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1

21. 송편 20210914

by 지금은

송편을 샀습니다. 아내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것을 펼쳐놓고 비닐봉지에 가지런히 담았습니다. 우리 식구가 한 번씩 먹을 양만큼입니다. 냉장고로 직행입니다. 어느 해 추석 무렵입니다. 한 번은 송편을 빚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식구래야 세 명이니 송편을 빚는 일이 재미도 없으려니와 번잡스러운 일입니다.


추석이 다가옵니다. 내가 강의를 듣고 있는 글쓰기 반 강사가 송편이라는 주제로 글을 한 편씩 써서 밴드에 올리라고 했습니다. 작년에도 이맘때쯤 같은 주제를 말했는데 새로운 기억을 더듬어야 하기에 잠시 망설여집니다. 그 사이에 몇 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글을 올렸습니다. 글의 내용이 짧기는 하지만 자신의 삶을 되살려 경험담을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송편을 만들면서, 같은 추석을 지내면서도 제각기 다른 내용을 표현한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추석을 준비하며 송편을 빚는 솜씨 자랑, 송편을 만드는 과정, 솔잎 이야기……. 아차, 다툼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 집은 추석을 비롯하여 설 명절 때면 늘 시끌벅적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일입니다. 큰집인 관계로 작은어머니 내외들과 사촌 동생들이 모여 함께 차례를 지냈습니다. 명절 전날 아침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현관은 그 많은 신발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신발들은 밖의 한갓진 곳으로 밀려납니다.

모인 사람들의 역할이 나뉩니다. 송편을 만드는 사람, 전을 부치는 사람, 과일을 씻고 채소를 다듬는 사람, 기타 재료를 손질하는 사람……. 내일을 위해 마련되는 음식들은 천천히 부엌 뒷방의 선반에 칸칸이 오릅니다. 남자들은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여자들과 달리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기도 합니다. 일부의 남자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무거운 것들을 들어주거나 옮기고 음식 맛을 보는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밤을 깎습니다. 호두를 깝니다. 병풍과 제기를 점검합니다.


송편과 전은 큰 채반으로 몇 개나 됩니다. 모인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만 떠날 때 집마다 한 꾸러미씩 들려 보내야 합니다. 시작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할머니가 하신 것처럼 어머니도 그렇게 준비하셨습니다. 나는 형님과는 달리 집안의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편입니다.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형님은 부지런히 집안일을 거들지만 나는 멀리 떨어져 있거나 모습을 감춥니다. 어쩌다 송편을 빚을 때 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위의 성화 때문입니다. 같은 재료로 만들면서도 모양은 각자 다릅니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딸을 낳는다.’


할머니의 말씀을 두고 잠시 왁자지껄합니다. 서로 만든 송편을 놓고 품평회를 합니다. 할머니의 송편이 제일 예쁩니다.


“어머니, 예쁜 딸 낳겠어요.”


막내 숙모의 말에 할머니는 밝은 미소와 함께 눈을 흘깁니다.


“이 나이에 무슨 딸, 남편도 없구먼. 네가 예쁜 딸을 낳으렴.”


숙모의 눈이 반짝 빛났습니다. 나도 한마디 들었습니다.


“너도 예쁜 딸 낳아야지.”


“이제 열 살인데요. 색시도 없어요.”


“건넛마을 명순이는 어때.”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습니다.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습니다.


서울로 거처를 옮겼을 때입니다. 어머니는 송편을 빚으시면서 솔잎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솔잎 위에 송편을 놓고 찌면 향기가 좋습니다. 내년에요 라고 말은 했지만, 그 후로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시골에 다녀오거나 아니면 남산, 북한산……. 쉽게 생각했는데 실천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어제는 앞에 보이는 산에 다녀왔습니다. 산이 가파르지 않아 오르기에 좋지만, 근처에 살 때와는 달리 이사하고 가본 지 오래입니다. 걸으면 삼십여 분 거리지만 달리는 차들의 소음이 생각 이상으로 심해 멀리했습니다. 솔잎을 좀 따왔으면 좋았을 텐데, 집에 와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송편이 다 떨어지기 전에 솔향기도 맛보아야겠습니다. 이심전심인가 봅니다. 잠시 후 아내는 송편을 접시에 내놓았습니다. 기름을 발라 윤이 납니다. 입에 넣으며 솔잎 이야기를 꺼내니 내 생각과 같습니다. 앞에 있는 송편은 예전 집안 식구들의 솜씨만큼 예쁘지는 않지만 하나같이 똑 고릅니다.


‘언젠가는 송편 기계가 예쁜 딸을 낳아야 하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