 들어있습니다. 나의 책 읽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다 보니 전철은 내 독서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전철의 경로석의 한두 자리는 비어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책을 펼칩니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가끔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는 경우가 있기는 해도 주위의 사람들과 어색하게 눈을 마주칠 염려도 없으니 좋습니다.
책이 나의 반려서이지만 특별히 편독하지는 않습니다. 그때의 기분이나 필요에 의해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찾아 읽습니다. 하지만 그중에도 관심이 가는 분야는 있습니다. 나는 동화, 시, 수필, 소설에 관심이 많습니다. 소설을 빼고 나머지는 좋은 글을 써보려고 노력합니다. 이제는 소설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하려고 하지만 마음뿐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올해는 그림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틈틈이 그림과 관련된 책을 찾아봅니다.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생각나는 대로 간단한 표현을 하고 싶어서 오 분 스케치에 맞는 그림을 생각하고 짬짬이 머릿속의 생각을 표현합니다. 아직은 낙서의 수준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몇 년이 지나면 나름대로 한 편의 그림책을 엮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는 아직도 동화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알퐁스 도데의 별, 황순원의 소나기, 빨간 머리 앤’을 성인이 된 후에도 여러 번 읽었습니다. 다소 슬픈 감은 있어도 그림을 그려내듯 펼쳐지는 모습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마음을 표현해 보려고 패러디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다 쓴 다음 스스로 감동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자기 작품에 스스로 감동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자기 애착일까요.’
다음에 몇 차례 읽었는데 또다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 작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남의 힘을 빌려야겠습니다.
오늘은 글쓰기 강좌 첫 개강일입니다. 원고를 제출했는데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