㉔
033. 모르면 몇 번이고 물어야 20240125
“다음에 다시 오셔야겠습니다.”
또는 ‘안 됩니다.’ 누구에겐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허망한 느낌이 듭니다. 기대가 무너지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한 순간 기분이 나빠집니다. 될 것 같은 데, 거절이나 부정의 말에 옥신각신하기도 합니다.
아침 일찍 아내와 집을 나섰습니다. 요 며칠 된 추위에 밖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찬 공기가 폐부를 찌릅니다. 지레 겁을 먹은 우리는 모자, 목도리, 장갑으로 보온을 단단히 했습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생각보다는 덜 춥다는 느낌이 듭니다. 금방 나왔으니 이렇게 느끼는 것이고 한동안 밖에 있으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릅니다. 버스 정류장에 이르자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버스가 뒤이어 도착했습니다. 소소한 기쁨입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데에 비하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이것도 작은 행복이라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 갔을 때 어느 정류장에서 환승하려고 했는데 방금 전 원하는 차가 떠났습니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넋 놓고 기다린다는 게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한 일인지는 겪어보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접수대에 서류를 주었습니다. 인적 사항을 확인한 담당자가 서류를 내밉니다.
“시기를 놓치셨군요. 작년까지입니다. 검진을 받으려면 건강보험관리공단에 전화해서 승인받으셔야 합니다.”
시각을 보니 상대편이 전화를 받으려면 업무 개시 시간까지 한 시간은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음에 하겠다고 말하고 분변 검사만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검진 시기가 돌아오면 미루지 않고 곧 병원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무슨 이유인지 미적대다가 늦었습니다. 문진표를 작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생각에 열흘 전에 병원 근처를 지나다가 서류를 받아왔습니다. 미리 내용을 써넣으면 그만큼 병원에 머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해를 넘겨도 한 달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미리미리 검진받았더라면 미리 물어보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으리라 생각하니 짜증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을 알면서 아내에게 싫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평소에 하자는 대로 하지, 애나 당신이나 미루고 미루다 마지못해 하니 이게 뭐야.”
말이 길어지면 생각지 않은 말이 오가고 기분이 상할까 하는 생각에 말을 멈췄습니다. 말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발길을 돌릴 때의 표정이 미안한 눈치였는데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나았을 것입니다.
살다 보면 너무 서둘러 낭패를 보는 일도 있고, 미적거리다가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에 갤러리에 간 일이 있습니다. 개관 첫날에 가면 사람이 덜 북적일 것 같은 느낌에 아침 일찍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작품을 공간에 배치하느라 분주합니다. 오후에 개관한다고 합니다. 하릴없이 주변을 배회하다 오후에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묻지 않아서 낭패를 본 일이 몇 차례 있습니다. 목적지를 처음 찾아가는데 차에서 내리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혼동됩니다. 이정표를 확인했습니다. 걷다 보니 목적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아 할 수 없이 지나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가야 할 곳에서 한참이나 멀어졌습니다. 옮기는 발걸음이 점차 무거워집니다. 마음에도 힘이 빠지는 느낌입니다.
병원의 접수대에 있는 직원이 상냥하게 검진 방법을 일러주며 전화번호까지 적어주었습니다. 고맙다고 말하며 돌아섰습니다.
“건강관리를 위해 꼭 오세요.”
“예”
추운 날 나이 많은 사람이 허망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손에는 새 문진표가 들려있습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문진의 내용도 일부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나이가 들다 보니 발걸음이 느려지고 생각도 빠르지 않고 희미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같은 표현임에도 전과 같지 않은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거듭할수록 다가오는 느끼는 일입니다. 대답만큼이나 중요한 게 물음입니다. 좋은 물음이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어야 답이 나옵니다.
